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향 희망 없는 희망을 기다리며: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마침표

해외동향, 희망 없는 희망을 기다리며: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마침표

해외동향 희망 없는 희망을 기다리며: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마침표 안지미(알마출판사 대표) 2026. 1+2.

책보다 먼저 만난 영화 <사탄탱고(S atantango)>

<사탄탱고>를 처음 만난 것은 2000년 4월,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였다. 고요하지만 설렘으로 가득 한 열기를 품고 있던 봄날의 전주, 그 중심 어딘가에는 1955년 헝가리의 작은 도시 페치(Pecs)에서 태어난 영화의 거장 벨라 타르(B ela Tarr)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는 수많은 영화평론가들로부터 ‘거장 중의 거장’, ‘시간의 예술가’라고 평가를 받는 작가이자, 많은 시네필들 사이에서는 평생 동안 극장에서 단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전설의 영화 <사탄탱고>의 감독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이 영화에 대해서 “파괴적이면서도 일곱 시간 내내 매혹적이다. 나는 죽 을 때까지 이 영화를 매년 한 번씩 기꺼이 볼 것이다.”라고 극찬했다. 그런데 벨라 타르는 감독으로서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50대 중반에 “내가 할 일은 이미 다 했다.”라며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2026년 1월 6일 “색채를 사라지게 함으로써 색채를 창조한” 위대한 예술가 벨라 타르는 지병으로 투병하던 중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영화 <사탄탱고> 포스터,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Krasznahorkai Laszlo)의 데뷔작 『사탄탱고』 초판 표지 대작 중의 대작 <사탄탱고>가 전설이 된 이유 중에는 그의 이른 은퇴도 있지만, 438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이 있다. 이 때문에 국내 극장에서는 좀처럼 <사탄탱고>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그 런데 밀레니엄이라는 상징적인 순간에 마침내 이 영화를 조우하게 된 것이다. 상영하는 내내 누군가는 잠들었다가 깨기를 반복했고, 누군가는 검은 비와 진흙, 끝없이 이어지는 탱고와 거미줄 같은 흑백의 느린 스크린 속으로 온전히 빨려 들어갔다.

크러스터호르커이 라슬로를 국내에 소개하기까지

극장 밖으로 나왔을 때 피로와 경탄이 묘하게 뒤섞였던 2000년 봄날의 기억은 어느새 희미해지고 있 었다. 그렇게 18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내가 몸담고 있는 알마출판사에서 ‘문학을 매개로,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나는 특별한 모험’이라는 모토 아래 ‘알마 인코그니타(Incognita)’ 시리즈를 기획 하여 작품을 찾고 있었다. 바로 그때, 전설의 영화 <사탄탱고>의 원작이라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던 크러스터호르커이 라슬로(이하 라슬로)의 소설 『사탄탱고』(1985)를 운명처럼 마주하게 되었다. 『사탄탱고』라는 제목을 듣는 순간, 오래전 전주에서 내 주위를 감쌌던 어떤 공기가 마법처럼 순식간에 되살아났다. 나도 모르는 사이 2000년 전주의 한 극장에서 이미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반드시 출간해야 한다.”라고 확신했고, 그 끌림을 따라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하지만 소 설을 번역할 역자를 찾는 일부터 출간까지의 모든 과정이 고난과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라슬로(출처: 위키미디어) 그런데 왠지 라슬로의 작품 세계를 만나기 위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인내의 시간이라고, 그의 작업과 는 잘 어울리는 과정이라고 스스로 위안하니 그 시간이 고통스럽지만은 않았다. 책을 출간한 뒤에는 인내했던 시간만큼 기쁨의 순간을 특별하게 나누고 싶었다. 그것은 영화 <사탄탱고> 상영회를 연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게 헝가리문화원의 문을 두드렸으며, 서울아트시네마와 영화평론가의 도움도 받았 다. 모든 것이 이상하리만치 순조로웠고 이제는 거의 마침표에 가까이 다가갔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그렇게 쉽게 다다를 수 있는 마침표가 아니라는 듯 마지막 순간에 벨라 타르와 라슬로의 반대로 <사탄탱고>의 상영은 무산되고 말았다. 실망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상하게도 작품 앞에서 진지 하고 까다로운 두 작가의 태도에 오히려 깊은 경외감을 품었다. 그들의 단호함은 예술이 지닌 무게 그 자체였다.

