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출판시장 이슈: 스승의 날 독서 열기와 사이공의 향수를 담은 인문학
베트남 출판시장은 현재 급격한 경제 성장과 함께 교육에 대한 뜨거운 열기, 그리고 도시화 과정에서의 문화적 자아 성찰이라는 독특한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본 보고서에서는 11월 베스트셀러 분석과 베트남 출판 산업의 구조적 과제를 원문 그대로 상세히 전해드립니다.
12월 베트남 출판시장 보고서
코디네이터 | 신승복
이달의 출판계 이슈
벌써 한 해를 결산하는 12월이 되었다. 매년 8% 전후의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있는 베트남은 올해도 비슷한 수준의 성장을 전망하고 있다. 경제 성장에 대한 낙관적인 분위기는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이한 다양한 행사에 정점에 올랐지만, 9월 이후에 북부와 중부에 태풍이 연속적으로 상륙하였는데 특히 중부 지역에 큰 피해를 가져다주었다. 이상 기후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전문가들과 언론에서는 더 이상 재난 후에 요란한 ‘복구와, 수재민 구호’ 사고방식에서 ‘재난 예방’중심적 사고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아지고 있다.
주요 출판사가 추천하는 11월 주요 베스트셀러 도서
사회주의 체제를 기반으로 한 베트남의 출판 구조는 국가가 출판 분야 전반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출판사는 형식적으로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출판 허가권을 부여하는 법적 권한은 여전히 정부와 공산당 체계 안에 있고, 출판물이 사회·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포함할 경우 국가 검열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러한 구조는 출판 산업 전반을 공급자 중심 구조로 고착시키는 근본적 요인이 된다. 시장 메커니즘보다는 국가의 ‘정치적·이념적 방향 설정’이 출판물 생산에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시장 수요나 독자의 선호가 출판물 제작에 적극적으로 반영되기 어렵고, 출판사들이 독자와의 지속적인 피드백 관계를 구축하기보다 정부의 출판 정책 방향에 순응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적 특성은 공식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베스트셀러 목록의 부재로 이어졌으며, 베트남 출판시장 독서 시장은 실질적 독자 수요를 측정하기 위한 투명한 집계 체계가 부족하다. 한국, 일본, 미국처럼 민간 서점 체인이나 데이터 분석 기관을 중심으로 판매량을 체계적으로 공개하는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베트남에서 ‘베스트셀러’라는 용어는 어디까지나 서점과 출판사들이 시장 홍보와 마케팅을 위해 제시하는 비공식적 목록에 가까운 성격을 띤다. 베트남 출판 시장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정보의 한계는 매우 크며, 시장이 폐쇄적 구조를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Zing News가 발표한 11월 독서 트렌드 분석 기사는 베트남 출판 시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사는 베트남 최대 서점 체인인 Fahasa(파하사), 대형 복합 문화서점 Phương Nam(프엉남), 인문·사회과학 전문 출판사 Omega+, 아동·청소년 도서 중심의 Trẻ(쩨) 출판사로부터 제공된 판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성되었다. 이는 비록 완전한 의미의 공식 통계는 아니지만, 독자들이 실제로 어떤 도서를 선택하는가에 대해 참고할만하다.
Fahasa의 보고에 따르면, 11월 한 달 동안 가장 두드러진 독서 흐름은 스승의 날(11월 20일)을 전후하여 교육, 스승과 제자 관계, 배움과 성장이라는 주제를 다룬 도서들이 대거 독자들의 선택을 받았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Người thầy(책 스승)』가 다시 베스트셀러 목록에 포함되었다. 저자인 응우옌 찌 빈 (Nguyễn Chí Vịnh)은 베트남 국방부 장관 출신으로, 베트남전 당시 북베트남의 정보 장교이자 이중 스파이로 활약한 인물 당쩐득 (Đặng Trần Đức)의 삶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단순히 스승과 제자의 정서적 관계를 넘어, 전쟁 정보전의 숨은 역사와 인간적 면모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적·역사적 가치가 높다. 스승의 날을 맞아 이 책이 다시 재조명된 것은 베트남 사회에서 ‘스승의 의미’가 여전히 중요한 문화적 가치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타라 웨스트오버 (Tara Westover)의 베스트셀러 자서전 『Được học (Educated)』 역시 크게 주목받았다. 이 책은 극단적 종교 가정에서 정규 교육 없이 자라난 저자가 17세에 처음 학교에 들어가 학문의 길을 개척한 이야기로, 교육이 개인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베트남 사회에서도 교육을 통한 성장 스토리와 자기계발 서사가 큰 공감을 얻는 만큼, 스승의 날 시즌과 결합하여 높은 판매량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구로야나기 데쓰코 (Kuroyanagi Tetsuko)의 고전 『창가의 토토짱(Totto-chan bên cửa sổ)』,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 (Edmondo De Amicis)의 『사랑의 학교(Những tấm lòng cao cả / Cuore)』처럼 아동·청소년 교육, 성장, 감성적 회고를 다룬 도서들이 함께 인기를 얻었다. 이들은 단순한 아동문학을 넘어, 교육 철학과 인성 발달을 다룬 대표적 도서로 평가된다.
