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N> Vol.66 2026 7~8월호, 커버스토리 [책과 여름] 북캉스, 우리가 바라는 휴가철의 모습
커버스토리
[책과 여름]
북캉스, 우리가 바라는 휴가철의 모습
김민섭(당신의강릉 운영자)
2026. 7+8.
노르망디 해변의 작은 도서관
어느 날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창비, 1995)를 쓴 홍세화 선생은 내게 직접 찍은 사진 두 장을 보 여주었다.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Veules-les-Roses(뵐르 강변의 장미 마을)의 풍경이었다. 내가 사 는 강릉 해변이 더 나아 보일 만큼 평범했던 노르망디 해변이었지만 한 가지 눈길을 끈 것은 해변의 임시 도서관과 그 앞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컨테이너 두어 개를 붙여 만든 것처럼 소박 했지만 사람들은 햇볕을 쬐며 캠핑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과 도서관(출처: 홍세화)
이것이 진정한 ‘북캉스(Book+Vacance)’의 모습일까? 우리나라 동해에도 ‘망상해뜰책뜰’이라는 바닷가 도서관이 있긴 하지만 한국의 해변에는 주로 카페와 편의점, 술집이나 횟집이 많은데 한적한 시골 마 을의 해변에도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이, 그것도 책을 읽는 여러 사람의 모습이 자연스러워서 인상적이 었다. 어쩌면 내가 사진에서 본 것은 도서관 자체보다 책이 있는 공간의 힘이었는지도 모른다. 해변, 광장, 호텔, 카페, 기차역 같은 장소에 놓인 책은 서점이나 도서관과 또 다른 분위기를 만들고 사람이 머무는 방식까지 바꿀 수 있다.
여행 가방에 책을 넣는 마음
휴가철인 여름에는 가만히 앉아 책을 읽기보다는 여행이나 야외활동 등 여가를 보낼 수 있는 다른 선 택지가 더 많다. 그러나 최근 휴가철 풍경이 조금 달라지고 있다. 그 변화 중 하나가 ‘북캉스’이다. 노 르망디 해변처럼 해변가에 도서관은 아니지만 책과 연결된 공간들이 늘어나고 있고, 고유가 시대에 멀 리 떠나는 것보다 가까운 곳에 머물며 여유로운 휴가를 보내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책과 바캉 스를 결합한 ‘북캉스’는 단순히 휴가지에서 책을 읽는 행위를 넘어 도서관, 서점, 북카페, 북스테이 같 은 공간에서 머물며 책을 통해 쉬는 새로운 휴식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언뜻 보면 휴가지에 책을 가져가 읽는 일은 가성비에 맞지 않는 행위처럼 보인다. 책은 무겁고 부피가 크다. 물론 전자책도 있지만, 물놀이하거나 관광지를 돌아다니면서 책을 꺼낼 확률도 그다지 높지 않 다. 그럼에도 나는 여행을 갈 때 책을 챙긴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간 첫 여행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여행지에서 만난 누군가가 책을 든 나를 향해 감탄사를 쏟아냈을 때, ‘책을 읽는 지적인 사람처 럼 보이는 모습’에 우쭐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 책을 제대로 읽은 기억이 없으니 비행기에서 몇 쪽 읽다가 잠들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책은 자기 인정이나 과시적 이미지를 남기는 수단에서 시 작되기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젊은 세대들이 SNS에서 ‘#북스타그램’ 태그를 달고 예쁜 표지의 책을 읽는 모습을 찍어 올리는 것처럼 휴가지의 모습도 비슷하다.
그렇다고 휴가지에서 책을 읽는 일이 모두 과시적 독서라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빠르게 변하는 인 터넷 세상, 시끄럽게 쏟아내는 정보들과 잠시 단절하고 조용한 세계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일 상에서 미뤄 두었던 자신과 마주하고 잠시 삶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책을 찾는 것이다. 책을 온전히 집중해서 읽을 수 있는 환경이라면 심리적 안정과 휴식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또한, 평상시 미루기 만 했던 독서에 대한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싶을 수도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시간보 다 한 장씩 넘긴 책장의 두께를 보며 유익한 휴가를 보냈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도 있다.
책과 공간의 어울림
휴가철에 독서할 시간을 확보했다면, 특별한 북캉스 공간을 찾을 순서다. 독서와 숙박을 결합한 일명 ‘북스테이(Book Stay)’는 전국 지방자치단체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설립·운영하고 있다. 경상북도 청송군청이 운영하는 ‘청송자연휴양림’에는 넓은 침엽수림 가운데 마련된 독립형 숙소 ‘숲속의 집’과 ‘숲속도서관’이 함께 있어 자연 속에서 책을 만끽할 수 있다. 경기도 파주시가 설립한 ‘별난독서 캠핑장’은 폐교된 학교를 리모델링해 도서관이 있는 캠핑장으로 탈바꿈했다. 파주출판도시에 있는 ‘지지 향(紙之鄕)’은 TV와 와이파이가 없는 북스테이 전용 호텔로 출판도시문화재단이 운영한다.