영화 <사탄탱고>, <베르크마이스터 하모니즈(Werckmeister harmoniak)>, <파멸(K arhozat)>, <토리노 의 말(A torinoilo)>, <런던에서 온 사나이(A londoni ferfi)> 등 벨라 타르의 중요한 작품은 대부분 라슬로와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사탄탱고>, <베르크마이스터 하모니즈>는 라슬로의 동명 소설과 『저항 의 멜랑콜리(Az ellenallas melankoliaja)』(1989)를 영화화된 것이고, <파멸>과 <토리노의 말>은 라슬 로가 시나리오를 썼으며, <런던에서 온 사나이>에는 각색 작가로 참여했다. 이쯤 되면 두 작가는 영혼 의 동반자라 불릴만하다. 많은 평론가들은 이들의 협업을 두고 “문학적 절망이 영상의 침묵으로 옮겨간 기적”이라고 찬탄한다.

또다시 시간은 흐르고 2025년 3월 눈이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날, 영화 <사탄탱고>를 서울의 한 극장 에서 다시 만나는 행운이 내게 찾아왔다. 25년 만에 스크린을 통해 만난 <사탄탱고>는 2000년의 첫 만남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완벽에 가깝게 나를 휘젓고 뒤흔들었다. 시간을 관통하는 불멸의 예술 만이 선사하는 감동이 이런 것일까? 라슬로의 작품에 대해 “용암처럼 흐르는, 검은 활자의 강”이라고 표현한 헝가리 시인 조지 시르테스(George Szirtes)의 말처럼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흑백의 이미지들이 용암처럼 거부할 수 없는 압력을 품고 내게 다가왔다.

“마침표는 신에게나 속한 것이다.”라며 마침표를 거부하는 라슬로의 활자들이 일어나 ‘이미지’라는 생명 을 얻어 영원과도 같은 시간 속에 나를 붙들어두려는 것 같았다. 그것은 오롯이 한 작가의 예술 세계 와 나만의 관계 속에 갇히는 경험이자, 시간의 미궁 속에서 세계의 균열과 파멸을 경험하는 것이었다. 예술이 우리를 사로잡는 순간은 결국 ‘세상에 대한 시선’을 바꿔놓고 ‘균열’을 내는 일이라는 것을 분 분명하게 이해하는 순간이었다. 그 시간을 경험하기 이전의 세계로는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런 순간 말이다.

2025년 3월 이후 한동안 내 삶은 <사탄탱고>의 시간으로 느리고 또 느리게, 몽환적으로 흘러갔다. 그 리고 그 시간 속에서 맞이한 2025년 10월 9일, 마침내 스웨덴에서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호명되었다. 이미 2000년에 시작된 어떤 미지의 세계는 일곱 권의 작품들로 이어지 고 있었다. 알마출판사는 2018년 『사탄탱고』를 시작으로 『저항의 멜랑콜리』(2019), 『라스트 울프(Az utolsofarkas)』(2021), 『서왕모의 강림(Seiobo jartodalent)』(2022), 『세계는 계속된다(Megy a vilag)』(2023),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B aro Wenckheim hazater)』(2024)을 독자들에게 내놓았고 2026년 1월 『헤르쉬트 07769(Herscht 07769)』를 출간했다. 어떤 큰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벽돌을 쌓듯 한 권한권을 천천히 쌓다 보니 어느새 이곳에 있었다. 그것은 ‘계획’이 아니라 작 가의 작품 세계에 조금이라도 더 닿고 싶은 ‘호기심과 질문의 시간’에 가깝다.

