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N> Vol.66 2026 7~8월호, 커버스토리 [책과 여름] 무더위에는 무서운 이야기
커버스토리
[책과 여름]
무더위에는 무서운 이야기
전건우(작가)
2026. 7+8.
공포의 계절, 여름
바야흐로 여름은 공포의 계절이다. 견디기 힘든 무더위가 가장 큰 공포라고도 하지만, 에어컨 틀어놓고 시원한 수박을 먹으며 장르 소설을 읽는 것만큼 효과적인 피서는 없으리라. 매년 여름 TV에서는 ‘납량 (納凉) 특집’을 기획해서 방송하곤 한다. ‘납량’의 뜻이 ‘여름에 무더위를 피해 서늘한 기운을 느낌’이니 이런 기획의 의도는 사람을 오싹하고 서늘하게 만드는 것이다. 무서운 드라마나 영화가 나올 때도 있 고 연예인이 자기만 아는 괴담을 늘어놓거나 아니면 묘지 같은 곳을 돌며 시청자에게 대리 공포 체험 을 즐기게도 한다. 여름이면 신작 공포 영화가 줄줄이 개봉하고, OTT 등에도 관련 콘텐츠가 부쩍 많 이 올라온다. 이렇다 보니 여름은 곧 ‘공포의 계절’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추리·미스터리 소설이 진열된 서점 매대
여름이면 서점 매대의 모습도 조금 달라진다. 자기계발서나 힐링을 목적으로 한 서적은 한쪽으로 밀려 나고 그 자리를 공포, 미스터리, 스릴러 도서 같은 장르물이 대신한다. 여름에 무섭고 긴장감 넘치는 작품을 읽어야 한다는 ‘납량’의 공식이 출판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공포 장르를 배척했던 독자도 여름이 되면 한 번쯤 읽어볼까 하고 고민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런 장르 소설은 계절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출판계에도 여름은 공포의 계절이기도 하다. 여름에는 휴가 등 야외 활동이 많아 책을 읽지 않는 비수 기라고 한다. 평소에도 책이 잘 안 팔리는데 여름이 되면 더욱 안 팔리니 출판사로서는 이리저리 묘책 을 간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략적으로 공포나 미스터리 계열의 작품을 주로 여름에 출간하는 것 이다. 그런 장르 소설을 주로 쓰는 나 역시 여름이 되면 특강, 북토크, 인터뷰 등으로 바빠진다. 그리 고 이런 행사는 기막히게도 처서(處暑)와 함께 하나둘 사라진다. 그리고 서점의 매대도 다시 물갈이된 다. 흉측하고 사특한 제목의 책은 옆으로 밀려나고 교양서와 힐링 서적이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괴담에서 시작된 공포 장르
우리나라는 원래 공포 강국이었다. 아직 KBS 드라마 <전설의 고향>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고, 그 영향 때문인지 어린 시절부터 각종 괴담과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 가장 유행 했던 괴담은 단연코 ‘빨간 마스크’였다. 입 찢어진 여자 괴담은 일본에서 넘어왔지만, 이것이 토착화되 면서 그야말로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빨간 마스크를 모르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일찍 들어오라는 백 마디 말보다 “밤늦게 혼자 돌아다니면 빨간 마스크를 만난다! ” 같은 괴담이 아이들의 이른 귀가에 훨 씬 큰 몫을 했다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인신매매 괴담, 연쇄살인범 유영철 괴담, 장기 매매 괴담 등 시대상을 반영하는 여러 괴담이 한 번씩 나라 전체를 휩쓸고 지나갔다.
내가 공포 단편소설로 데뷔한 2008년쯤 한국 출판계에 공포 장르는 1차 부흥기였다. 공포라는 장르가 단순히 괴담을 넘어서 ‘문학’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줌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주던 때이기도 하다. 비록 앤솔러지가 주를 이루었지만 공포 문학은 많은 팬을 만들어냈고 꾸준히 사랑받아 왔다. 그 때는 해외의 공포 문학도 활발하게 번역·출간되었다. 공포의 제왕 스티븐 킹(Stephen King)의 작품은 말할 것도 없고, 스즈키 코지(鈴木光司)의 『링(Ring)』(가도카와 쇼텐, 1991) 시리즈, 기시 유스케(貴志 祐介)의 『검은 집( 黒い家)』(가도카와 쇼텐, 1997) 같은 작품이 비슷한 시기에 나오며 인기를 끌었다. 여름이면 공포 소설이 잘 팔린다는 확실한 공식이 성립한 것도 그 시절 무렵이었다. 앞서 언급했지만, 시원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오싹한 소설을 읽는 것만큼 간편하면서도 무해한 바캉스는 없으니까. 독자는 그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출판계도 이에 맞춘 여름 출판과 마케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독자는 왜 공포에 끌리는 걸까?