‘지지향’의 내부 공간(출처: 출판도시문화재단)
지역 생활 문화 공간과 연계한 형태의 북스테이도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는 지역 도서관과 동네 책방, 카페 등에서 머물며 독서와 다양한 체험, 휴식을 경험할 수 있는 ‘전주서(書) 스테이 도서관 여 행’을 운영한다. 오후 반나절 동안 한 권의 책을 사유하며 공간에 스며드는 ‘책나절 코스’와 1박 2일 동안 호텔에서 머물며 리딩파티 등 책으로 소통하는 ‘책한밤 코스’가 있다.
여름방학과 가족들의 휴가철에 맞춰 청소년 독서교육을 위한 북스테이 공간과 프로그램도 늘고 있다. 경상남도교육청은 학생들과 학부모가 함께 1박 2일로 독서, 체험, 캠프를 즐길 수 있는 독서체험교육 관 ‘가야산독서당 정글북’을 운영 중이다. 남양주시청은 청소년들을 위한 유스호스텔 형식의 ‘정약용 펀 그라운드(Funground)’를 설립해 북스테이와 자체 독서 활동뿐만 아니라 게임, 댄스 등 여가 프로그램 을 제공한다. 충청북도교육청은 2026년 7월 완공을 목표로 숙박형 가족독서캠핑동이 포함된 ‘이야기 흐르는 글숲도서관(가칭)’을 조성하고 있다.
북스테이가 가능한 ‘고창서점마을’의 ‘목수의서점’ 내부 공간(출처: 목수의서점)
민간에서 운영하는 북스테이도 있다. 다양한 테마의 독립서점이 모여있는 ‘고창서점마을’에서는 서점 영 업이 끝난 뒤 투숙객들만을 위한 야간 서점을 이용할 수 있다. 고창서점마을과 멀지 않은 곳에 ‘책마을 해리’도 있다. 출판기획자 출신인 이대건 촌장은 부친이 기증한 학교가 폐교하자 도서관이자 북스테이 공간으로 되살렸다. 서울특별시 서촌에는 ‘한 권의 책을 읽기 위해 하루를 묵는다’는 콘셉트의 한옥 북 스테이 ‘일독일박’, 충청북도 괴산군에는 국내 최초로 북스테이를 시작한 ‘숲속작은책방’이 운영되는 등 전국 곳곳에 책을 매개로 한 공간들이 북캉스를 즐기고 싶은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북스테이가 가능한 ‘고창서점마을’의 ‘넘버나인’ 내부 공간(출처: 넘버나인)
카페, 전망, 건축, 전시 등 다른 요소들과 책을 연결하는 복합문화형 장소도 있다. ‘지지향’과 같은 건 물에서 운영되는 ‘지혜의숲’, 칵테일과 함께 책을 즐기는 ‘문학살롱 초고’, 개별 맞춤형 책 큐레이션이 특징인 ‘최인아책방’, 서울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더숲 초소책방’,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받은 ‘수연목서’ 등 다양한 북카페가 있다. 호텔업계에서도 북캉스를 위한 특별한 공간을 마련했다. 약 3,000권의 도서가 비치된 ‘워커힐 라이브러리(워커힐 호텔앤리조트)’, 큐레이션 도서와 전시, 편집숍 등 으로 공간을 꾸민 ‘이터널저니(부산 아난티 코브)’, 시즌마다 테마 서가를 운영하는 ‘경주산책(라한셀렉 트 경주)’ 등 사람들이 더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책과 공간을 연결하고 있다.
‘지혜의숲’(출처: 출판도시문화재단)과 ‘문학살롱초고’
휴가지에서 서점을 운영한다는 것
나는 책을 가까이하면 자연스레 독서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으로 꾸민 공간이 많을수록, 그 곳에 머무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독서율이 높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강릉의 서점지기로 휴가철 강릉의 독서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2026년 6월부터 새로운 프로젝트 ‘경험 교환소’를 운영하고 있 다. 청소년들이 책을 구매하고 읽은 뒤 독후감을 써 오면 책값을 돌려주는 이벤트이다. 이는 독후감에 대한 원고료이기도 한데, 청소년 독자들이 제출한 독후감을 모아 책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 는 타지에서 휴가를 온 청소년들도 참여할 수 있는데, 그들이 어떤 책을 선택하고 어떻게 읽고 소화했 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독후감 이벤트 ‘경험 교환소’ 포스터
휴가지에 와서 누가 독후감을 쓰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책을 읽으라고 요구하 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어도 좋은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하는 장치다. 또한 이런 이벤트는 강 릉에 대한 좋은 추억을 만들고 휴가를 즐기러 다시 강릉을 찾게 하는 동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래서 나는 이 독후감 프로젝트를 가능한 한 서점이 문을 닫을 때까지 계속 진행할 계획이다.
