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 죽음 3부작 해설, 김혜순 트릴로지 리뷰, 현대시 읽기와 수행성, 김혜순 시세계 분석, 오연경 평론 김혜순
인(人)사이드. 김혜순 시(詩)의 독자하기
인(人)사이드
김혜순 시(詩)의 독자하기
오연경(문학평론가)
2025. 11+12.
김혜순 ‘죽음의 3부작’의 초대
김혜순이 근래 출간한 세 권의 시집 『죽음의 자서전』(문학실험실, 2016, 이하 『죽음』), 『날개 환상통』(문학과지성사, 2019, 이하 『날개』),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문학과지성사, 2022, 이하 『지구』)를 묶어 ‘죽음 3부작’이라 부른다. 3년 간격으로 출간된 세 권의 시집에는 지하철에서 쓰러져 가(假) 죽음을 체험했던 일부터 양친의 상(喪)을 연이어 치러낸 일까지 죽음을 둘러싼 시인의 사적인 경험이 녹아 있다. 그러나 이 개인적인 시간은 2011년 구제역 살처분, 2014년 세월호 참사,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에 이르는 사회적 죽음 및 집단적 고통과 맞물려 있었다. 온 세상에 미만한 죽음 속에서 시인은 저 무수한 몸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목소리를 입는다. 그것은 “죽음을 선취한 자의 목소리”(‘시인의 말’, 죽음), 오직 시의 숨으로만 닿을 수 있는 저편의 감각으로 이곳의 죽음을 타격하는 목소리다.
『죽음의 자서전』, 『날개 환상통』,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이 죽음의 목소리는 이제 와 새삼 등장한 것이 아니라 김혜순의 시 세계를 처음부터 여기까지 이끌어 온 기원이자 에너지다. 『김혜순의 말』(김혜순·황인찬, 마음산책, 2023)에서 “죽음이란 우리가 삶 속에서 무한히 겪어나가야 하는 것이고, 무한히 물리쳐야 하는 것이고, 살면서 앓는 것”이라는 시인의 말처럼 죽음은 살아 있는 우리 모두의 것이지만 누구도 직접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김혜순의 시 쓰기는 버려진 여성의 언어를 다시 낳는 과정, 부과된 정체성을 비정체성으로 되갚는 과정, 이쪽도 저쪽도 아닌 존재를 기다리는 과정이었으며, 그것은 늘 죽었다 깨어나는 의례를 동반하는 것이었다. 시인은 살아서 죽음을 앓는 ‘시하기[시의 수행성을 강조하는 시인의 조어(造語)]’로, 결단코 이 삶을 뿌리치고 다른 존재가 되는 ‘새하기(새의 행위성을 시의 수행성과 연결하여 사유하는 시인의 조어)’로 지구상에 생명을 가진 것들을 죽음의 공동체로 소환한다. 독자여, 검은 무덤 같은 삶에서 일어나 새빨간 죽음으로 오라! 우리는 이 명령에 따라 시하고 새하는 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인가.
『김혜순의 말』
시가 당신을 오려낸 구멍에서
김혜순은 시집 한 권을 한 편의 시로, 복수의 시집들을 묶어 전체를 한 편의 시로 읽게 만드는 현대시 스케일의 모험을 감행해 왔다. “시는 짧지 않습니다. 함축적일 뿐이지요. 한 권의 시집이 한 편의 시인 경우가 많습니다. 저의 ‘죽음 3부작’으로 불리는 시집 세 권이 있는데 그게 한 편의 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김혜순·다와다 요코(多和田葉子) 특별 대담, ‘두 언어 사이, 그 새의 기억과 기록’, <대산문화> 2025년 여름호] 서사시나 장시, 그 어떤 이름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이 스케일은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지와 리듬으로 만들어지며, 이미지와 리듬이 끌고 가는 시의 호흡이 읽는 사람의 몸에 가동시키는 감각의 지속성에 따라 변주된다. 그리하여 읽는 순간의 몰입과 정동에 따라 독자가 경험하는 한 편의 시의 규모는 달라진다. “시는 쓰는 것도, 짓는 것도 아닌, ‘하는’ 것이라는 시인의 믿음을” 독자의 입장으로 전유하자면 시는 읽는 것도, 이해하는 것도 아닌, ‘하는’ 것이다. 김혜순은 ‘시하기’의 수행성을 독자에게 전이시킨다.