사람들이 공포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은 매운 짬뽕이나 매운 떡볶이를 먹는 심리와 비슷하다. 매운맛을 느끼는 것은 통각을 자극받는 것이니 엄연히 말하자면 통증을 참으며 먹는다는 뜻이다. 무엇 때문에 그럴까? 바로 고통스러움 뒤에 찾아오는 해소의 기쁨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린 뒤의 개 운함, 얼얼한 혀를 차가운 음료수로 달랠 때의 안도감과 달콤함을 공포 소설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 다. 분명히 읽을 때는 무섭고 끔찍하고 긴장감에 어쩔 줄 모르지만, 모두 읽고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 면 안온함과 함께 해방감이 밀려온다. 그렇게 개운함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공포 소설을 읽을 때 현실에서 마주하던 두려움을 잠시나마 잊는다. 당장 갚아야 할 카드 값이나 대출이자, 내일 출근해서 만나야 하는 괴물 같은 직장 상사도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떠올리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에 이런 공포 소설은 아주 훌륭한 심리 치료제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이런 장르 소설은 시대상을 반영해 왔다. 괴담이 현실의 무서운 뉴스와 엮어 성장한 것처럼 그 시대의 가장 민감 한 부분을 건드리며 독자의 상상을 자극하고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현시점 공포의 주된 재료이자 앞으로도 관련 작품이 많이 쏟아져 나올 소재는 단연 인공지능(AI)이다. 옛날 내비게이션이 처음 상용화되었을 때 관련 괴담이 꽤 많았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서 갔더니 ‘공동묘지더라, 절벽이더라’ 같은 괴담. 이제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AI와 관련한 괴담이 서서히 생겨나 고 있고, 그런 작품도 계속 나올 추세다. 나는 AI가 사이코패스 성향을 보이게 되면 어떻게 될지 연구 중이다. 개인적으로 AI라는 전능하면서도 여전히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인 이 도구가 인간에게 적대감 을 표하는 이야기를 꼭 한번 써보고 싶다.
요즘 인기 있는 국내외 공포 소설
요즘 우리나라 공포 소설을 주도하는 분야는 ‘오컬트(Occult)’이다. 그중에서도 K-오컬트라 할 수 있는 무속 신앙, 부적, 귀신, 굿 등이 주요 소재로 떠오르고 있고 관련 작품도 많이 나오는 추세다. 오랜 시 간 한국형 오컬트를 묵묵히 파온 박해로 작가의 여러 작품을 읽어본다면 K-오컬트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신작인 『산군: 당산나무 기담』(네오픽션, 2026)은 그야말로 장르 소설 종 합 선물 세트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소재와 오컬트적 요소가 결합 되어서 독자에게 서늘한 공포를 선사한다.
『산군: 당산나무 기담』
우리나라의 공포 장르 소설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여성 작가들의 활약이다. 조예은, 남 유하, 배명은, 청예 등 많은 여성 작가가 공포를 본령에 두고 작업하고 있으며 그 결과물 역시 큰 사 랑을 받는 중이다. 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작품을 내놓을 때도 있고, 무척 잔인하면서도 오싹 한 그야말로 공포에 충실한 작품을 내놓을 때도 있으니 독자는 골라 읽는 재미가 있다. 이들의 혜성 같은 등장으로 현재 공포 장르는 새로운 부흥기를 맞고 있는 듯하다. 꾸준히 이 장르를 연구하며 작업 물을 내어놓는 ‘매드클럽(MadClub)’과 같은 공포 문학 단체도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읽을거리는 더욱 많아진다. 요즘 일본에서 가장 화제를 모으고 있는 공포 미스터 리 작가는 세스지(背筋)이다. 그는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近畿地方のある場所について)』(가 도카와, 2023)와 『더럽혀진 성지 순례에 대하여(穢れた聖地巡 礼について)』(가도카와, 2024), 그리고 『입에 대한 앙케트(口に 関するアンケート)』(포플라사, 2024) 단 세 작품으로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의 독자들도 사로잡았다.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게 만드는 독창적인 스토리텔링 솜씨가 일품이다. 독자들 은 세스지의 작품이 진짜로 어딘가에서 있을 법한 사건을 다루고 있어서 유독 무섭다는 감상을 전한 다. ‘히가 자매’ 시리즈(「比嘉姉妹」シリ ーズ)로 유명한 사와무라 이치(澤村伊智)나 일본 공포 소설계의 대부라 할 수 있는 미쓰다 신조(三津田信三)의 작품도 이 여름, 더위를 식히기 위해 휴양지에서 읽으면 좋다. 낯선 장소에서 읽는다면 아마 악몽을 꿀 것이다.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더럽혀진 성지 순례에 대하여』, 『입에 대한 앙케트』
영미권에서는 스릴러 장르가 단연코 인기를 끌고 있다. 그중에서도 대표작인 『하우스메이드(The Housemaid)』(그랜드센트럴퍼블리싱, 2022)를 쓴 프리다 맥파든(Freida McFadden)은 현대 미국 스 릴러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하우스메이드』는 스릴러, 로맨스, 치정, 미스터리와 반전이 함께 들어 있는 괴물 같은 작품으로 동명의 영화 역시 성공했다. 프리다 맥파든은 다작으로도 유명해서 만약 『하 우스메이드』를 재밌게 읽었다면 그의 다른 작품을 찾아 읽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특히 마지막에 뒤 통수가 얼얼할 정도의 반전을 원하는 독자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라.
