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N Vol. 63 2026 3~4월호, 해외동향, 세계 아동청소년문학의 중심에 선 작가, 이금이
해외동향
세계 아동청소년문학의 중심에 선 작가, 이금이
김지은(서울예술대학교 문예학부 교수, 아동청소년문학 평론가)
2026. 3+4.
왜 세계는 이금이 작가에게 주목하는가?
어린이책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볼로냐는 상징적인 이름이다. 해마다 봄이면 볼로냐국제아동 도서전(이하 볼로냐도서전)이 열리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의 작가와 출판인들은 어디선가 함 께 일하고 헤어지면서 “내년 볼로냐에서 만나자.”라는 인사를 나눈다. “올해 볼로냐 다녀오셨어요?”라 는 질문은 아동청소년 출판 관련 이슈나 전망을 나누는 대화로 이어지곤 한다. 이번 2026년 볼로냐도 서전을 앞두고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이금이 작가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Hans Christian Andersen Award, 이하 안데르센상)을 수상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다.
이금이 작가(출처: 밤티)
안데르센상은 아동문학계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리는 권위 있는 상으로, 2년에 한 번씩 수상자를 선정한 다. 볼로냐도서전에서 안데르센상의 최종 수상자 발표는 개막식 이후에 열리는 가장 큰 행사다. 글 작 가 부문과 그림 작가 부문으로 나누어 시상하며 최종 후보는 약 2개월 전에 미리 공표한다. 이 상을 주관·운영하는 것은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nternational Board on Books for Young People, 이하 IBBY)다. 볼로냐도서전의 메인 홀에서 안데르센상 최종 수상자를 발표하며 이 광경은 전 세계에 온라인으로 생중계된다. 발표자가 이름을 언급하기 전까지는 수상자 본인은 물론 누구도 결과를 미리 알지 못한다. 이 상을 주관하는 IBBY는 부스에 최종 후보자들의 프로필 현수막을 나란히 걸어두고 있 다가 수상자가 발표되면 그의 현수막을 새로 건다.
안데르센상의 상징
올해는 44개국에서 심의를 거쳐 추천한 78명의 작가가 각국을 대표하며 안데르센상의 후보에 올랐다. 우리나라에서는 글 작가 부문에 이금이 작가, 그림 작가 부문에 김동수 작가를 추천했다. 세계 각국의 어린이책 전문가로부터 지원서를 받아 엄정한 절차를 거쳐 선출된 10명의 심사위원회는 약 1년간의 충분한 심사 기간과 여러 차례의 회의를 거쳐 수상자를 결정한다. 이 상의 심사위원에 오르는 것도 수 상에 못지않은 커다란 영예인데 2022년에는 우리나라의 이지원 평론가가 심사위원을 맡은 바 있다. 시상식은 올해 8월 6일부터 9일 사이에, 제40회 IBBY 총회가 열리는 캐나다 오타와에서 진행될 예정 이다. 덴마크 여왕이 이 상의 증서와 메달을 수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024년에 이어 두 번째로, 그러니까 연속으로 안데르센상 최종 후보에 오른 이금이 작가는 올해 글 작가 부문에서 수상할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만약 수상하게 된다면 2022년 그림 작가 부문에서 수상한 이수지 작가에 이어, 두 번째 수상자이자 글 작가 부문에서는 최초의 수상이 되는 것인데 참으 로 대단한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아동청소년문학 작품이 해외에 소개된 역사는 서구 여러 나라와 일본 등에 비해 매우 짧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역사적인 아동문학상의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한 지점에 이르렀다는 것이 놀랍고도 감격스럽다.
그렇다면 왜 세계는 이금이 작가의 작품에 주목하는가? 그의 이야기는 어떻게 세계 아동청소년문학의 예술적 지평을 넓히고 있는가? 어느 곳을 밝혀주고 있으며 무엇 때문에 이토록 거듭 주목받고 있는가? 그 맥락을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아동청소년문학의 현재와 미래를 가장 정확히 진단하는 방법 중 하나가 안데르센상에 오른 작가들을 살펴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4월의 볼로냐에서 기쁘고 영광스러운 소식이 들려오기를 바라며 이금이 작가의 작품이 갖는 의미를 살펴본다.
