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AI 시대의 편집]
우리는 어떻게 쓰고 무엇을 보는가
조선우(책읽는귀족 대표)
2026. 3+4.
우선 ‘편집의 미래’라는 주제를 듣자마자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지능(이하 AI) 시대는 이 제 인류의 현재이자 피할 수 없는 미래가 되었다. 20년 이상 출판 편집자의 길을 걸어온 필자는 ‘편 집’이라는 말을 들으면 항상 가슴이 뛴다. ‘편집’이라는 단어가 필자에게 하나의 개념으로 자리 잡은 것은 일본 편집자 마쓰오카 세이고(Matsuoka Seigo)의 『지의 편집』(지식의숲, 2016)을 통해서였다. 그는 편집을 “지식을 연결하는 행위”로 규정했다. 편집은 서로 다른 사유를 교차시키는 작업이라는 것 이다. 이 개념에 기대어 말하자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조합할 수는 있어도 무엇을 연결할지 판단하는 기준은 여전히 인간 편집자의 몫이다.
출판 현장에 들어온 AI
그동안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개최하는 출판 세미나 등을 통해 AI가 출판계에 빠른 속도로 들어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들었다. 필자가 1인 체제로 운영하는 출판사에서도 AI는 또 한 명의 직 원과 같은 역할을 한다. 유료 AI 대화형 서비스(ChatGPT Plus)를 1년가량 사용하며 다양한 역할을 맡겨 보았다. 아래 문단에서 상세히 서술하겠지만, 글쓰기는 AI로 대체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표지 디자인과 이미지를 생성하거나, EPUB 3.0 전자책의 코드 제작 등 AI와 성공적인 협업을 했던 경우도 있었다.
AI가 인간의 업무에 관여하지 않는 영역은 이제 거의 없다. 다만, 그 역할이 어디에서 최적화될지를 가려내는 일이 관건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필자도 AI를 다양한 분야에 투입해 실험해 보았다. 글쓰 기, 문서와 메일 작성, 표지 디자인, HTML 코드 제작까지 확장했다. 그리고 출판사의 홈페이지 제작 에도 AI를 활용했다. 필자는 과거에도 출판사 홈페이지를 운영했지만, 올해 초 현재 플랫폼을 AI와 함 께 새로 구축했다. 전문 프로그래머가 아니어도 AI를 활용해 기본적인 홈페이지 제작이 가능해지면서, 홈페이지의 메뉴를 설계하고 콘텐츠를 배치하는 일까지 편집자의 업무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결국 그 출판사의 책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편집자이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던 홈페이지를 AI와 함께 2주 만에 무료로 구축했다.
출처: 책읽는귀족 홈페이지
쉽지 않았을 EPUB 3.0 전자책 제작도 AI 덕분에 시도해 볼 수 있었다. EPUB 3.0은 EPUB 2.0보 다 구조가 훨씬 복잡해 HTML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지만, AI와 협업하면서 편집자도 직접 제작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리고 전자책 표지 디자인은 이제 AI가 맡고 있다. 이렇게 출판 현장에는 어느새 AI가 깊숙이 자리 잡아 버렸다. 그러나 편집자로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이러한 기술적 역량과 달리, 아직 AI가 인간을 뛰어넘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글쓰기’와 ‘편 집’이다.
AI 글쓰기 실험과 패턴
AI를 활용하여 출판의 영역 중 ‘글쓰기 실험’을 해보았다. 처음 AI가 작성해주는 원고를 보았을 때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오탈자 하나 없이 질서정연한 원고에서 앞으로 인간의 글쓰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충격과 혼돈을 겪을 정도였다. 그러나 실험을 반복한 결과, AI가 즐겨 사용하는 문장 패 턴이 있고 그 문장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알려진 대로 정형화된 문장만 생산한다는 것이다. AI는 학습된 틀 안에서만 움직인다. 문장도 여러 개의 틀을 반복해 사용하여 생산 할 뿐이다. 그래서 감성적 은유와 함축적인 표현, 문화적 배경 등 다양한 의미를 담은 문학 영역에서 AI의 글쓰기는 더 치명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인문학적인 글쓰기에서도 살아있는 인간의 고찰이 비어 있게 된다.
