출판N Vol. 63 2026 3~4월호, 출판계 이모저모, ‘딸깍 출판’ 사태로 보는 AI 출판의 과제

출판N Vol. 63 2026 3~4월호, 출판계 이모저모, ‘딸깍 출판’ 사태로 보는 AI 출판의 과제

 

 

출판계 이모저모
‘딸깍 출판’ 사태로 보는 AI 출판의 과제
최다원(<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2026. 3+4.

 

 

납본 거부된 인공지능 제작 출판물 ‘딸깍 출판’
지난해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이 개관 이래 처음으로 인공지능(이하 AI) 출판물에 대한 납본을 거부했다는 최근 <한국일보>의 보도는 출판업계에 적잖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국가 대표 도서관 으로서 국제표준도서번호(이하 ISBN) 발급 서적에 대한 납본 규제가 엄격한 국립중앙도서관이 ‘검열 시비’ 논란을 감수하고 ‘책 반입 거절’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은 일종의 선언적 메시지로 풀이됐다.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취재의 발단은 지난해 말이었다. 신참 문화부 기자로서 책을 보는 눈이 영 어설펐던 필자는 신간 더미 속에서 신문에 소개할 양서를 고르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그러던 중 화려한 표지가 눈에 띄는 책 한 권을 후배에게 건넸더니 만듦새가 다소 충격적이었다. 독자에게 소개할 수 없는 수준의 책이었기 때문 이다. 서문을 펼쳐보니 “AI의 도움을 받았다.”는 설명이 있었다. 해당 책을 숨기듯 책장에 꽂아 두고는 ‘AI 도서’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AI가 일으킨 변화의 바람이 출판계에 불어닥친 지는 오래다. 집필 단계에서 자료 검색의 보조 도구로 활용되는 것은 기본이고, 표지·삽화 제작, 교정·교열 등 여러 공정에서 AI를 활용한 생산성 향상이 시 도되어왔다. 1) 출판사 윌북의 경우는 지난해 사내 AI 전담팀을 꾸려 초벌 번역을 AI에게 맡기고 인간 편집자는 최종 검수하는 방안이 가능할지 시험했다고 한다.

문제는 집필 및 출판 과정 전반을 AI에 위탁하는 출판사들의 등장이다. 그중에서도 한 대학 연구팀이 주축이 돼 2022년 3월 설립된 루미너리북스는 자체 개발한 AI 툴을 이용해 1년간 약 9,000종의 전 자책을 펴낸 사실이 알려지며 도마 위에 올랐다. 직원 1~2명이 책 한 권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약 1시간 30분. 주제도 정치·사회·경영·역사·철학·교육 등 여러 분야를 망라했다.

루미너리북스는 애초부터 한국어에 특화된 AI 대규모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s, LLM) 개 발을 목표로 삼으며 AI 이용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신생 출판사의 AI 도서 물량 공세는 독 자들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과연 얼마만큼 확실한 정보와 사실을 담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사람들은 AI 양산형 도서에 ‘클릭 한번’으로 책을 찍어낸다는 비하적 의미를 담아 ‘딸깍 출판’이란 멸칭을 붙었고, 이를 피하기 위한 ‘블랙 리스트’를 만들기도 했다.

 

 

‘AI 양산 도서 납본에 세금 낭비’ 논란 점화
이제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빨리 만들어진 책’, ‘AI가 만든 책’은 무조건 ‘나쁜 책’일까? 오늘날 활자 매체가 시시각각 변하는 사회 흐름을 담는 데 역부족이라고 취급되는 현실을 곱씹어 보면, AI로 빠르 게 출판하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평가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사람 손을 덜 타니 그만큼 비용이 적게 들어 가격이 저렴해질 가능성도 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시장의 반응을 살펴 즉각 증쇄 여부를 결정 하는 데에도 용이할 것 같다.

 

출처: 구글 제미나이(Google Gemini)

 