이금이 작가의 작품 세계: 이주하는 삶과 새 시선의 발명
이금이 작가는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사계절, 2016), 『알로하, 나의 엄마들』(창비, 2020), 『슬픔 의 틈새』(사계절, 2025)라는 ‘여성 디아스포라(Diaspora)’ 청소년소설 3부작으로 청소년문학의 새로운 예술적 접근 경로를 보여준 작가다. 근현대 동아시아 역사의 격랑 속에서 이주자가 된 여성 청소년의 삶을 핍진하게 그려내어 그동안 꼭 채워졌어야 하는 아동청소년문학의 공백을 채웠다. 이주자의 삶이나 전쟁과 국가 폭력을 다룬 청소년소설은 그간 여러 경로로 출간되었지만, 이주자를 맞이하는 입장의 난 감함과 이해, 그리고 청소년, 그것도 주로 남성 청소년이 폭력에 의해 파괴되거나 전쟁을 감당하는 경 험에 대한 수세적 고증과 재현이 대부분이었다.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알로하, 나의 엄마들』, 『슬픔의 틈새』
그러나 이금이 작가는 능동적이고 독창적인 시각에서 이 문제에 다가선다. 어린이와 여성이 전쟁을 어 떻게 돌파했고 이주 이후의 삶을 스스로 창조하며 새로운 역사적 주체로 성장해 갔는지를 그려낸 것이 다. 이금이 작가의 작품 속 이민자는 떠나온 사람들이 아니라 당도한 사람들이며 붕괴되는 인물이 아 니라 연대를 통해 빛을 만들어내고 사랑을 생성하는 인물들이다. 이금이 작가가 그려낸 여성 청소년들 의 행보는 지난 역사의 잔혹한 순간들과 극복의 과정을 돌아보는 드라마로, 무거운 울림을 가지면서도 다음 세상을 날아갈 듯 꿈꾸게 하는 지향의 힘을 지닌다는 점이 특별하다.
‘가족’과 ‘다양성’에 대한 고민도 이금이 작가의 중요한 주제다. 1994년 출간된 『밤티마을 큰돌이네 집』(푸른책들)에서 출발해 『밤티마을 영미네 집』(푸른책들, 2000), 『밤티마을 봄이네 집』(푸른책들, 2015)을 거쳐 2024년에 출간된 『밤티마을 마리네 집』(밤티)은 30년에 걸쳐 변화하는 가족 속의 어린 이를 보여주었다. 이금이 작가의 가족에 대한 접근은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개척이었다. 한 부모 가정, 이혼과 재혼, 입양, 비혈연 가족, 1인 가구, 이주 배경의 이웃, 반려동물로 확장되는 가족의 모습을 앞 선 감각으로 짚어나갔다.
『밤티마을 큰돌이네집』(밤티), 『밤티마을 영미네 집』(밤티), 『밤티마을 봄이네 집』(밤티), 『밤티마을 마리네 집』
이금이 작가의 동화 속에는 독자가 문제를 실감하기 전부터 문제가 제안되었으며 해결되고 있었다. 견 고한 차별과 편견을 문학의 힘으로 녹이는 그의 작품들은 우리가 처음으로 사랑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보게 만들었다. 설혹 응달의 시간이 찾아오더라도 그것은 잠시이며, 어린이가 애쓰며 살아가는 이 모든 삶은 타당하고 자랑스럽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어린이는 상처와 눈물보다 환대 를 먼저 배울 수 있었다. 그는 어린이가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선을 발명한 셈이다.
이금이 작가의 작품이 인정받는 이유
2004년 출간된 『유진과 유진』(푸른책들)은 아동 성폭력을 다룬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아동 성폭력의 현실을 언급조차 꺼릴 때 이금이 작가는 이를 전면적이고도 솔직한 방식으로 이야기했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여성 청소년, 큰 유진과 작은 유진을 서사에서 소재를 드러내는 인물로 소모하지 않고 오히 려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성폭력 생존자의 건강한 성장을 솔직하게 보여줬다는 점이다. 성폭력 생존자 들의 고발이 이어진 페미니즘 리부트(Feminism Reboot) 시기였던 2015년보다 11년을 앞서 있었다. 고위층의 아동 성폭력 범죄를 기록한 엡스타인 파일(Epstein File)의 폭로가 지지부진한 지금의 현실을 생각하면, 2004년에 이 작품이 얼마나 용감한 의미를 지니는지 실감할 수 있다.
『유진과 유진』(밤티), 영화 <세계의 주인> 포스터
여성 청소년들에게 이 책이 건네준 연대의 의미를 안데르센상 위원회에서도 깊이 공감하는 것으로 짐 작된다. 2025년에 개봉해 국내외 영화제에서 수상 소식을 전한 영화 <세계의 주인>은 아동 성폭력을 경험한 청소년의 성장을 다룬 영화다. 이 영화의 윤가은 감독은 소설 『유진과 유진』에서 깊은 감명을 받아 원작을 영화로 만들고자 도전한 적이 있었다고 인터뷰했다. 그리고 <세계의 주인>을 쓰고 제작하 는 과정에서도 『유진과 유진』으로부터 큰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금이 작가의 작품이 한 세 대 젊은 여성들에게 얼마나 밝고 명징한 신호수가 되었는지 알 수 있다. 또 다른 그의 작품 『망나니 공주처럼』(사계절, 2019)은 성역할 고정관념을 명쾌하게 뒤집으며 무수한 공주 이야기의 전형을 허문 동화다. 이 작품을 통해 자아 존중감을 회복한 어린이들이 자라나 다시 『유진과 유진』, 여성 디아스포 라 3부작의 독자가 된다. 그리고 그들의 길을 걷는다.