사실 강릉에는 여름 휴가철마다 많은 사람이 모이지만 아쉽게도 서점의 매출은 크게 늘지 않는다. 사 람들은 대부분 해변으로 몰려가고 구도심의 몇몇 맛집에만 줄을 선다. 그럼에도 나는 사람들이 북캉스 를 즐길 수 있도록 여러 방법을 구상하고 있다. 바닷물에 젖지 않는 워터프루프 책을 전시하거나 지역 성을 담은 책을 추천하는 것이다. 소정의 보증금을 내고 중고책을 대출하고 다시 반납하면 전액을 돌 려주는 프로젝트도 고려 중이다. 대출한 책이 마음에 들었다면 보증금으로 구매한 셈이 되고, 다시 서 점에 반납하면 책이 순환될 뿐 아니라 새로운 독자와 만날 기회도 생기니 일석이조다. 향후 테스트를 통해 추진할 계획이다.
해변에 도서관이 있다면?
책을 ‘사게 하는 일’과 ‘읽게 하는 일’은 조금 다르다. 책이 있는 공간이 없어서 책을 읽지 않는 것인 지, 책을 안 읽어서 서점이나 도서관이 없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노르망디 해변처럼 작은 도서관 이 곳곳에 있다면 어떨까 싶다. 크고 멋진 도서관이 아니더라도 접근성이 좋고 다양한 책들이 있는 공 간이라면 충분할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사서들이나 서점 운영자들, 주민들이 함께 선정한 좋은 책들 이 비치되고 강릉역이나 강릉시외버스터미널 같은 공공장소에 자율적으로 반납하는 시스템이 구축되면 좋겠다. 물론 많은 예산이 필요하겠지만 휴가지에서 도서 접근성을 높이는 일이라면 그만한 가치가 있 다고 생각한다.
크레마클럽 QR 접속 화면(출처: 서울특별시)
조금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한국형 해변 전자도서관을 구축하는 것도 방법이다. 서울야외도서관처럼 QR 코드를 통해 전자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일정 기간에 지역 기반 전자책 서비스를 제공 하고 관련 이벤트를 진행해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강릉 해변에서 독서 인증을 하거나 독서 후기를 작성하면 전자책 서비스 이용 기간을 늘려주거나 인근 지역 음식점, 카페에서 사용 가능한 할인권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강릉 해변에 도서관이 생기면 서점 운영에 불리하지 않냐고 물어볼 수 있지만, 책 읽는 문화가 먼저 만들어져야 판매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파는 일보다 먼저 책을 발견하게 하는 일이 필 요하다. 발견이 반복되면 독서가 되고, 독서가 쌓이면 언젠가 구매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좋은 책, 사람들이 읽고 싶은 책을 많이 마련해 두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강릉 해변에서 만난 책이 좋아 그 옆 서점에서 구매까지 이루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북캉스는 독서가 휴식이 되길 바라는 행위다. 결국 북캉스를 활성화하는 방법은 사람들이 머무는 곳에 책을 두고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북카페, 북스테이와 같이 휴식 공간에 책을 연결하고 해변 도서관처럼 휴가지에서도 책을 쉽게 접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책이 공간에 새로운 분 위기를 불어 넣는 것처럼 북캉스는 책 하나로 특별한 쉼을 만들 게 한다. 노르망디 해변의 작은 도서 관처럼 우리의 일상 곳곳에 언제나 책을 꺼내 읽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자리 잡기를 바란다.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책과 여름] 이번 여름 휴가, 여러분이 꿈꾸는 ‘북캉스’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요? 🌊📚
안녕하세요, 이웃 여러분! 무더운 여름이 찾아오면 다들 어떤 휴가를 꿈꾸시나요?
오늘 공유해 드리는 글은 《출판N》 Vol.66(2026년 7~8월호) 커버스토리에 실린 김민섭 님의 <북캉스, 우리가 바라는 휴가철의 모습> 입니다.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의 소박한 임시 도서관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글은, 단순히 휴가지에서 책을 읽는 행위를 넘어 책과 공간이 만나 만들어내는 아주 특별한 ‘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 자연과 책의 어울림: 청송자연휴양림, 파주 별난독서캠핑장, 지지향
🏡 지역과 숨 쉬는 공간: 전주 서(書)스테이, 고창서점마을, 괴산 숲속작은책방
☕ 감성을 채우는 공간: 문학살롱 초고, 수연목서, 호텔 라이브러리
🏖️ 강릉 서점지기의 새로운 시도: 독후감 이벤트 ‘경험 교환소’와 해변 도서관 꿈
바쁜 일상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한 장씩 넘겨가는 책장의 두께만큼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북캉스’. 단순히 책을 읽는 것에서 나아가 “사람이 머무는 곳에 책이 있고, 그 책이 공간의 분위기를 바꾸는 경험”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보게 됩니다.
💬 이웃님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여러분이 경험했던 가장 기억에 남는 북캉스 장소는 어디인가요?”
혹은 “이번 여름 휴가 가방 속에 꼭 챙겨가고 싶은 책 한 권”이 있다면 댓글로 자유롭게 추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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