죽음 3부작을 한 권으로 묶은 『김혜순 죽음 트릴로지』(문학과지성사, 2025, 이하 『트릴로지』)는 단순한 합본을 넘어 김혜순 시의 스케일 실험을 물성으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각별하다. 세 권의 시집을 출간 순으로 따라 읽으면 그것은 “새하는 순서 / 그 순서의 기록”(「새의 시집」, 『날개』)이 되는데, 이 책의 만듦새는 ‘새하는 순서’를 감각적으로 안내한다. 우리는 새빨간 표지(뚜껑)를 열고 죽음이 호명하는 ‘너’의 자리에 입사하여 무덤 같은 검은 페이지를 통과한 후, 죽음이 선물한 날개를 달고 ‘새하기’를 연습하는 잿빛 페이지들로 날아올라, “책날개 양쪽으로 펼쳐진 사막”(「다쉬테 도서관」, 『지구』)에 모래알로 하얗게 흩어져 마침내 다시 새빨간 표지(바닥)에 도착한다. 마치 “바깥으로부터 안으로 쳐들어가는 것”처럼 죽음의 책으로 뛰어들면 넓고 깊은 광활한 우주가 펼쳐지며 “잠시 후 너는 안에서 떠오른다”(「출근」, 『죽음』) 600쪽이 넘는 이 책의 기나긴 여정은 읽기가 아니라 살기, 살기가 아니라 죽기, 죽기가 아니라 ‘시하기’로 독자를 밀어 넣는다. 5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붉은색 내지로 특별 삽입된 「고잉 고잉 곤」은 독자의 ‘시하기’에 대한 비유로 읽어볼 수 있다.
『김혜순 죽음 트릴로지』 표지와 내지
고잉 고잉 곤
새가 나를 오린다
햇빛이 그림자를 오리듯
오려낸 자리로
구멍이 들어온다
내가 나간다
새가 나를 오린다
시간이 나를 오리듯
오려낸 자리로
벌어진 입이 들어온다
내가 그 입 밖으로 나갔다가
기형아로 돌아온다
다시 나간다
내가 없는 곳으로 한 걸음
내가 없는 곳으로 한 걸음
새가 나를 오리지 않는다
벽 뒤에서 내가 무한히 대기한다
김혜순 죽음 3부작 해설, 김혜순 트릴로지 리뷰, 현대시 읽기와 수행성, 김혜순 시세계 분석, 오연경 평론 김혜순
이제부터 ‘새’의 자리에 슬쩍 ‘시’를 겹쳐 놓고 읽어보자. 우리는 시의 단어, 문장, 이미지 그리고 리듬으로 우리의 몸이 삶으로부터 오려내지는 것을 느낀다. 오려낸 자리의 ‘구멍’은 각자의 삶의 고통과 결핍과 상처에 따라 그 모양과 크기가 다를 것이다. 시가 오려내지만, 시에 의해 오려진 구멍은 읽는 사람의 것이다. 그 구멍으로 “벌어진 입”이 들어오고 “내가 그 입 밖으로” 나간다. 안과 바깥의 교환, 나의 입과 시의 입의 교환, 태어난 대로 고정된 나와 다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나(‘기형아’)의 교환이 이루어진다. 들어오고 나가는 일이 반복된다. “내가 없는 곳으로 한 걸음 / 내가 없는 곳으로 한 걸음” 이 두 번 반복돼야 하는 이유가 있다. ‘새하기’로 ‘시하기’를 수행하는 과정은 이곳의 나로부터 한 걸음 두 걸음 ‘고잉 고잉’, 그리고 ‘곤’으로 종결된 것 같은 순간 다시 그곳의 나로부터 한 걸음 두 걸음 계속 ‘고잉 고잉’ 하는 일이다.