AI가 생성한 글을 여러 차례 살펴보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장 패턴이 있는데 그중 하나를 소개하자 면, “단순히 A가 아니라, B이다.”라는 형태다. 이 패턴 하나만 기억해도 AI가 작성한 글인지, 아닌지 금방 판독할 수 있을 것이다. 몇 가지 그 패턴을 더 소개하자면 “흔들린다.”, “단단한”이라는 표현의 패턴이 반복된다. 이런 표현이 들어간 글도 대부분 AI가 작성한 흔적이다. AI가 작성한 특정 문장에 패턴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많은 사람은 그 글을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AI가 썼다는 ‘낙인’을 노출한다. 조금 더 주의력이 있는 사람은 AI가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단순히”, “단순한”이라는 표현을 삭제하거나 다른 단어로 수정할 것이다. 하지만 AI의 패턴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은 수정한 문장마저도 출처가 어디인지 비교적 쉽게 알 수 있다.
AI는 무난한 글을 빠르게 만들어낸다. 글쓰기가 부담스러운 사람에게 분명히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 지만 출판을 전제로 한 원고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앞서 언급한 일정 패턴에 갇힌 글쓰기가 되기 쉽 고, 오탈자와 비문을 바로잡는 보조적 교정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오탈자와 비문 역시 정확하지 않은 때도 있다. 결국 사실을 확인하고 사유의 방향을 결정하고 문장의 밀도를 끌어올리는 일은 인간의 몫 이다.
그래서 편집자는 무엇을 보는가
이렇듯 AI가 쓴 문장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글의 확장성, 다양성, 섬세함에 한계가 있다. 필자가 AI로 출판 실험을 통해 내린 결론은 분명하다. 가장 대체하기 어려운 분야는 단연 인문학 영역이다. AI의 가장 분명한 한계는 스스로 사고의 방향을 설정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AI가 내놓는 글은 결국 확률에 기반해 가장 그럴듯한 단어를 배열한 결과에 가깝다. 우리는 처음 AI와 대화를 나누면 착각하게 된다. 마치 사이버상의 인격체와 실제로 대화를 나누는 듯한 착각 말이다. 하지만 AI는 수많은 데이터 속에 서 사용자의 문장 흐름에 맞는 표현을 조합하는 기계적 시스템일 뿐이다. 그 문장 안에는 인간처럼 스 스로 판단한 사고의 흔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출처: 챗지피티(ChatGPT)
하물며 인문학적 글쓰기, 곧 사고와 통찰을 AI의 문장에 기대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것은 단어의 조합 이라는 미로 속에서 결국 스스로 길을 잃는 일에 가깝다. AI가 글을 정리하고 요약하는 동안 간과해서 는 안 되는 것이 있다. 편집은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 문장이 어떤 사유의 구조 위에 서 있는지를 읽어내는 ‘판단의 행위’라는 점이다. 문장이 아무리 정돈되어 있어도, 그 안에 사고 의 층이 쌓여 있지 않다면 그것은 단지 껍데기 표현에 불과하다. 편집자의 역할은 문장의 표면을 손보 는 데서 멈추면 안 되고, 그 문장을 떠받치고 있는 생각의 구조를 확인해야 한다. 그 구조를 보지 못 하면, 매끈함은 오히려 착시가 된다.
그래서 AI 시대에 인문학적 저자를 발굴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 일의 우선순위는 문장에만 기대어서 글 쓰는 저자를 골라내어 제외하는 것이다. 인문학적 영역의 글쓰기는 다른 일반적인 글쓰기와 다르다. 좋은 문장만 모인다고 해서 좋은 글이 될 수 없으며 깊고 켜켜이 쌓인 사고의 구조가 중요하다. 인문 학 도서에는 ‘생각의 건축’이 설계되고 통찰이 그 건축의 뼈대 안에 알맹이로 채워져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필자는 원고를 읽을 때 글의 구조를 먼저 살펴본다. 저자의 세계관 구조와 방향이 인간의 근원 적인 철학 문제에 바탕을 두는지, 생각의 구조가 안정적인지, 몇 겹으로 되어 있는지 등을 먼저 파악하 는 것이 중요하다. 구조가 잘 짜인 원고라면 저자에게 연락해 인문학적 글쓰기를 제안한다.
소재는 협의를 통해 저자가 잘 알거나 써보고 싶어 하는 분야를 선택하고 방향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인문학은 인간 존재의 영역이기 때문에 소재는 어떤 것이든 가능하다. 방향성과 생각의 구조, 통찰의 깊이만 여러 겹으로 쌓이게 된다면 인문학적 작품이 탄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대한민국 역사 다』(책읽는귀족, 2019), 『우리 신화로 풀어보는 글쓰기』(책읽는귀족, 2019)를 쓴 최성철 작가는 처음 문학 장르의 원고를 보냈지만, 필자는 그동안 그가 출간한 작품을 분석하고 전공이 역사라는 사실에 기반해 인문학 작품으로 기획하여 책을 출간했다.
