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베스트셀러 구조 분석, 종합 베스트셀러 문제점, 도서 사재기와 베스트셀러 조작, 한국 출판시장 마케팅 구조, 베스트셀러 집계 신뢰성
커버스토리. [베스트셀러 집계 파헤치기] 한국식 종합 베스트셀러의 구조
[베스트셀러 집계 파헤치기]
한국식 종합 베스트셀러의 구조
김성신(출판평론가)
2025. 11+12.
출판 시장에 자리 잡은 ‘베스트셀러’
‘베스트셀러’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오래 전에 등장했다. 단순히 ‘요즘 가장 많이 팔리는 책’ 정도로 소비되는 문구가 아니라, 출판산업이 스스로의 가치를 승인받는 방식을 만들어 낸 일종의 ‘사회적 언어’라고도 할 수 있다. 1889년 미국 일간지 <캔자스시티 타임스(The Kansas City Times)>가 일정 기간 많이 팔린 책의 목록을 공개한 것이 베스트셀러 목록의 시초로 전해진다. 이 아이디어는 점점 더 정교해졌다.
1895년 미국 문학 전문지였던 <북맨(The Bookman)>의 편집자 해리 팩(Harry Thurston Peck)이 주요 대도시 서점들의 판매 데이터를 모아 ‘가장 많이 팔린 책’ 목록을 잡지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베스트셀러’라는 표현이 유통되었고, 1920년대에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출판 시장의 언어가 되었다. <북맨>은 이후 <퍼블리셔스 위클리(Publishers Weekly)>로 이어지며 미국 출판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베스트셀러 집계 매체 중 하나가 되었고,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역시 1940년대 후반부터 자체 베스트셀러 목록을 발표하며 ‘지금 이 사회에서 어떤 책이 읽히고 있는가’를 거의 문화적 공인처럼 선언해왔다. 베스트셀러 목록은 단순한 판매 순위를 넘어 독서 흐름과 사회적 화제성을 지도처럼 가시화하는 장치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1987년 10월 출판사 설립 자유화 이후 수많은 출판 주체가 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이번 주(또는 이번 달)의 베스트셀러”라는 개념이 언론, 유통, 출판 마케팅 언어의 핵심 도구가 되었다. 다시 말해 한국식 베스트셀러 문화는 산업화된 출판 시장과 함께 성장했고, 어느 순간부터 단순한 정보가 아닌 핵심 인프라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인프라가 오늘날 한국의 대형서점에서 단순한 ‘현황 보고서’를 넘어 거의 ‘마케팅 전투 장비’처럼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서점의 생존 전략과의 관계
서점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마주치는 ‘종합 베스트셀러’ 매대는 마케팅 현상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오프라인 서점들은 예나 지금이나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종합 베스트셀러’ 코너가 최전방을 차지하는 풍경이다. 진열되는 책이야 늘 바뀌지만, 공간은 변화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은 게으름 같은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철저하게 계산된 서점과 출판산업의 생존 논리가 숨어 있다.