Phương Nam 서점의 판매 흐름은 Fahasa와는 다른 학술적·문화적 성격을 띤다. 도스토옙스키 (Fyodor Dostoevsky)의 『Tội ác과 Hình phạt(죄와 벌)』, 틱낫한 (Thích Nhất Hạnh)의 수행 철학서 『Giận(분노)』, 팜 르 언 (Phạm Lữ Ân)의 감성 에세이가 꾸준히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고 있다. 사이공(Sài Gòn)’은 베트남인들에게 과거의 황금기, 식민지 시대의 복잡한 역사, 도시 정체성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경제발전과 도시재편이 심화된 현대 베트남에서 과거 도시의 기억·문화 정체성 회복을 다룬 도서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는 베트남 사회가 단순한 경제 성장 단계를 넘어 ‘문화적 자아 성찰’ 단계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적 지표다.
Omega+는 인문학·과학·철학 도서에 강점을 가진 출판사로, 11월 베스트셀러로 레이 커즈와일 (Ray Kurzweil)의 『The Singularity Is Nearer(Điểm kỳ dị đã cận kề)』를 제시하였다. 이 책의 재조명은 베트남 출판시장 독서 시장이 이제 단순 문학 중심을 넘어서 미래학·AI·기술 변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교육 열기, 디지털 전환 정책, 젊은 인구 비중 증가 등이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다.
Trẻ 출판사는 아동문학 분야에서 독보적이며, 그중에서도 베트남의 국민 작가 응우옌느엇아인(Nguyễn Nhật Ánh)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그의 신작 『Cô bé hàng xóm과 bốn viên kẹo』는 1980년대 호찌민시를 배경으로 성장과 정서를 따뜻하게 그린 작품으로, 도시화 시대의 향수와 보편적 성장 서사가 결합되어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고 있다. 또한 J.K. 롤링(J.K. Rowling)의 『Quái vật Ickabog』처럼 해외 아동문학도 꾸준히 인기 있는 장르이다. 베트남은 아동 인구가 많고, 가정 중심 교육 문화가 강해 아동도서 시장이 항상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이상의 베스트셀러 목록은 공식적인 판매 통계를 기반으로 한 순위라기보다, 서점과 출판사들이 자체적으로 추천하는 도서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목록이라는 점에서 일정한 한계를 가진다. 물론 실제로 독자들이 즐겨 찾는 작품도 포함되어 있지만, 서점과 출판사들이 전략적으로 노출시키고 홍보하는 도서들이기도 하다. 특히 베트남 출판계에서는 특정 절기나 국가 기념일─예를 들어 스승의 날, 설 연휴, 개학 시즌과 맞물려 테마성 도서를 집중적으로 추천하는 관행이 강하게 나타난다.
또한, 베트남 출판사들은 국내 작가의 신간보다는 번역 작품,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스테디셀러, 과거 출판물을 재출간한 도서를 우선적으로 소개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국내 작가의 신작을 출간할 때 발생할 수 있는 판매 리스크를 회피하고,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즉, 번역서와 재출간물은 이미 국제적으로 혹은 과거 독자 경험을 통해 검증된 콘텐츠이기 때문에 수익 예측이 수월하고 실패 확률이 낮다.
아울러 베트남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도시 재편 과정도 독서 트렌드에 영향을 주고 있다. 새로운 고층 건물, 대규모 개발, 상업지구 확장과 함께 도시의 모습이 빠르게 변모하면서, 오히려 옛 사이공, 어린 시절 기억, 과거 도시 풍경을 다룬 책에 대한 향수 어린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Made in Sài Gòn』이나 『Continental Saigon』 같은 작품이 꾸준히 선택되는 현상은 독자들이 과거의 문화와 정체성을 되돌아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베트남 출판물 수출·수입 구조의 현황과 과제
2025년 12월 5일 열린 출판물 수출·수입 총괄 회의에서, 베트남 출판시장·인쇄·유통국장 응우옌 응우옌 (Nguyễn Nguyên)은 베트남 출판 산업이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산업 전반의 연결과 생태계 구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베트남 출판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진단하고 향후 정책 방향을 제시한 중요한 발언으로 평가된다.
