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랑데르노상’ 후보작의 네 가지 포인트, 프랑스의 새로운 문학 현상, 코지 미스터리
9월 프랑스 출판시장 보고서
코디네이터 | 강미란
이달의 출판계 이슈
2025년 ‘랑데르노상’ 후보작의 네 가지 포인트
가을 문학 시즌의 열기가 절정에 이르렀다. 이미 이전 보고서에서도 다룬 적이 있는 ‘가을 문학 시즌’은 8월 중순부터 10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신간 소설이 출간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여름 휴가가 끝난 뒤 새로운 책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지는 시기를 겨냥해 출판사들이 전략적으로 새 작품을 내놓는 것이다. 가을 문학 시즌에는 매년 수백 권의 신간이 경쟁적으로 쏟아지며 공쿠르, 르노도 등 주요 문학상과 맞물려 프랑스 출판 시장의 핵심 축을 형성하곤 한다.
프랑스의 수많은 문학상 가운데도 올해는 유독 랑데르노상이 눈에 띈다. 단지 유명한 상이라서가 아니라 특히 올해에는 주목할 만한 이벤트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랑데르노상은 프랑스 대형 유통사인 E.르클레르 (E. Leclerc) 문화 매장인 ‘에스파스 퀼튀렐(Espace Culturel)’이 주관하는 문학상이다. 프랑스 전국의 르클레르 서점 담당자들이 주도하는 1차 선별과 일반 독자 그룹의 투표가 결합된 심사 구조가 특징인 상이다. 일반 소설 외에도 아동·청소년, 만화 및 그래픽노블, 에세이 등 여러 부문별 시상을 운영하고 있다. 르클레르 전국 문화 매장 네트워크의 진열 및 판촉 연계로 수상작의 판매 가속 효과가 매우 크다는 점도 랑데르노 상의 특이점이다. 2025년 랑데르노상의 후보작들은 유난히 뜨거운 관심을 끌고 있다. 그 이유를 네 가지로 정리해 본다.
2025년 ‘랑데르노상’ 후보작의 네 가지 포인트, 프랑스의 새로운 문학 현상, 코지 미스터리
우선 이번 최종 후보 선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프랑스의 가을 문학상 중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공쿠르상과 겹치는 작품이 많다는 사실이다. 랑데르노 최종 후보 4편 중 3편이 공쿠르상 1차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로랑 모비니에 (Laurent Movignier)의 ≪빈 집 (La maison vide)≫, 나타샤 아파나 (Natacha Appanah)의 <마음 속 밤(La nuit au cœur)≫, 마지막으로 기욤 푸아(Guillaume Poix)의 ≪무기징역 (Perpétuité)≫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이런 우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로랑 모비니에의 소설은 페미나 상은 물론 메디치 상 후보에도 올랐고, 나타샤 아파나의 소설은 르노도 상 후보에도 포함됐다. 어디 그 뿐인가, 나타샤 아파나는 이미 지난 보고서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 듯이 ‘2025년 르몽드 문학상’을 수상해 이번 가을 문학 시즌 전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2025년 랑데르노상은 가을 문학의 주요 작품들을 가리키는 선행 지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두 번째 특징은 랑데르노상의 심사위원 구성 방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랑데르노상 후보작은 전국 르클레르 서점의 전문가들을 통해 최종 후보 네 편을 가려낸다. 판매 현장과 독자 취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 엄격한 기준을 통해 후보작을 선정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독자 200명의 차례다. 이들은 몇 주간에 걸쳐 후보작을 읽고 의견을 나누게 된다. 그 후 최종 투표를 하게 되는데, 여기에 마자린 팡조 (Mazarine Pingeot)와 미셸-에두아르 르클레르(Michel-Edouard Leclerc) 그리고 추첨으로 선발된 12명의 추가 심사위원의 표까지 더해져 최종 수상작이 결정된다. 마자린 팡조는 작가이자 철학자로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딸로 알려져 있으며, 랑데르노상의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또 다른 핵심 인물인 미셸-에두아르 르크레르는 랑데르노상의 프랑스 대형 유통 체인 E.르클레르사의 대표로, 랑데르노 상을 주관하는 ‘에스파스 퀼튀렐’ 서점망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처럼 랑데르노상 후보 선정 및 수상 결정은 서점 관계자의 전문성과 일반 독자들의 선택이 결합된 독특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세 번째 주목할 점은 이번 최종 후보작들의 주제가 매우 다양하다는 점이다. 나타샤 아파나의 작품은 여성에 대한 폭력과 가스라이팅의 복잡한 메커니즘을 탐구하고 있다. 로랑 모비니에는 가족사, 여성의 기억, 시대적 상처, 문학적 기록의 복원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반면 기욤 푸아는 야간 교정공무원의 일상을 통해 가려진 노동의 의미를 묻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후보에 오른 마리 샤렐(Marie Charrel)의 ≪폭풍의 산물(Nous sommes faits d’orage)≫은 알바니아 독재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한 가족의 기억을 그려내고 있다.
