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책들이 거래되는 곳! 2026 러시아 출판시장 보고서 (자체 검열, 리프린트, 국가 직업표준 도입)
Global Publishing Trends Report
7월 러시아 출판시장 보고서 Russia Publishing Market Report for July
러시아 출판·문학계 검열 강화로 ‘지하 출판시장’
배경
최근 러시아 문학·출판 시장에서는 서점이나 공식 출판사를 통해 구하기 어려워진 책들이 중고거래 플랫폼, 텔레그램 채널, 비공식 주문형 인쇄, 온라인 전자도서관 등을 통해 다시 유통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절판본과 희귀본이 거 래되는 중고시장은 과거에도 존재했으나, 최근의 변화는 단순한 희귀도서 거래를 넘어선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 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내 법률과 행정 규제가 강화되면서 판매가 중단된 책을 찾는 독자 수요와, 이 수요를 충족하려 는 비공식 판매자·인쇄업자·온라인 커뮤니티가 결합해 일종의 ‘지하 출판시장’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비공식 유통의 중심에는 성소수자 인물이 등장하거나 젠더·가족·사회 문제를 다룬 문학작품이 있지만, 시장에 서 사라지는 책의 범위는 점차 넓어지고 있다. 특히 ‘외국대리인’으로 지정된 작가의 작품이나, 정부의 역사관 또는 전 쟁 서술과 충돌하는 논픽션, 마약·출산 거부·극단주의 관련 규제에 저촉될 가능성이 있는 책들도 출판사와 서점의 사 전 검토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러시아 문학·출판 시장에서는 아직 법원의 정식 판결로 금지되지 않았더라도, 출판사나 유통사가 위험을 우려해 선제적으로 책의 판매를 중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공식 유통망에서 사라진 책들은 중고시장과 비공식 복제 시장으로 이동하며, 검열이 오히려 새로운 수요와 유통 구조를 만들어내는 역설적인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출판 규제 강화와 공식 유통시장의 위축
러시아에서 성소수자 관련 정보에 대한 법적 규제는 2013년 미성년자 대상 이른바 ‘비전통적 성관계 프로파간다 금 지’ 조항에서 출발했다. 2022년 12월 관련 법률이 개정되면서 적용 대상은 전 연령층으로 확대됐다. 이후 출판물, 영 화, 광고, 온라인 콘텐츠 등에서는 ‘비전통적 성관계 또는 성별 전환을 긍정적으로 묘사한다’고 정부가 판단하는 정보 의 유통이 제한되기 시작했다. 위반으로 판단될 경우 법인은 최대 수백만 루블의 행정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2023 년 러시아 대법원이 이른바 ‘국제 LGBT 운동’을 극단주의 단체로 지정하면서 출판업계의 법적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 다. 어떤 인물이나 사건을 어느 정도까지 묘사해야 ‘프로파간다’나 ‘극단주의 활동’에 해당하는지 명확한 기준이 부족 하기 때문에, 출판계와 서점은 법적으로 금지되지 않은 책까지도 위험 도서로 분류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규제 강화 이후 러시아 대형 서점 및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성소수자 인물이 등장하는 다수의 작품이 판매 목록에서 제외됐다. 여기에는 해당 주제를 핵심적으로 다룬 청소년·로맨스 소설뿐 아니라 세계문학으로 평가받는 고전과 현대문 학도포함됐다.