지금까지 이금이 작가의 작품을 읽고 힘을 얻었던 것이 우리나라의 아동청소년이었다면 앞으로는 세계 의 독자가 그의 작품을 읽고 더 활발하게 미래에 대한 고민과 희망을 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 국의 맥밀란(Macmillan Publishers), 이탈리아의 몬다도리(Mondadori) 출판사에서 『알로하, 나의 엄 마들』의 번역본이 출간되었으며, 앞으로도 이번 안데르센상 최종 후보 추천 과정을 지켜본 세계 여러 나라의 출판사들이 이금이 작가에게 러브콜을 보내올 것으로 예상한다. 안데르센상 심사위원회가 아직 번역본이 많은 편도 아닌 이금이 작가를 연속적으로 주목하고 최종 후보의 반열에 올려둔 것도 이 작 품이 지니는 시대적 의미와 더 나은 미래로 우리를 이끄는 예술적 영향력에 대해 동감하기 때문일 것 이다. 2024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한국 소설이 세계의 독자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면, 이제는 이금이 작가가 세계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우리 문학의 열광적인 독자로 모시고 오게 될 것을 기대해본다.
『망나니 공주처럼』 『알로하, 나의 엄마들』 영문판 『The PictureBride』 (Scribe Publications, 2022)
함께 가는 세계와 문학을 통한 평화
올해 제63회를 맞는 볼로냐도서전의 주제는 “함께 하면 더 좋아져요(Together we are better).”다. 지금 세계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피격과 폭음 아래 수많은 어린이의 생명과 안전이 무참 히 짓밟히고 있는데도 평화의 길은 잘 보이지 않는다. 곳곳에서 집과 고향을 잃은 난민들이 목숨을 부 지할 수 있는 터전을 찾아 이동하고 있다. 꼭 전쟁 때문이 아니더라도 일자리를 찾아 움직이는 사람들 이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장면은 이제 익숙하다. 이주하는 삶은 떠나는 사람에게나 맞이 하는 사람에게나 일상이 되었다. 친구를, 이웃을, 동료를 대하는 태도를 돌아보고 차별과 혐오를 경계 해야 하는 시점이다. 볼로냐도서전의 주제가 함께 하는 삶에 대한 것인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4월 13일부터 16일까지 열리는 올해 볼로냐도서전의 주빈국은 노르웨이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노르웨이 그림책들과 아동청소년출판의 현황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노르웨이가 이번에 세계의 어린이 독자를 향해 제안한 물음은 “만약에(What if)”다. 고정된 것처럼 보 이는 다른 존재와 나의 자리, 의심해본 적 없는 관계, 무심코 따르던 규범, 안정된 질서에 대해서 “만 약에”라는 과감한 상상을 펼쳐보자는 것이다. “만약에 위가 아래라면? 만약에 바깥이 안쪽이라면? 만약 에 내가 당신이라면?” 어떠할 것인지 떠올려보라고 한다. 만약에 일어나는 변화를 상상하는 일은 즐거 울 수도 있고 괴로울 수도 있다. 다만 책과 함께 생각해보는 것은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아니니까 마 음껏 그 어떤 상상에 도전해도 괜찮다.
2026년 볼로냐도서전의 주빈국 노르웨이 홍보 포스터
책은 어린이의 자유로운 상상을 끝까지 응원하는 포용의 매체다. 상상하다 보면 현실에서 우리가 바꾸 어야 하는 부분이나 불합리한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하면 더 좋아져요.”라는 본 전시 의 주제와 “만약에”라는 주빈국 전시 주제를 관통하는 사회적 배경은 지금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절박 한 장면들이다. 아침마다 전쟁 소식을 들으며 학교의 교실과 거리, 누군가의 일터에서 벌어지는 증오와 폭력에 대한 두려움 속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다. 난폭한 시절일수록 함께 살아가는 일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다른 존재의 마음을 생각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올해 볼로냐도서전의 테마 이미지는 매우 흥미롭다. 어떤 인물이라고 특정하기 어려운, 기 하학적인 형태가 어우러진 색색의 여러 가지 얼굴 그림이 마치 가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이유는 이 마에서 턱까지 종의 구분을 넘어선 다양한 얼굴들이 독자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려나가야 할 공존과 평화의 세계가 어떤 모습인지 예상해볼 수 있는 포스터 이미지가 올해 볼로냐도 서전을 대표하고 있다. 참고로 볼로냐도서전 포스터는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된 작가가 그리게 되는데 올해는 우리나라의 차부미 작가가 발탁되어 이 이미지를 그리는 영예를 안았다.
2026년 볼로냐도서전 테마 이미지(출처: 볼로냐도서전 홈페이지)
이금이 작가의 작품은 이렇게 다른 얼굴들이 서로 바라보고 아끼고 함께 웃는 세계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부디 올해 볼로냐도서전 현장에서 그의 안데르센상 수상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원한다. 그리 고 이번 도서전을 계기로 더 많은 세계의 출판 관계자들과 독자들이 우리 아동청소년문학과 그림책에 관심을 갖고 숨겨진 보물들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무엇보다 문학의 소원이자 세계 어린이 들의 소원이기도 한 평화가 어서 빨리 찾아와 우리 모두 평온한 가운데 책 읽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날이 되길 간곡하게 바란다.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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