랑데르노상 후보작이 관심을 받는 마지막 이유는 이 상이 단순한 문학적 명예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작가와 책이 단숨에 유명해진다는 데 있다. 만 유로(한화 약 1600만원)의 상금이 주어지는가 하면 프랑스 전역 230여 개 르크레르 에스파스 퀼튀렐 매장에서 책이 대대적으로 홍보된다. 덕분에 수상 직후 판매가 늘고 수많은 독자들의 입소문을 타게 된다. 비교적 단시간에 유명해진 수상작은 해외 판권 수요로도 이어지는 선순환을 이루게 되며, 이는 작가와 작품이 더욱 더 유명해지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이처럼 2025년 랑데르노상은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다시 한 번 입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화제작들이 후보에 오르면서 더 큰 관심을 끌고 있다. 2024년 수상작인 카멜 다우드의 《우리스(Houris)》의 뒤를 이을 작가와 작품은 어떤 것일까? 수상작 발표일인 10월 21일이 기대된다.
참고
https://www.e.leclerc/e/prix-landerneau-des-lecteurs?srsltid=AfmBOorMMdE7hAoFiW69esKEi_Zx7gZnZgz4LtEOi-wB7YEQtpx2MJGİZ
https://www.parislibrairies.fr/list-171463/selection-du-prix-landerneau-polar-2025/
https://www.livreshebdo.fr/article/les-4-finalistes-du-prix-landerneau-des-lecteurs-2025
2025년 ‘랑데르노상’ 후보작의 네 가지 포인트, 프랑스의 새로운 문학 현상, 코지 미스터리
프랑스의 새로운 문학 현상, 코지 미스터리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 서점 진열대에서 ‘코지 미스터리’라는 명칭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폴라(polar, 범죄소설)’ 라는 큰 범주 속에 들어 있었고 독자에게도 다소 생소한 하위 장르에 불과했다. 그러나 2020년 전후, 상황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독자들이 일상의 불안을 달래 줄 이른바 ‘위로가 되는 독서’를 찾기 시작하면서, 잔혹 범죄보다는 인간적이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읽다 보면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코지 미스터리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 흐름은 곧 판매지표로도 이어진다. 영국에서 출간되어 프랑스에 번역된 대표적인 작품들은 큰 성과를 거두게 된다. 줄리아 채프먼의 ≪요크셔 탐정들(Les détectives du Yorkshire)≫ 시리즈는 프랑스에서만 누적 40만부 이상 판매를 기록했고, M.C.비튼의 《아가사 레이진(Agatha Raisin)≫ 시리즈는 누적 200만 부를 돌파하며 장기적 팬덤을 확보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넷플릭스 영화로 소개되고 있는 리처드 오스먼의 ≪목요일 살인 클럽(Le murder club du jeudi)≫ 역시 2021년 단행본 출간과 2022년 문고판 전개를 통해 빠르게 서점가에 자리 잡았다. 프랑스 내 구체적 판매 수치는 공개되고 있지 않지만 영국에서의 대성공과 앞서 말한 유명 플랫폼 영화화가 맞물리며 강력한 가시성을 확보하고 있다.