김혜순은 어느 자리에서 수행은 한 번 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을 견디는 것이라고, 그것이 가사노동을하고 아이들을 기르는 여성들의 수행이자 계속해서 시를 쓰며 견디는 ‘시하기’의 수행이라고 말했다. 시에 의해 오려진 구멍을 통해 “내가 없는 곳으로” 옮겨가기를 계속하는 것은 죽음을 반복하는 것이고 여럿의 존재로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김혜순의 시는 독자에게 이 반복을 견디라고 독려한다. 그러나 아직 마지막 연이 남아 있다. 시가 나를 오리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벽 뒤에서 내가 무한히 대기”하는 것은 삶이 죽음의 눈동자와 마주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시의 날갯짓이 매끈하게 감침질 된 표면이 아니라 더러운 솜을 욱여넣은 창구멍을 건드리기를, 그리하여 억눌린 것들이 다 튀어나와 안과 밖이 뒤집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문명과 제도와 권력에 의해 빵빵하게 채워진 내 안의 솜들은 내 것이 아님을, 그들에 의해 버려진 쓰레기임을, 그것들이 썩고 냄새를 피우고 진물을 흘려서 내가 죽어가고 있음을 알아챌 때 죽임에 저항하고 죽음을 실천하는 시의 정치가 가능해진다.
당신의 어려운 음악을 꺼내세요
“지금부터 여러분은 자신의 몸에서 세상에서 제일 가볍고 투명한 새를 한 마리 꺼냈다고 상상하세요. 그 새가 하는 말을 듣고, 그 새의 행동을 본다고 상상하면서 제 시를 들어주세요.” 지난 9월 ‘문학주간 2025 도움―닿기’ 폐막식 무대에 오른 김혜순 시인이 낭독 전에 독자들에게 전한 말이다. 김혜순의 독자가 되려면 자기 안의 새를 꺼내 시의 글자들에 슬쩍 올려놓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기다리는 태도가 필요하다. 『트릴로지』에 수록된 미발표 산문 「죽음의 엄마」에는 낭독이 끝난 후 “이 시집의 주제가 뭐예요?”라고 화가 나서 질문하는 독자 이야기가 나온다. 그 독자의 질문은 무례한 예외적 사례가 아니라 시에 대한 고정관념과 시 읽기의 관행을 압축한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문학주간 2025 도움―닿기’ 폐막식에서 낭독하는 김혜순 시인과 후배 시인들(출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가 하는 말을 시에서 꺼내 하나의 주제로 설명할 수 있다면 굳이 시를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시는 문장부호 하나까지 시의 모든 것을 동원하여 말해진 것 사이에 말해지지 않은 것을 심어 놓음으로써 무언가를 말한다. 시가 하려는 것은 즉각적인 소통이나 명확한 메시지 전달이 아니라 언어의 애매성이 마련한 중간 지대에 들어서도록, 거기서 ‘모르는 채로 알고 있던 나’와 ‘안다고 생각했던 모르는 세계’를 대면하도록 초대하는 일이다. 시가 독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 일에 들여야 하는 시간을 기꺼이 견디는 일이다. “이 시대가 점점 더 말해지지 않은 것을 잘 읽어내고 견뎌줄 것 같진 않네요.”(‘두언어 사이, 그 새의 기억과 기록’, <대산문화> 2025년 여름호)라는 시인의 염려에는 생명의 본질인 죽음을 외면한 채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 현대인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어 있다. 자본주의의 압력하에 무덤 같은 삶의 반복을 견디는 일은 “벽 뒤에서 무한히 대기”하며 시의 선물을 기다리는 일보다 힘겨울 것이다. 시가 어려운 게 아니라 삶이 어렵다. 그러나 김혜순은 “당신 몸속엔 당신보다 훨씬 어려운 음악이 들어 있다”(「불쌍한 이상李霜에게 또 물어봐」, 『날개』)는 비밀을 알려준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당신보다 훨씬 어려운 음악”이 시의 어려움을 넘어 삶의 어려움을 구원해 줄 것이다.
그러니 삶의 벼랑 끝에 서기 전에 페이지의 벼랑에 서서 죽음을 연습해 볼 일이다. “너와 나의 운명이 앞뒤 페이지로 갈라지는 이 작은 벼랑.”, “네가 살아 있던 순간과 네가 살아 있지 않은 순간” 사이의 “페이지의 날”(「시인의 장소」, 『지구』)은 시인의 장소이자 시인이 우리를 세워두는 장소이다. 우리는 삶의 페이지에서 죽음의 페이지로 뛰어내리며 존재와 상실, 웃음과 울음, 일상과 비일상, 침묵과 소란을 가르는 종이 한 장보다도 얇고 가벼운 ‘호리지차(毫釐之差)’를 생각한다. 세월호 선실, 강남역 화장실, 살처분 구덩이, 코로나19 음압격리실, 이태원 골목은 호리지차로 스쳐 간 어제였을 수 있지만 호리지 차로 맞닥뜨릴 내일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우연히 오늘 살아남아 있다. “아직 죽지 않아서 부끄럽지 않냐”(‘시인의 말’, 『죽음』)는 질문은 우리가 죽음의 공동체 안에서 살고 있음을 알려준다.