한국식 베스트셀러 구조 분석, 종합 베스트셀러 문제점, 도서 사재기와 베스트셀러 조작, 한국 출판시장 마케팅 구조, 베스트셀러 집계 신뢰성
출처: 챗GPT(ChatGPT)
첫째, 서점은 재고 사업이다. 출판사는 아직 팔릴지 확신할 수 없는 원고에도 투자할 수 있지만, 서점은 인쇄되어 나온 ‘책’이라는 상품을 자금을 들여 임대료가 나가는 물리적 공간에 진열해 팔아야 한다. 그래서 서점에게 가장 큰 부담은 ‘안 팔리는 책이 매대에 남아 있는 상태’이다. 그것은 단순히 ‘아직 팔리지 않은 책’이 아니라 ‘현금이 매대 위에서 묶여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떤 책을 가장 앞, 가장 넓은 자리, 가장 좋은 위치에 둘 것인가라는 질문은 곧 ‘이 자리를 어떤 책이 가장 빨리 현금으로 바꿔줄 것인가’라는 질문이 된다. 이미 팔리고 있는 책, 즉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권 도서는 이 질문에 가장 안전한 답을 준다. 불확실성을 줄이려면 검증된 상품을 더 밀어주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둘째, 서점은 높은 이윤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다. 회전율로 버틴다. 얼마나 빨리 책을 들여와서 얼마나 빨리 팔고 다시 돈으로 회전되는지, 그 속도가 곧 서점이라는 신체의 혈액순환이다. 회전율 외에도 한가지가 더 있다. 바로 인건비다. 어떤 책을 팔기 위해 직원이 고객을 안내하고 설득해야 한다면 그 자체가 곧 비용이다. 반대로 손님이 이미 ‘요즘 다들 이 책 본다던데’라며 그 책을 입구에서 스스로 집어갈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서점의 입장에서는 가장 가성비가 뛰어난 이상적인 판매다. 종합 베스트셀러 매대는 바로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즉, 액면대로 ‘잘 팔리는 책을 모아둔 구역’이기보다 ‘셀프 안내 카운터’인 것이다. 잘 팔리는 책을 전면에 배치함으로써 회전율을 높이고, 동시에 인력 투입 시간을 줄여 인건비를 절감한다. 서점 입장에서 이 효율은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셋째,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다. 경제학자 하비 레이번슈타인(Harvey Leibenstein)은 특정 재화에 대한 수요가 커질수록 그 사실 자체가 다른 사람들의 추가 수요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모두가 그 책을 산다는데, 너만 안 살 거야?’라는 집단 동원 논리다. 한국식 베스트셀러 소비는 이 밴드왜건 효과가 거의 실시간으로 시각화된다. 서점이 ‘1위’라고 붙이는 순간 소비자는 ‘요즘은 이 책을 읽어야 뒤처지지 않는구나’라고 받아들이고, 그 인식은 실제 구매로 이어진다. 이 구매는 다시 베스트셀러 순위를 올리고 이 순위는 다시 더 많은 구매를 유발한다. 전통적으로 한국 출판 시장은 유난히 이러한 쏠림이 강하다.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순간부터, 독자들의 수요가 그 책으로 기울어지는 각도가 굉장히 가파르다. 잘 팔리는 책이 더 잘 팔리는 구조가 노골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은 손님을 매장으로 끌어오는 역할까지 한다. 즉 집객 상품이다.
넷째, 이 쏠림은 공급률에 따라 달라진다. 서점은 실제로 자사에 더 유리한 책을 전면에 두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모든 책이 같은 조건으로 입고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매년 발간되는 굵직한 트렌드 예측서는 출판사와 서점 간에 대량 공급 계약이 이루어진다. 서점에서 ‘만 부 단위’를 제안하면, 그 대가로 출판사는 서점 공급률을 크게 낮춘다. 결과적으로 그 책은 서점 입장에서 ‘다른 책들에 비해 팔면 팔수록 많은 이윤이 남는 책’이 된다. 이 지점부터 그 책은 서점에서 ‘반드시 밀어야할 책’으로 지위가 바뀐다. 서점은 그 책을 매대 최전선에 대량 전시하고, 홍보물과 직원 추천 문구를 붙여 빠르게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린다. 베스트셀러 순위를 만들고, 그 순위를 근거로 더 노출하고, 그 노출로 실제 판매를 폭증시키는 구조가 바로 ‘베스트셀러가 베스트셀러를 만든다’는 말의 의미다.
베스트셀러, 인위적인 마케팅 수단?
그렇다면 서점이 자체 집계하는 종합 베스트셀러 데이터는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서점은 늘 ‘객관적 판매 순위’를 내세운다. 그러나 이 데이터가 과연 오염된 것은 아닌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만연한 사재기 관행 때문이다. 사재기는 결국 특정 주체가 의도적으로 책을 대량 구매해 순위를 끌어올리는 행위다. 과거에는 비교적 투박하게 이루어졌지만, 최근에는 방식이 훨씬 교묘해졌다. 가령 유튜버 광고나 인플루언서 홍보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해당 시점에 맞춰 대량 구매를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식이다. 유튜버의 영향력으로 갑자기 화제가 된 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집중 매입으로 도서 판매량을 부풀려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리는 것이다. 즉 인위적 판매를 자연발생적 관심으로 위장하는 구조다.