행정처분 규모도 확대되고 있다. 2022년 이후 LGBT 관련 텍스트를 유통했다는 이유로 여러 서점과 전자도서 플랫 폼을 대상으로 다수의 행정사건이 제기됐으며, 공개적으로 확인된 벌금 총액만 수천만 루블에 달한다. 특히 온라인 도 서·만화 플랫폼들이 집중적으로 대상이 되었고, 디지털 사업자들은 대규모로 콘텐츠를 삭제하거나 접근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행정벌금뿐 아니라 출판 관계자 개인에 대한 형사수사 가능성도 현실적인 위험으로 부상했다. 2026년 러시아 최대 출판그룹인 엑스모 (Eksmo) 관계자들이과거출간된LGBT관련도서의유통문제로조사를받 았다. 해당 사건은 이미 폐업한 청소년문학 전문 출판사 팝콘 북스 (PopcornBooks) 의 재고 및 판매 내역과 관련된 것 으로 알려졌다. 엑스모 측은 문제가 된 책들이 기업 인수 이전에 출간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이 사건은 대형 출판사 역시 과거 출간 목록 전체를 다시 점검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음을 보여주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출판계는 내부 법률 심사를 강화하고 있으며, 일부 대형 출판사는 수십 년 동안 축적된 방대한 도 서 정보를 AI를 활용해 검토한다고 한다. 출간 당시에는 문제가 없었던 작품도 법률과 행정 해석이 바뀌면 추후 위험 도 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러시아 출판계가 직면한 핵심 문제는 공식적인 ‘금지 목록’만이 아니다. 보다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이 처 벌 대상이 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발생하는 자가검열이다. 출판계는 논란 가능성이 있는 원고의 출간을 연기 하거나 포기하고, 번역 판권 계약 단계부터 작품 속 인물과 주제를 검토한다. 이미 출간된 책은 재인쇄하지 않거나 창고 재고를 회수한다. 서점은 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는 대신 판매를 중단하는 쪽을 선택한다. 그 결과 책 한 권이 공식 적으로 금지되지 않았더라도 사실상 시장에서 사라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2022년 이후 검열 우려로 러시아 서점 판매 에서 제외된 도서가 수백 종에 이른다는 조사도 제기됐다. 결국 이러한 규제는 개별 작품의 판매에 그치지 않고, 출판 기획과 판권 수입, 편집 방향, 재고 관리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식 서점에서 사라진 책, 그리고 ‘지하 출판’
공식 유통이 중단된 도서는 곧바로 중고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러시아 최대 중고거래 플랫폼 가운데 하나인 아비 토(Avito) 에서는 절판되거나 판매 중지된 소설을 찾는 독자와 이를 판매하려는 개인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 만 이 역시 일정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므로, 판매자는 책 제목, 작가명과 표지를 명확히 공개하지 않고 올리는 경우가 많다.
또한 수요에 비해 정식 출간본의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최근에는 소규모 인쇄업체나 개인 판매자가 주문형 인쇄를 통 해 절판 도서를 제작하는 ‘리프린트’ 사업이 증가하고 있다. 기존 종이책을 스캔하거나 전자책 파일을 확보한 뒤, 소규 모 인쇄소 또는 가정용·상업용 인쇄 장비를 이용해 종이책을 제작하는 방식이다. 과거 불법복제 도서가 대량 인쇄와 노 점 판매를 중심으로 했다면, 2022년 이후의 리프린트 시장은 온라인 주문형 생산으로 바뀌었다. 판매자는 재고를 대 량으로 보유하지 않고 텔레그램을 통해 주문을 받은 뒤 필요한 수량만 제작한다. 이를 통해 재고 부담과 적발 위험을 줄이고, 독자의 세부 요청에도 대응할 수 있다. 이 중 일부 판매 채널은 수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결제와 배송 방식도 일반 온라인 쇼핑과는 다르다. 판매자는 책값을 개인 간 송금으로 받은 뒤, 대형 마켓플레이스에 는 저가의 문구류나 공책을 판매하는 것처럼 상품을 등록한다. 구매자는 해당 상품을 주문하지만 실제 배송 상자에는 요청한 책이 들어간다. 이렇게 하면 판매자는 마켓플레이스의 물류망을 이용하면서도 판매 상품의 실제 내용을 감출 수 있다.