글쓰기를 AI에게 미루면 ‘생각하는 인간’은 사라진다
AI를 활용해 본 결과 분명해진 지점이 있다. AI가 기술적인 부분을 보조하고 효율을 높이는 데에는 탁 월하지만, 인문학적 글의 방향을 설정하고 의미의 중심을 결정하는 판단은 여전히 인간 편집자의 몫이 라는 사실이다. 현재 AI에게 글을 편집하는 작업을 명령하면 문장을 압축하고 정리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다.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고 구조를 단순화하며, 매끄럽고 정돈된 문장을 빠르게 만들어내기도 한 다. AI는 초고를 정리하고 구조를 잡으며 문장을 교정하는 데에도 분명 도움이 된다. 그러나 문장에 스며 있는 감정의 결이나 경험에서 비롯된 미묘한 공기는 비효율적인 요소로 처리되기 쉽다.
애증과 회한 같은 정서의 섬세한 파동도 마찬가지다. 에세이에서 중요한 여백, 서술의 다차원적 의미, 말하지 않은 함의는 제거된다. 그것이 AI 글쓰기의 기본적 작동 방식이다. 정돈은 이루어지지만, 그 글 의 깊이는 얇아진다. 또한 계속 글쓰기를 AI에만 의존한다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사고의 진화는 멈춘 다. 혹자는 어떤 명령을 내리고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하지만, 인 간의 뇌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층위의 사고를 AI에게 모조리 입력하지 않는 한 AI는 인간의 글쓰기를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한편, 출간을 전제로 한 원고, 특히 인문학적 사유를 담아야 하는 글에서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드러난 다. AI는 동일한 패턴을 반복하고 평균화된 표현을 선호하며 예측이 가능한 구조 안에서 문장을 배열 하기 때문에 문장은 안정적이지만 긴장감은 약해지고, 개성은 희미해진다. 독자가 문장을 따라가며 경 험하는 사유의 굴곡, 감정의 상승과 하강, 의미가 서서히 쌓이는 과정은 충분히 구현되지 못한다. 인간 의 사유와 개인의 색깔이 사라진 글들만 세상에 쌓여갈 것이다. 문장은 쌓이겠지만, 생각은 쌓이지 않 게 되는 것이다.
출처: 챗지피티(ChatGPT)
최근에는 사람의 목소리를 AI에 학습시켜 오디오북을 제작하는 기술도 등장했다. 특정 문체도 목소리처 럼 AI가 학습하게 해서 비슷한 문체로 글을 만들 수 있다. 기술은 음성을 재현하고 문체를 모방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이처럼 형식의 재현은 가능해졌지만, 그 형식을 만들어낸 최초의 판단과 사유의 출 발점까지 대체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기술은 외형을 복제할 수 있어도 의미를 선택하고 방향을 설 정하는 기준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기술이 평균을 강화할수록 오히려 인간 고유의 문체와 사고의 흔적은 더 선명해질 가능성도 있다. 정 형화된 문장이 범람할수록 깊이가 있는 사유와 개성 있는 표현은 더 또렷하게 구별된다. 어쩌면 앞으 로 AI 시대에는 인간의 순수한 사고에서 나온 자연 언어가 골동품처럼 귀하게 대접받을지도 모른다. 기술은 문체를 모방하고 목소리를 재현할 수 있어도 인간의 창의력은 모방할 수 없고 인문학적 통찰 역시 따라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창의력과 통찰력은 반복되는 패턴 안에 갇혀서 존재할 수 없기 때문 이다. 패턴을 읽는 힘이 통찰력이지, 패턴 안에 머무르는 생각은 통찰의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다. 생각을 멈추는 순간 인간다움도 함께 약해진다. 글쓰기는 그 생각을 단련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이 훈련은 멈출 수 없다. 언어는 인간 사고의 그릇이며 글쓰기는 그 사고를 확장하는 훈련의 장이다.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고 쓰는 일을 멈춘다면, 그 자리는 기술이 채우게 될 것이다. 그 러나 기술이 채우는 자리는 기능의 자리일 뿐, 의미를 설정하는 자리는 아니다. 결국 편집은 사유의 구 조를 읽고 방향을 결정하는 판단의 영역이다. 그 판단을 대신할 기술은 없다. 그러므로 AI 시대일수록 인문학 편집자의 역할은 오히려 더 중요해질 것이라 믿는다.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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