그러나 시중에 공개된 ‘딸깍 도서’들은 당장 자잘한 표기법 오류부터 맥락에 맞지 않는 단어 사용, 오 역, 사실과 다른 서술로 거센 비판에 휩싸였다. 전문서를 자처하면서 내용의 구성이나 깊이는 포털 사 이트 검색 결과와 별반 다르지 않은 책도 있다. 편집자가 기획 단계부터 저자와 면밀하게 상의하고 수 개월간 검토를 거쳐 출간하는 기성 출판사에서는 ‘사고’라 여길 만한 문제들이다. AI 전담팀을 꾸렸던 윌북 역시 AI 활용을 시기상조로 결론 내렸다고 한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이 AI 출판물에 대한 납본을 배제하기로 한 것도 이런 측면이 결정적이었 다. 국립중앙도서관이 납본을 거절한 출판사는 루미너리북스인 것으로 밝혀졌는데, 그 이유에 대해 국 립중앙도서관 관계자는 “분량 미달, 공개 자료 편집물, 내용 반복 등이 지적됐다.”라고 설명했다. 한 마디로 해당 책을 국가 문헌으로 보존해 후대에 전승할 가치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부 AI 출판사가 ‘저질 도서’를 마구 찍어내 납본하는 걸로 수익을 꾀할 수 있다는 우려, 즉 ‘세금 낭비’ 지적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납본시스템은 출판사가 발행하여 ISBN을 부여받은 자료를 국립중앙도 서관에 제출해 국가 기록물로 보존하는 시스템으로, 2권을 납본하면 1권의 가격을 보상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실제 국립중앙도서관이 전자책 납본을 받기 시작한 2016년 전자책 납본 보상금은 1213만 원(5개월 분)이었지만 작년에는 2억 6276만 원이 지출됐다. 종이책까지 합치면 약 12억 780만 원에서 약 17억 3886만 원으로 증가했다. 모두 역대 최다 금액이다.

 

도서관법 일부개정법률안

출처: 의안정보시스템(의안 번호: 2216368)

 

물론 이 같은 수치는 물가 상승으로 인한 도서 정가 인상 등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현행 납본 제도에 AI 출판 관련 규정이 없는 점을 감안하면 세금 누수를 막을 방도도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에 국립중앙도서관은 온라인 자료 납본 제도 정비를 위한 정책 연구에 착수하기로 했다. 국회에서는 국립 중앙도서관의 납본 거부 근거를 명확히 하는 ‘도서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법 제정에도 풀리지 않은 저작권 문제
두 번째 질문이다. 품질이 문제라면 양질의 데이터를 AI에게 학습시키면 되지 않을까? 이번에는 저작 권 문제가 발생한다. 먼저 해외 사례를 보자. 2024년 미국 작가들은 본인의 저작물을 허가 없이 AI 학습에 활용했다며 AI 스타트업 앤트로픽(Anthropic)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결과는 사실상 패소였 다. 법원은 앤트로픽이 수백만 권의 책을 불법 다운로드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학습 자체는 ‘공정 이 용’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한국에서도 AI 학습을 위해 텍스트 마이닝(Text Mining)*을 두고 출판업계와 AI 산업의 의견은 첨예 하게 갈린다. 2) 출판사나 저자는 AI 기업이 학습 데이터의 출처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원 저작권자에게 적정한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출처가 표기되지 않으면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AI 기업들은 “학습 데이터는 영업비밀이자 핵심 자산”이라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 대규모 비정형 텍스트 데이터에서 구조화된 정보로 변환 및 추출하는 기술

 

출처: 챗지피티(ChatGPT)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 1월 ‘인공지능기본법’ 3) 이 제정·시행됐지만, 국회 본회의 처리 단계 에서부터 출판업계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창작자의 저작권 보호를 위한 명시적 조항은 찾아볼 수 없고, AI 이용사업자의 투명성 확보 의무 규정마저도 다소 모호하다는 지적이었다. 출판계 대표 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사실상 반대 입장 4) 을 공식화하기도 했다.

출판 현장에서도 혼선은 금세 감지됐다. 당장 ‘어느 정도로 생성형 AI를 이용했을 때’ 고지 의무가 생 기는 것인지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성토가 빗발쳤다. 한 출판업계 관계자는 주무 부처인 과학기 술정보통신부로부터 “출판사는 AI 사업자가 아니어서 표기 의무가 없다.”라는 답변을 받았으나, 필자가 직접 문의한 결과는 “본문 내용을 AI로 채운 수준이면 표기해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지성의 보고에 AI의 접근을 불허하는 이유
결국 저작권 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책 제작 과정에 AI가 개입됐는지, 개입됐다면 어느 정도로 활용된 것인지조차 독자가 명확히 알기 어려운 현실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근 본적인 의문이 생긴다. 우리는 왜 저자가 인간인지 AI인지를 구분하고 싶어 할까? AI에게 고민 상담도 하는 시대에 책만은 달라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품질과 저작권 문제가 전부일까?

이 대목에서 ‘논픽션 위기론’에 대한 출판인들의 분석 5) 을 들여다보자.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에서 AI 출 현 이후 논픽션, 특히 ‘정보 제공형’ 도서의 매출이 하락세라는 사실은 중요한 시사점을 가진다. 즉, 독 자들이 AI와 책의 역할을 구분 짓고 있다는 것이다. 정보를 얻기 위해 책을 찾기보다는 검색 한 번으 로 결과를 알 수 있는 AI가 더 충실한 답변자로 인식되고 있다. 이제 책은 정보를 위한 매체가 아닌, 인간 고유의 사상과 통찰력을 담은 길잡이에 더 가까워졌다.