여기서 발생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저작권이다. 대부분의 리프린트는 작가, 번역가, 출판사 등 권리자의 허가 없이 제 작된다. 판매자는 검열로 사라진 책을 독자에게 제공한다는 문화적 명분을 내세우지만, 수익이 창작자와 번역가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불법복제 사업과 다르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판매가 중단된 작품이라도 저작 권은 계속 유효하기 때문이다. 다만 일부 창작자는 이러한 비공식 유통을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공식적 인 유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작품이 독자에게 전달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2026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영화 《미노타우르》 (Минотавр) 의 안드레이 즈뱌긴체프 감독은 러시아에서 정식 개봉이 어 려운 상황과 관련해, “다른 방법이 없다면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서라도 러시아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데 반대하지 않 는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일부 창작자들이 저작권 보호보다 작품의 접근성과 문화적 전달을 우선시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또한 전자책 형태의 비공식 유통도 확대되고 있다. 텔레그램 채널과 온라인 도서관에서는 공식 판매가 중단된 작품 을 PDF·EPUB 형태로 공유하고 있으며, 일부 서비스는 유료 회원제를 운영할 정도로 규모가 커지고 있다. 채널이 차 단되더라도 새로운 주소로 재개되는 경우가 많아 단속 효과는 제한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새로운 타미즈다트’의 등장
한편 러시아 국내 출판시장이 위축되는 것과 달리 해외에서는 러시아어 독자를 위한 새로운 출판 생태계가 빠르게 성 장하고 있다. 2022년 이후 독일, 체코, 라트비아, 조지아, 이스라엘 등을 중심으로 러시아어 출판사와 독립서점이 잇 따라 설립됐으며, 러시아에서 출간이 어려운 문학작품과 정치·사회 논픽션 등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앞서 필자는 지 난 2025년 8월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shell (f) ’ 출판사를 소개한 바 있다.
이러한 흐름은 소련 시절 검열을 피해 해외에서 책을 출판한 뒤 다시 소련으로 들여오던 ‘타미즈다트 (тамиздат) ’를 떠올리게 한다. 해외 러시아어 출판사는 베를린, 프라하, 리가, 트빌리시 등 러시아어 사용자가 많은 도시를 중심으로 활동을 넓혀가고 있다. 러시아 독자들은 국제배송이나 공동구매, 해외여행 시 직접 반입 등의 방식으로 이들 출판사의 책을 구입하고 있으며, 일부 출판사는 텔레그램을 통한 전자책 판매나 러시아 내 협력 인쇄소를 활용한 소량 제작도 시 도하고 있다.
물론 국제배송 비용 상승과 해외결제 제한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해외 러시아어 출판시장은 러 시아에서 출간이 어려운 작품을 독자에게 연결하는 중요한 창구로 자리 잡고 있으며, 러시아 국내 출판시장과는 별개 의 시장으로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시사점 및 결론
2022년 이후 러시아 출판시장은 규제 강화의 영향으로 큰 변화를 겪고 있다. 단순히 일부 도서의 판매 제한에 그치지 않고, 출판사의 기획·편집·유통 방식이 바뀌었다. 독자들도 공식 서점뿐 아니라 해외 출판사나 비공식 유통망을 통 해 책을 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출판사들은 법적 위험을 줄이기 위해 자체 검열을 강화하고 있으며, 그 결과 공식 시 장에서 유통되는 책의 범위는 좁아지는 반면 비공식 유통망과 해외 러시아어 출판시장의 역할은 점차 커지고 있다.