출처: 챗GPT
물론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제23조는 이런 부정 계열의 판매 조작을 금지하고 있고, 적발될 경우 벌금(과태료) 부과가 가능하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지금의 벌금은 업계 체감으로는 그리 높지 않다. 사재기에 투입되는 비용이 수백만 원에서 1천만 원 수준이라도, 한 번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면 그 노출 효과가 벌금보다 훨씬 크다. 즉 ‘걸려도 남는다’는 계산이 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지금은 1천만원 안팎의 자금만으로도 책을 순위권에 올릴 수 있다는 인식이 형성되어 있으며, 서점의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도 그 효과가 그대로 반영된다.
이 상황은 시장의 기반 자체를 흔든다. 과거에는 하루 1,000부 이상 판매되어야 비로소 상위권 진입이 가능했다. 즉 상위권 진입 자체가 진짜 ‘전국적 반응’을 의미했다. 그런데 지금은 출판 시장의 전체 판매 규모가 축소되면서 신간이 하루에 100부 남짓 팔려도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를 수 있는 일이 벌어진다. 상위권 진입 문턱이 엄청나게 낮아진 것이다. 주류 언론의 영향력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신간이 독자에게 알려질 경로 자체도 크게 사라졌다. 신간 노출 경로가 줄어든 시장에서 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는 곧 홍보 수단이 된다. 베스트셀러가 거의 유일한 홍보 수단이 되었으니, 순위 자체를 인위적으로 올리고 싶은 유혹은 쉽게 외면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진다.
‘많이 팔린 책’인가, ‘많이 팔려야 하는 책’인가
이런 시장 구조의 틈을 파고드는 자들도 등장했다. 과거 홈쇼핑이나 라이브 커머스에서 활동하던 일부 마케팅 조직들이 이제는 출판사에 직접 접근해 ‘소액으로 베스트셀러 순위 올릴 수 있다’는 식의 제안을 한다. 구조를 보면 이렇다. 특정 시점에 맞춰 특정 도서를 대량 구매하고, 동시에 SNS·영상 매체 노출을 만들어 ‘지금 이 책, 난리 났다’라는 신호를 보낸다. 소비자는 이를 자발적 화제성으로 받아들이지만 실제로는 매출 그래프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결과다. 이는 대중음악 산업에서 ‘음원 사재기’의 방식과 닮았다. 음악 산업에서는 음원 사재기에 대해 강하게 제재하고, 사회적으로도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대중음악의 문화적 위력이 거대해지면서 자정작용이 일어난 덕분이다.
반면 출판 시장에서 책 사재기는 음악 산업보다 대중의 주목도가 낮고 현행 제도상 상대적으로 느슨하여 적발돼도 과징금이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 결국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지금 서점이 전면에서 내세우는 ‘종합 베스트셀러’는 과연 독자에게 어떤 신호인가? ‘많이 팔린 책’인가, ‘많이 팔려야 하는책’인가, 아니면 ‘많이 팔린 것처럼 보이게 해야만 하는 책’인가. 현재의 베스트셀러 순위 데이터는 사재기가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유통 환경, 그리고 그러한 순위를 다시 마케팅 자산으로 활용하는 구조속에서 오염되고 있다. 그 오염된 숫자가 ‘지금 이 책이 이 시대의 책입니다’라는 식의 권위까지 부여 되어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종합’ 베스트셀러가 전면에 선 이유
해외와 비교해보자.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의 설명대로, 영미권이나 유럽권에서도 베스트셀러는 역시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지만 한국만큼 한쪽으로 쏠리는 양상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누가 베스트셀러를 집계하고 발표하느냐’에 있다. 한국에서는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같은 대형서점들이 자기 판매 데이터를 근거로 베스트셀러를 발표한다. 판매 주체가 곧 베스트셀러의 출처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뉴욕타임스>, <슈피겔(Spiegel)> 같은 언론사도 권위 있는 베스트셀러 목록을 만들어 발표한다. 