라슬로(출처: 노벨상 홈페이지)

라슬로의 작품 세계, 그리고 노벨문학상 수상

라슬로의 대표작으로 『사탄탱고』를 꼽는 것은 물론이지만, 다른 한 권을 고르라면 『라스트 울프』를 선 택할 것이다. 『라스트 울프』는 인간과 자연, 문명 사이의 균열과 허약성, 그리고 존재의 근원적 불안에 대한 우화이자 근대 유럽 사회에 드리워진 그림자, 그 경계에서 던지는 질문과도 같은 작품이다. 70여 페이지가 단 한 문장으로 쓰인 이 소설은 읽는 동안 나를 단 한 순간도 놓아주지 않았다. 은퇴한 철학 교수가 늑대들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그 무한한 문장의 흐름 속에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슬픔 과 긴 울림이 남았다. 단 하나의 문장으로 세계를 구축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라스트 울프』는 거의 완벽에 가깝게 방식으로 보여준다.

『사탄탱고』, 『라스트 울프』 한국어판 표지 최근 국내 독자를 만난 『헤르쉬트 07769』는 노벨문학상을 다룬 다수의 해외 언론에서 ‘수상에 결정적 영향을 준 작품’으로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쉼 없이 구축해온 세계의 또 다른 장 엄한 변주다. 600쪽이 넘는 이 소설은 단 한 문장으로 쓰여있다. 통일 독일 이후 동부 지역을 연상시 키는 우편번호 07769의 작은 마을 ‘카나(Kana)’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주인공 플로리안 헤르쉬 트(Florian Herscht)의 서사를 따라간다. ‘온순한 거인’ 헤르쉬트는 그래피티(Graffiti)를 지우는 일을 하다 지역의 네오나치(Neo-Nazi) 조직과 얽히게 된다. 동시에 그는 ‘물질의 완전한 붕괴가 다가오고 있다.’는 위기감을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에게 편지로 전하며, 불안과 확신 사이에서 흔들린다. 마을 곳곳에서 벌어지는 폭력, 광기, 불안, 비극적 오해가 헤르쉬트의 일상에 드리워지고 그의 믿음과 세계는 점점 균열을 향해 치닫는다. 이 작품은 전체주의의 재등장, 문명 아래 숨은 야만성, 현대 유럽 의 불안을 은유적이고 우화적으로 드러낸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라슬로의 문학은 만연체의 문장 속에서 독자들을 시간의 미궁 속에서 길 잃게 함으로써 ‘세계의 종말’ 곁에서 작동한다. 그러나 단순히 파멸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아니다. 그 파멸 너머에서 예술이 어떻 게 다시 인간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지,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문장을 작가 특유의 만연체로 보여 주고 있다. 한림원에서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로 “파멸의 공포 속에서도 예술의 힘을 다시 일깨우는 강 렬하고 비전적인 작품”이라고 밝힌 것처럼, 라슬로는 파국으로 치닫는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희망 없 는 희망’을 말하고 있다고 믿는다. 라슬로가 첫 소설 『사탄탱고』에서 인용한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의 “그러면 차라리 기다리면서 만나지 못하렵니다.”처럼 결코 피할 수 없는 종말이 다가온다 해도 결국 인간은 기다리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25년 12월 8일, 마침내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라슬로가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스 웨덴에서 열린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을 하기 위해서다. 그는 지금까지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과는 전혀 다른 연설문을 선보였다. 그는 문학이나 소설에 대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았고 ‘인간의 존엄성’, ‘희망 의 고갈’, ‘기억의 붕괴’, ‘날개 잃은 천사’ 등에 대해 3막으로 구성된, 쉼표로 이어지는 한편의 모노드 라마 같은 연설문을 모국어인 헝가리어로 낭독했다.

2025년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 중인 라슬로(출처: 노벨상 홈페이지) “202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저는 처음에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러 나 제 안의 희망은 이미 완전히 고갈되어 버렸기 때문에, 이제 천사들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저는 방 안을 이리저리, 앞뒤로 걸어 다니며 천사들을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오르락내리락, 이쪽에서 저쪽으로, 다시 처음 있던 자리로, 그렇게 계속해서 원을 그리듯 걸 으며 천사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눈을 믿지 마십시오, 제가 지금 여기 서서 마이 크 앞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실 저는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왔다 갔다, 또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사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분명하게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제가 지금 말하는 천사들은 새로운 천사들입니다, 이들에게는 날개가 없 습니다, ….”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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