취재 과정에서 필자와 통화한 한 출판계 관계자는 “시간이 흘러 AI 도구가 더욱 정교해졌을 때, AI 도 서를 필명으로 발표하면 누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겠느냐.”면서 “독자는 차별화된 사유 없는 팩트 나열 식의 책이 범람하는 출판시장을 외면하게 될 것”이라고 염려했다. 또 다른 출판인은 “AI 기업이 출판 의 문턱을 낮춘다고 하지만, 문턱을 낮추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인지 따져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고민은 문학계도 마찬가지다. <한국일보>가 주관하는 신춘문예를 포함해 여러 공모전 및 문학상에 서 AI를 이용한 작품은 응모를 금지하고 있다. 그 기준이 분명하지 않다는 불만도 있지만, 인류가 추 구해온 창의성과 노고의 가치를 존중하고자 한다는 행간에 많은 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선작이 AI 로 생성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는 일은 사진과 게임 업계에서 앞서 경험한 일이기도 하다. AI를 이용 한 작품 응모를 금지하는 것은 이를 사전 예방하기 위한 것은 물론, 형평성에 맞게 동등한 조건에서 인간이 창작한 결과물을 평가하기 위해서다.

 

 

피할 수없는 변화, 공론화 거칠 때
여기까지 논의하다 보면, ‘AI 출판’이 괘씸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출판계에서 AI 활용 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된 것도 분명한 현실이다. 한국 대표 소설가인 황석영 작가는 최근작 『할 매』(창비, 2025)를 집필하며 “AI를 조수로 활용했다.”라고 밝혔다. 6) 인간과 AI가 조선시대 한시(漢詩) 를 번역하는 블라인드 대결에서 AI가 전문 번역가들의 압도적인 선택을 받은 일도 있었다. 7) 이제는 AI 를 사용한 사실 자체보다 어떻게 효과적으로 잘 활용할지가 더 중요한 과제다.

AI 출판사라고 모두 같은 제작 방식을 따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루미너리북스는 자체 개발한 AI 시스템을 최소 한 달에 한 번 이상 업데이트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챗지피티의 응답 을 그대로 복사해 아무런 편집이나 검토 없이 전자책으로 출판하는 몇몇 사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 지만, 그러한 방식의 결과물은 자사가 생각하는 ‘책’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한다.”라고 밝혔다.

결국 국립중앙도서관이 풀어야 할 납본 문제는 세금 편취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는 수준을 넘어 “기술 의 발전 앞에서 인간의 창작 활동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적 성격을 띠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의견 수렴이 선행되어야 할 터. 문화체육관광부가 문화예술정책 자문위원회 등을 통해 관련 업계와 소통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지만 소비자인 ‘독자’가 참여하는 공론 장 또한 필요해 보인다.

책 제작의 주체와 책임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는 어려운 과제지만 AI가 불러일으킨 변화는 세계 출판 업계가 공유하는 고민이라는 점에서 너무 낙담할 일만은 아닐 것이다. 검열 논란을 불식시키면서도 AI 업계와 출판산업의 공생, 더 나아가 AI 시대에 창작의 개념을 모색해야 하는 전환점 앞에서 건강한 논 의의 장이 열릴 수 있길 기대한다.

참고문헌
1) 이승환, 「AI 기술에 따른 출판 편집의 변화 양상과 전망」, 2025.12., https://scholar.kyobobook.co.kr/article/detail/4010071812387
2) 한국출판인회의, “생성형 인공지능 관련 현황 정리 자료 소부 및 회원사 의견 수렴”, https://www.kopus.org/info-noticelist/?pageid=1&mod=document&keyword=%EC%A0%80%EC%9E%91&uid=1291
3) 국가법령정보센터,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 2026.1.20., https://www.law.go.kr/lsInfoP.do?lsId=014820&ancYnChk=0#0000
4) 대한출판문화협회, “[의견서] 당사자 간 논의와 조정 없는 인공지능기본법 제정, 문제가 심각하다”, https://buly.kr/YgEckU
5)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논픽션 위기론, 현장의 목소리” <기획회의 649호>, https://www.kpm21.co.kr/shop/gh-649
6) 이혜성의 1% 북클럽, “‘글쓰기 훨씬 좋은 시대’ AI를 활용해서 소설 쓰는 방법”, https://www.youtube.com/watch?v=__GYRUjEYXo
7) 김재현, “詩번역도 이긴, AI, 문과생은 뭘 해야 살아남을까”, <연합뉴스>, 2026.2.3., https://www.yna.co.kr/view/AKR20260202086100546?input=1195m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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