올해 나이 87세인데도 불구하고 매년 한 작품 이상 발표하는 스티븐 킹의 작품도 있다. 그의 첫 장편 소설 『캐리(Carrie)』(더블데이, 1974)부터 『샤이닝(The Shining)』(더블데이, 1977), 『스탠드(The Stand)』(더블데이, 1978), 최신작 『네버 플린치(Never Flinch)』(스크리브너, 2025)까지 선택지가 많 다. 이제 그의 작품에서 예전 같은 독기나 서슬 퍼런 공포감은 많이 옅어진 듯하지만, 여전히 유려하고 흥미로운 작품을 써내고 있다. 어떤 순간에는 독자를 갑자기 공포의 심연으로 던져넣는 솜씨가 상당해 서 헤어 나오기 힘들다.
『하우스메이드』, 『캐리』
사람들은 일상이 공포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앞서도 언급한 카드값이나 사람 관계에서 오는 두려움 같은 것이 소설 속 귀신이나 살인마보다 몇 배는 더 무섭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여름에 공포를 찾는 것은 어지러운 세상이 적어도 소설 속 세계보다는 낫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이 여름, 꼭 한 번쯤은 공포나 미스터리, 스릴러 작품을 읽어보길 바란다. 평소 즐겼던 독자라면 아는 맛을 찾아서, 평소 즐기지 않았다면 색다른 맛을 찾아서 서점의 매대나 온라인 서점의 장르 코너를 둘러보면 좋을 것이다.
장르 소설들이 서점의 메인을 차지하는 기간은 짧다. 선선해지기 전에, 그리하여 장르 소설이 모두의 관심에서 벗어나기 전에 한 권 정도 읽어보는 것도 여름을 보내는 데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되리라. 물 론 초심자가 제일 매운맛에 도전할 필요는 없다. 매운 짬뽕과 떡볶이가 그렇듯 공포와 미스터리, 그리 고 스릴러 소설에도 무서움의 단계가 있다. 조금씩 자극을 늘리며 맛보는 것도 공포를 소비하는 재미 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책과 여름] 등골이 오싹해지는 무더위 피서법, 이번 여름 어떤 공포 소설 읽고 계신가요? 😱👻
안녕하세요, 이웃 여러분! 에어컨 바람 아래 시원한 수박 한 조각 먹으며 읽는 무서운 이야기만큼 완벽한 피서가 또 있을까요?
오늘 소개해 드리는 글은 《출판N》 Vol.66(2026년 7~8월호) 커버스토리에 실린 전건우 작가님의 <무더위에는 무서운 이야기> 입니다.
어릴 적 밤잠을 설치게 했던 ‘빨간 마스크’ 괴담부터 요즘 큰 사랑을 받는 K-오컬트, AI 괴담, 그리고 최신 해외 스릴러까지! 전건우 작가님은 우리가 왜 여름마다 매운 떡볶이를 찾듯 자발적으로 ‘공포’에 끌리는지 위트 있게 풀어내어 줍니다.
🕯️ K-오컬트의 매력: 박해로 작가의 『산군: 당산나무 기담』
✍️ 한국 공포 장르의 새로운 바람: 조예은, 남유하, 배명은, 청예 작가 & 매드클럽
🇯🇵 일본 화제의 공포 미스터리: 세스지 작가의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 북미를 사로잡은 스릴러 & 거장: 프리다 맥파든의 『하우스메이드』, 스티븐 킹의 명작들
일상의 스트레스와 현실의 두려움을 잠시 잊게 해주는 공포 소설 한 권.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와 서점 매대에서 무서운 책들이 사라지기 전에, 진짜 ‘무해하고 서늘한 바캉스’를 떠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 이웃님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이웃님 인생에서 가장 무섭거나 재미있게 읽었던 공포·스릴러 소설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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