소련 시대의 타미즈다트와 러시아 이민문학이 꽃피웠던 20세기의 역사가 다시 반복되는 듯하다. 러시아 출판시장 동향을 파악하고 실제 21세기 러시아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식 출판·문학계뿐만 아니라 해외 러시아어 출판시 장과 디지털 기반 비공식 유통의 변화도 함께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참고 뉴스
‘Verstka’ 통신
“러시아에서 ‘지하 도서시장’이 어떻게 생겨났나” (Как в России появился подпольный книжный рынок)
https://verstka.media/kak-iz-za-zapretov-v-rossii-poyavilas-industriya-podpolnoj-literatury <BR>
‘Meduza’ 통신
“즈뱌긴체프 감독 《러시아에서는 ‘미노타우르’를 불법으로라도 보는 것 권유》 (Звягинцев предложил смотреть «Минотавр» в России нелегально, поскольку «другого пути уфильма нет»)
https://meduza.io/news/2026/05/23/zvyagintsev-predlozhil-smotret-minotavr-v-rossii-nelegalno-poskolku-drugogo-puti-u-filma-net/?utm_source
러시아, 오는 9월부터 공식적으로 ‘작가’ 직업 인정
2026년 9월 1일부터 ‘작가’ 직업이 국가가 인정하는 공식 직업으로 분류될 예정이다. 러시아 정부는 최근 작가를 위 한 국가 직업표준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작가는 러시아의 공식 직업 분류체계에서 전문 직업으로 인정받게 되며, 문학 창작 활동에 필요한 직무 기준과 자격 요건 등이 처음으로 제도화될 예정이다.
이번 제도는 러시아도서출판협회가 수년간 지속적으로 건의하며 추진해 온 프로젝트이다. 세르게이 스테파신 협회 장은 “러시아에는 그동안 ‘작가’라는 직업이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며 국가 차원의 직업 인정 필요성을 지속적으 로 제기해 왔다. 국가표준 마련은 문학인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교육 수준 등을 정리한 기준으로서 창작 활동을 보 다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시사점 및 결론
이번 조치는 표면적으로는 작가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창작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 가가 문학 활동을 보다 직접적으로 관리하려는 정책의 연장선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작가의 직무와 자격을 국가가 규 정하게 되면, 제도권에서 인정하는 문학과 그렇지 않은 창작 활동 사이의 경계가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검 열과 문화정책 통제가 강화되는 러시아의 흐름을 고려하면, 문학 역시 국가가 관리하는 문화 영역으로 편입되는 과정 의 하나로 해석할 수 있다.
참고 뉴스
‘로시이스카야 가제타’ 통신
“러시아, 9월부터 ‘작가‘ 국가 직업표준 도입…의미와 변화는?” (В России с сентября вводят профстандарт ”Писатель”: что это значит)
https://rg.ru/2026/06/18/v-rossii-vvodiat-profstandart-pisatel-s-1-sentiabria-2026-goda.html?utm_source=chatgpt.com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달의 러시아 출판 핵심 포인트 3가지!
1. 검열과 자가검열이 만든 ‘지하 출판’과 주문형 인쇄(POD)
성소수자(LGBT) 관련법 개정과 극단주의 규제로 인해 세계 문학 고전부터 최신 소설까지 수백 종의 도서가 서점 매대에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독자들의 수요는 끊이지 않고 있는데요! 텔레그램 채널이나 소규모 인쇄소를 통한 주문형 인쇄(POD) ‘리프린트’, PDF/EPUB 전자책 공유 등 비공식 유통망이 급격히 확장되고 있습니다.
2. 21세기판 소련 시대의 재현? ‘새로운 타미즈다트’의 등장
소련 시절 검열을 피해 해외에서 책을 출판한 뒤 들여오던 ‘타미즈다트(тамиздат)’ 현상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독일, 체코, 조지아, 이스라엘 등 해외 각지에서 러시아어 독립 출판사와 서점이 새로 문을 열며, 러시아 국내에서 출간되기 어려운 문학 및 논픽션 작품들을 독자들에게 연결하고 있습니다.
3. 2026년 9월부터 ‘작가’가 국가 공식 직업으로 인정!
러시아 정부가 오는 9월 1일부터 ‘작가’를 국가 직업표준에 따른 공식 전문 직업으로 분류합니다. 세르게이 스테파신 러시아도서출판협회장은 문학인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창작 지원 체계화를 기대하는 반면, 일각에서는 국가가 문학 활동의 자격과 경계를 직접 관리하려는 통제 정책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시선도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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