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N Vol. 63 2026 3~4월호, 커버스토리 [AI 시대의 편집] 고민하는 힘이 남아 있다는 것

출판N Vol. 63 2026 3~4월호, 커버스토리 [AI 시대의 편집] 고민하는 힘이 남아 있다는 것

 

 

커버스토리
[AI 시대의 편집]
고민하는 힘이 남아 있다는 것
유상훈(민음사 해외 문학 편집자)
2026. 3+4.

 

 

AI는 ‘창조적 활동’을 대체할 수 있을까?
2024년 『도쿄도 동정탑(東京都同情塔)』(신초샤, 2024)으로 제170회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상(芥川龍 之介賞)을 수상한 구단 리에(九段理江) 작가는 해당 작품을 집필하면서 “인공지능(이하 AI)의 도움을 받았다.”라고 밝혔다. 창작 영역에서 AI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암암리에 금기시되어 왔으므로, 이 발언은 확실히 ‘새로운 시대의 문학’에 대한 선언에 가까웠다. 그 뒤로 불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AI 의 발전은 차마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하다. AI와 내밀한 대화를 나눈다거나 심지어 연애를 하는 경우도 있다니 AI는 이미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고 그 영향력은 가히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

 

『도쿄도 동정탑』

 

그럼에도 불구하고 AI는 출판계뿐 아니라 인간의 고유한 역량이라 여겨져 온 ‘창조적 활동’을 둘러싸고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가령, 지난해 최고의 게임 타이틀로 손꼽힌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Clair Obscur: Expedition 33)’는 제작 과정 중에 일부 AI를 활용했다는 이유로 ‘올해의 게임(Ultimate Game of the Year)’ 시상이 철회되기도 했다. ‘창조적 활동’을 AI에 맡긴다는 선택 자체가 일종의 ‘인 간성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하지만 AI는 이미 수많은 인간의 일들을 대체하기 시작한 지 오래다.

 

 

AI를 마주한 문학 편집자의 자세
최근 출판계에서도 AI를 활용한 조잡한 번역물이 돈벌이의 수단으로 무분별하게 제작·유통되는 사건이 있었다. 그 결과물의 질이야 어찌 되었든 일단 창작이나 번역, 편집이라고 하는 ‘일’이 AI에 의해 충분 히 대체될 수도 있다는 예언적 현상을 보았기에, 오래도록 출판이라고 하는 ‘창조적 활동’을 지켜 온 사람들 사이에서 위기감이 고조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과거 출판계에서도 조판기 라이노타 이프(Linotype)의 등장과 함께 큰 반발이 일었다. 조판과 인쇄를 담당하던 노동자들에게는 “수개월 걸 쳐 작업해야 일을 단 한 시간 만에 해치우는” 새로운 기술은 경이로움을 넘어 두려움을 안겨 주었다. 그것은 인간의 노동 가치를 흔드는 동시에 먹고사는 ‘일’을 앗아 가는 위협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잔인하게도 적은 비용을 들여 커다란 이윤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바람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 어떤 폭동도 방직기와 인쇄기를 없애지 못했고, 허버트 프랭크(Frank Herbert)의 『듄(Dune)』(1965)과 같은 세상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이제 누구든 AI와 더 친숙하게 지내야 할 테고, 출판 편집자는 물론 ‘창조적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AI의 영향력을 겸허히 수용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그 같은 기술이 오히려 위기에 처한 ‘인간성’을 더욱 고양해 줄지도 모를 일이다.

 

챗지피티(ChatGPT)로 이미지화한 『듄』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거시적인 차원에서 사회의 흐름을 읽어 내거나 출판업계를 속속들이 경험하고 연구해 온 학자가 아니다. 그저 15년 넘게 문학 편집자로 살아왔을 뿐, 출판의 미래를 논하기에는 통 찰력이든 뭐든 부족하다는 말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당장 먹고사는 데에 급급하면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잊게 마련이다. AI가 등장했을 때, 나는 그저 내 업무를 헐값에 도와주는 놀라운 기술에 몹시 감사한 마음이었다. 또 누군가는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는데 AI가 온 갖 창작물을 학습해서 콘텐츠를 제작해 내는 것이 도대체 무슨 문제냐며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이따금 나도 그러한 생각을 떠올릴 때가 있으니 말이다.

나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창조적 활동’의 현장, 요컨대 출판계에서 생활해 오고 있음에도 섣불리 “AI 는 절대 인간의 창조력을 능가할 수 없어요.”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어쨌든 살아남으려면 이 도도한 흐름에 올라탈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 장르가 가장 인간성, 창의성에 기반한 ‘문학’이라고 해도 마 찬가지다. AI가 우리에게 (불가피하게) 가져다줄 이점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나는 편집자로 서 단지 AI를 윤리적으로 단죄하기보다 인간이 만들어 낸 문명의 이기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AI는 매 순간 세계 각국의 언어와 씨름해야 하는 해외 문학 편집자에게 ‘마법사의 돌’과 같은 광명을 가져다주었다. 영어나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등 몇 가지 언어는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밖 의 낯선 언어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가닿기가 힘들다. 번역기보다 한층 진화된 AI는 좀처럼 전공자를 찾을 수 없는 희귀한 언어조차 우리의 언어로 바꿔준다. 새로운 해외 문학을 우리나라의 문화적 토양 에 심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AI가 선사한 기적의 일부다.