김혜순 죽음 3부작 해설, 김혜순 트릴로지 리뷰, 현대시 읽기와 수행성, 김혜순 시세계 분석, 오연경 평론 김혜순
슬픈 사람은 새가 되고 아픈 사람은 모래가 되고
최근 몇 년 사이 해외 문학상 수상자로 거듭 호명된 김혜순은 오히려 국내 독자들에게는 낯선 이름이었을지도 모른다. 놀랍도록 독특하고 아름다운 그의 시는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다.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죽음을 낳아주려는 시는 삶을 뚫고 들어서는 독자의 어려운 걸음을 요구한다. 김혜순의 시는 탁자 위에 놓인 ‘잘 빚어진 항아리’가 아니라 독자가 응답하는 순간 점화되어 활활 살아나는 일렁임이다. 이런 이유로 그의 시는 몇 개의 문장이나 한 편의 시 단위로 잘라내 시집 바깥으로 잘 꺼내지지 않는다. 김혜순에게 널리 알려진 대표작이 없다는 것은 그가 한 편의 시의 수행 단위를 한 부로, 한 권으로, 3부작으로 확장하는 실험을 계속해 왔다는 사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는 시의 호흡과 리듬과 스케일을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 “인간은 시 안에서 얼마 동안 견딜 수 있나”(「Korean Zen」, 『날개』)를 시험해 왔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낱낱의 언어들이 지구만 한 거대한 새가 되어 우리를 덮쳐오는 것처럼 김혜순의 시는 팽창한다. 시의 스케일은 우리가 시 안에 머무는 시간을 최대한 늘려 안과 바깥의 체류를 뒤집어 놓고, 죽음에 거주하는 시적 신체로 새롭게 태어날 장소를 마련한다. “이 지루한 시를 여기까지 읽은 당신, 이제부터 당신 손톱에선 머리카락이 자랄 거예요.”(「모래의 머리카락」, 『지구』) 우리는 손톱에서 머리카락이 자라는 이상한 신체가 되어 우리의 영혼이 죽음과 슬픔과 아픔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슬픔은 맹렬하게 자라서 한 사람으로도 지구와 우주를 뒤덮을 수 있는 거대한 ‘새인간’이 되고, 아픔은 무수히 쪼개져 “한 알로서도 한 사람이고 억만 알로서도 한 사람”(「Yellowsand Blackletter Whitebooks―*모래인」, 『지구』)인 ‘모래인’이 된다. 김혜순의 죽음 3부작을 차례로 통과한 우리는 “살지 않을 생을 향해”(「출근-하루」, 『죽음』) 출근하여 “내가 새에게 속한 것을 알게 되”(「새의 시집」, 『날개』)고 마침내 “삶 없이 살아갈 자유”(「Yellowsand Blackletter Whitebooks―*결국」, 『지구』)를 얻는다. 김혜순은 결단코 우리를 새하게 하고 모래하게 하고 시하게 한다. 이제 당신의 몸에서 진동하는 당신보다 훨씬 어려운 음악이 들리는가?
김혜순(시인, 前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197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으로 등단했고, 1979년 <문학과지성>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또 다른 별에서』 (문학과지성사, 1981),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문학과지성사, 1985), 『슬픔치약 거울크림』(문학과지성사, 2011) 등을 펴내며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소월시문학상, 미당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해외 수상으로는 2019년 캐나다 그린핀 시 문학상(Griffin Poetry Prize), 2021년 스웨덴 시카다상(Cikada Prize), 2024년 미국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National Book Critics Circle Awards), 2025년 독일 세계문화의 집(Haus der Kulturen der Welt, HKW)의 국제문학상(Internationaler Literturpreis) 등을 받았다.
출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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