그는 무엇보다 베트남 출판 산업의 연결성 부재를 핵심 문제로 지적했다. 수출·수입 업무는 출판사, 유통망, 물류 기업, 전자상거래, 디지털 결제 시스템, 판권 중개 등 다양한 요소가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가능하지만, 현재 베트남에서는 이들 요소가 각각 분절된 상태로 존재한다. 그는 Alpha Books가 추진했던 해외 진출 프로젝트 ‘Alpha America’가 1년 만에 중단된 사례를 들며,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어렵고, 산업 전체의 지원 체계가 부재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저작권 분야 역시 베트남 출판시장 산업의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불법 복제와 위조 도서가 여전히 만연해 있으나, 법적 정의조차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아 단속과 처벌이 일관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해외 출판사가 베트남과 협력하는 데 높은 리스크로 작용하며, 베트남 도서의 수출 확대에도 걸림돌이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베트남출판협회 내에 저작권보호센터가 신설되었으나, 아직은 기초 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데이터 기반 시장 분석 시스템의 부재도 큰 문제로 제기되었다. 베트남에는 독자층 분석, 판매량 추적, 장르별 수요 파악 등 산업 전반의 전략 수립에 필요한 데이터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다. 응우옌 국장은 출판 산업이 책 판매에만 의존해선 지속적 성장이 어렵고, 앞으로는 저작권(IP), 파생 콘텐츠, 디지털 유통, 데이터 분석을 아우르는 종합적 가치사슬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IP와 데이터가 향후 출판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며, 이를 갖추지 못하면 출판사는 단순 유지 수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회의에서 발표된 수출·수입 통계는 베트남 출판 산업의 구조적 불균형을 명확히 보여준다. 2023-2024년과 2025년 상반기까지 베트남은 약 1,474만 부, 약 6,500만 달러 규모의 출판물을 수입해 다양한 외국 도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반면 같은 기간 수출량은 약 100만 부, 약 26만 달러 수준으로 매우 낮았으며, 정기적으로 수출을 수행하는 기업도 5곳뿐이다. 수출 도서 역시 주로 베트남 문화·역사를 소개하는 소량 주문 중심으로 제한되어 있다. 이는 베트남이 콘텐츠 수출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기반이 아직 충분히 구축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종합하면, 베트남 출판시장 산업은 성장 잠재력을 지니고 있지만 현재의 제도적 제약과 산업 생태계의 미비로 인해 국제 경쟁력 확보에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물류·데이터·저작권·판권 중개 같은 인프라가 개선되고, 동시에 시장 기반의 기획과 창작이 보다 자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비로소 해외 진출의 여지가 생기겠지만, 이러한 변화가 단기간에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베트남 출판 산업의 향후 전망은 제도 개선의 속도와 산업 내 구조 개혁의 실효성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 후기: “체제와 시장 사이, 그럼에도 흐르는 ‘기억’과 ‘교육’의 힘”
1. ‘스승’이라는 이름의 오래된 미래
베트남의 11월 베스트셀러가 ‘스승의 날’을 기점으로 교육과 성장에 관한 도서들로 채워지는 풍경은 인상적입니다. 전쟁 영웅의 삶을 다룬 『책 스승』부터 고전 『창가의 토토짱』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독서의 중심에 ‘가르침’과 ‘존경’이 있다는 사실은 출판이 담당해야 할 가장 고귀한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 편집자들도 독자에게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삶의 지표가 될 수 있는 ‘스승 같은 문장’을 발굴하는 데 더 힘써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2. 도시의 변화가 불러온 ‘향수’라는 이름의 독서
급격한 경제 성장과 도시 재편 속에서 베트남 독자들이 옛 사이공의 기억을 다룬 책들을 찾는다는 대목에서 깊은 공감을 느꼈습니다. 물리적인 풍경이 빠르게 사라질수록 독자들은 텍스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추억을 보존하려 합니다. 편집자는 단순히 유행을 쫓는 사람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록하고 독자의 마음속 ‘고향’을 지켜주는 파수꾼이 되어야 함을 리포트를 통해 배웁니다.
3. 생태계의 부재를 이기는 콘텐츠의 생명력
국가 검열과 데이터 인프라의 부족이라는 척박한 출판 환경 속에서도 베트남 출판시장은 자생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작권 보호와 데이터 기반 분석 시스템 구축을 향한 목소리는 우리 출판계가 거쳐온 길이자, 앞으로 함께 풀어가야 할 글로벌 과제이기도 합니다. 인프라가 비어있을수록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결국 ‘좋은 콘텐츠’의 힘이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글을 마치며 머나먼 하노이와 호찌민의 서점가에서 독자들이 고른 책 한 권 한 권이 베트남의 내일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집니다. 유통 시스템과 정치적 환경은 저마다 다르지만,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책장을 넘기는 독자의 진심은 어디든 같습니다. 그 진심에 가닿을 수 있는 정갈하고 단단한 문장들을 위해, 오늘도 겸허한 마음으로 원고를 마주합니다.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