 

 

AI 시대에 편집자의 일
사실 출판계가 위기라는 소리는 지난 15년 내내 안 들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이제는 일종의 관습적 인 인사치레처럼 들린다. 해마다 독서율은 떨어지고, 인구 감소로 미래 독자 자체가 줄어들고 있으니, 아무리 낙천적인 사람이라도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기가 쉽지 않을 터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과 한국 문학을 향한 세계적 관심과는 별개로, 출판업 자체는 확실히 시련을 마주하고 있다. 심지어 책 을 만드는 데에 들어가는 가장 기본적인 비용마저 시장의 축소에 아랑곳없이, 우상향을 그리고 있다. 게다가 끊임없이 가격을 올릴 수도 없으니 결국 책 속에 갈아 넣을 수 있는 것은 ‘사람’뿐이다.

역설적이게도 AI는 출판 노동자가 갈려 나가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가장 훌륭한 조력자가 될 수도 있 다. 출판계 특성상 원고라는 콘텐츠를 물리적으로 붙들고 있어야 하는 시간, 인적 자원 등의 수요를 비 교적 빠르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경영자의 입장에서도 AI는 값싸고 간편 한 출판 노동력이 될 수 있다. 이토록 예리한 양날의 검 위에서 균형을 잡기란 쉽지 않다. 편집자의 조력자가 출판계에 죽음을 주선하는 또 다른 의미의 조력자가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결국 우리가 호 소할 수 있는 것은 ‘인간성’이라고 하는 최저의 선일 것이다.

얼마 전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항아리 이은혜 대표의 “정신이 지능으로 왜곡되지 않기를”이란 글을 읽고 뭔가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중에서 “AI가 출판 영역에 가져온 근본적인 감정은 토대에 대 한 폄하다.”라는 글이 눈길을 잡았다. ‘편집자의 토대’, 즉 세상에 전하려 하는 이야기를 기획하고 최초 의 독자로서 글을 읽고 다듬고 저자나 옮긴이와 소통하고, 출판과 관련한 모든 것을 ‘고민’하는 일들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오로지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편집자의 토대가 거추장스럽게 취급 되고 끝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더는 편집을 ‘고민’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관리’하는 단계에 이르면, 편집자는 AI 구독자이자 구 경꾼(관리자)에 지나지 않게 될 터다. 이어 이은혜 대표가 경고하듯이 “관리자에게 미래는 비용 절감의 세계”이므로, 단지 AI가 비용 절감의 구세주로 권세를 누리게 된다면 그 끝에 출판을 관리하던 사람, 즉 ‘편집자’가 남아 있을지조차 장담하기 어렵다.

 

출처: 챗지피티(ChatGPT)

 

그렇다면 앞으로 문학 편집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껏 나는 AI만큼 거짓말을 능수능란하게 하는 존재를 본 적이 없다. AI는 명령에 답하기 위해 억지 답변을 찾느라 정제되지 않은 정보를 조합하고, 문학적 표현 이면의 문화, 역사, 사람들의 심리 등을 담기 위해 시간과 공을 들인 경험이 없다. 그저 AI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 새로운 세계의 스케치를 보여 줄 뿐이다. 따라서 문학 편집자는 사명에 맞게 그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 탐험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세계를 독자들에게 감동적인 서사로 펼쳐 보이도록 고민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편집자의 일’이 크게 달라졌다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의심하고 질문하고 ‘고민’하는 능력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감정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축적하고 느낄 수 없다고 시인하는 AI에 게 문학은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을지도 모른다. 문학 편집자는 문학과 번역을 두고 논의하거나 논쟁할 수 있는, 다소 냉담한 상대를 하나 더 얻었을 뿐 만물의 신비를 풀어헤치는 만능열쇠를 구한 것이 아 니다. 문학 편집자는 AI에게 의지하는 만큼 AI의 영향을 밀어낼 수 있는 영혼의 근력을 항상 마련해 두어야 할 것이다.

 

 

편집자의 고유함, 고민하는 능력
나는 클로드(Claude) AI에게 물어보았다. “점점 더 빠르게 발전하는 AI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편집자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은 무엇이냐?”고 말이다. 그러자 AI는 아주 잠시 뜸을 들이더니 한 문단의 대답 을 이어 나갔다. 자신(AI)은 아주 정확하게 편집하거나 번역할 수 있지만, “결코 고민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어느 한 문장을 번역하고 다듬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며칠씩 고민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종종 부정확하고 가끔은 독단적인 해석을 부여하기 위해 텍스트와 씨름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 만이 가능하다. 그 불완전하고 유한하다는 결점이 인간에게 인간다운 창조력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 러면서 이 문장을 덧붙였다. “앞으로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직업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일을 하 면서 간절함과 고통을 경험하는 것은 인간뿐입니다.” 이제는 간절하고 고통스럽게 ‘고민’하는 편집자만 이 살아남게 되리라고 감히 추측해 본다. 이러한 경험이 만들어 내는 인간의 고유한 힘, 결함 있는 존 재들의 공명(共鳴)이 효율로는 따질 수 없는 가장 값진 능력일지도 모른다.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AI시대 #문학편집 #민음사 #유상훈편집자 #출판N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도쿄도동정탑 #아쿠타가와상 #해외문학 #번역기 #챗GPT #클로드 #편집자의일 #출판트렌드 #인간성 #창조적활동 #글쓰기 #책만드는사람 #편집자 #고민하는힘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