언론은 책을 직접 파는 주체가 아니다. 그래서 실제로 어떤 책이 사회적 논의의 중심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베스트셀러 순위는 일종의 ‘문화적 지형도’로 기능한다. 반면 한국의 베스트셀러 목록은 문화적 지형도라기보다 영업 매뉴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베스트셀러 목록을 통한 책의 노출은 더 많은 판매로 이어진다. 더 많은 판매는 순위를 정당화한다. 이렇게 해서 한국의 서점가에서는 ‘베스트셀러가 베스트셀러를 낳는 구조’가 더욱 공고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종합’ 베스트셀러인가. 왜 굳이 장르별 베스트가 아니라 ‘종합’을 전면에 세울까. 여기에도 현실적 문제가 있다. 많은 사람은 자신이 정확히 어떤 장르를 원하는지조차 모른 채 서점에 들어온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 읽는 책 하나만 추천해 주세요.’라는 수요가 실제 현장에서 반복된다. 이 수요는 ‘인문 1위’나 ‘소설 1위’를 먼저 보여주는 방식으로는 충족되지 않는다. ‘분야’나 ‘장르’라는 단어자체의 권위가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반면 종합 베스트셀러는 장르 이전의 입구다. ‘가장 핫한 책들’, 나아가 ‘뒤떨어지지 않고 안 촌스러운 책들’의 모음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취향의 제안이라기보다 체면이 보장된 안전판 같은 면이 있다. 서점은 먼저 이것을 제시해 독자를 안전하게 붙잡고, 그다음에 장르별 진열이나 큐레이션 서가, 직원 추천 코너로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즉 ‘종합 베스트셀러’는 선택의 끝이 아니라 선택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 역할을 하는 것이다.
베스트셀러에 대한 신뢰를 위해
지금의 종합 베스트셀러 매대는 단순한 인기 상품 안내판이 아니다. 서점에게 종합 베스트셀러는 재고를 줄이는 안전장치이자, 인건비를 낮추는 운영 도구이며 핵심성과지표(Key Performance Indicator, 이하 KPI)의 방어선이다. 또한 출판사와의 관계 조절 장치이자, 집객 카드이며, 심지어는 사재기와 밴드왜건 효과까지 흡수해 판매를 기하급수적으로 증폭시키는 마케팅 장치다. 그러므로 단순히 이 구조를 나쁘다고 쉽게 단정해 버릴 문제가 아니다. 결국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베스트셀러 구조를 신뢰 가능한 공공 언어로 복원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집계의 주체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위치에서 베스트셀러를 집계·분석하고 공개하는 축이 더 많아야 한다. 공신력 있는 언론·기관의 집계나 통합 유통 데이터를 교차 검증해 발표하는 제3의 집계 시스템 등 기준을 투명하게 밝힌 공적 레퍼런스가 있어야 한다.
결국 우리가 성찰해야 하는 지점은 이것이다. ‘종합 베스트셀러’라는 말이 지금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감추고 있다는 사실. 지금 한국의 종합 베스트셀러 매대는 대형서점의 현금 흐름, KPI, 재고 소진, 집객, 사재기 유통, 그리고 독자의 밴드왜건 심리까지 한 번에 얹혀 세워진 구조물이다. 이것은 몇 마디 비판으로 사라질 구조가 아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이 매대가 독자를 덜 속이게 만드는 최소한의 장치는 무엇인가?’ 지금 한국의 종합 베스트셀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혹시 독자들의 ‘신뢰’는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 신뢰받지 못하는 종합 베스트셀러 목록은 독자의 선택을 돕는 지표가 아니라, 공적 가치가 없는 판매 안내문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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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한국식 베스트셀러 구조 분석, 종합 베스트셀러 문제점, 도서 사재기와 베스트셀러 조작, 한국 출판시장 마케팅 구조, 베스트셀러 집계 신뢰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