코지 미스터리의 성공 요인은 크게 세 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누가 뭐라 해도 첫 번째 성공 요인은 정서적 위안일 것이다. 코로나 이후 독자들은 폭력적이지 않으면서도 나름 긴장감은 주는 이야기, 공동체적 유대와 유머가 담긴 소설을 찾기 시작한다. 코지 미스터리가 바로 이런 수요에 정확히 부합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로는 코지 미스터리로 유명한 영국 작품들이 주는 코티지에 대한 로망은 물론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을 통한 현지화가 잘 맞물렸다는 것이다. 영국 전통 마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살인사건은 물론 프랑스의 시골(브루타뉴, 프로방스 등)의 지역성을 담아낸 작품들이 등장해 독자들에게 다양성을 선사할 수 있었다. 에나 피츠벨(Ena Fitzbel)의 ≪라벤다 살인사건(Meutre dans les lavandes)≫, 마르고 르모알(Margot Le Moal)과 장 르모알 (Jean Le Moal)이 함께 쓴 ≪브레첼과 뵈르살레(Bretzel et beurre salé)≫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세 번째로는 멀티미디어와의 시너지 효과다. BBC 드라마로 먼저 성공한 ≪천국의 살인(Meurtres au paradis)≫이 프랑스에서 출간되면서 새로운 독자를 끌어 모았고, 로버트 소로굿의 ≪말로의 여인들(Les dames de Marlow enquêtent)≫ 시리즈는 역으로 드라마 준비 소식까지 전해지며 주목을 받았다.
프랑스 서점의 현장 변화도 매우 흥미롭다. 프랑스의 대형 서점인 프낙(FNAC)을 비롯해 대부분의 서점에는 ‘코지 미스터리’ 전용 진열대가 있다. 온라인 서점 플랫폼에는 코지 미스터리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어 큐레이션을 강화하기도 했다. 이에 출판사들은 경쟁적으로 번역권을 확보하고 있을 것이며 기존의 ‘범죄 소설’ 레이블 안에 코지 미스터리 라인을 독립적으로 만들어 마케팅하기도 한다. 다만 시장 전체 통계에는 아직 한계가 있어 본 보고서에서 좀 더 자세히 소개할 수 없어 유감이다. 프랑스의 출판 통계을 알아 볼 수 있는 GfK나 SNE, 하다 못해 Editis에서도 코지 미스터리를 독립 장르로 계량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시장 매출 규모를 정확히 가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범죄 소설’ 카테고리 전체가 2024년 기준 전년 대비 5,2% 성장을 기록하는 것으로 볼 때, 코지 미스터리도 그 안에서 성장세를 뒷받침하고 있을 것이라 예상할 뿐이다.
이 외에도 흥미로운 점은 새로운 독자층의 등장 및 확대가 아닐까 한다. 기존의 ‘조용한 시골 노부인 탐정’이라는 클리셰에서 벗어나 다양한 인물상이 등장하면서 독자들이 더 쉽게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테면 ≪목요일 살인 클럽≫에서는 은퇴는 했지만 매우 활동적인 노인들이 등장하고, ≪아가사 레이진≫에서는 50대이지만 마음은 20대인 활달한 중년 여성이 주인공이다. ≪요크셔 탐정들 ≫시리즈에는 지역 공동체의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며 전통적 아마추어 탐정의 범위를 훌쩍 넘어선다. ≪옥스포드의 살인적 티(Les thés meurtriers d’Oxford)≫에는 소위 잘나가는 커리어를 그만 두고 옥스포드 고향으로 돌아와 찻집을 차린 20대의 여성이 주인공이다. 여기에 소수자의 시각은 물론 더욱 더 다양한 직업군을 반영한 작품들이 점차 번역되고 소개되면서 코지 미스터리는 단순히 ‘위로가 되는 독서’를 넘어서고 있다.
이렇듯 코지 미스터리는 오늘날 프랑스 출판계에서 더 이상 틈새장르로 여겨지지 않고 있다. 전용 팬덤은 물론 안정적 판매지표, 지역성과 미디어 확장을 통한 대중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범죄소설’ 시장의 중요한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결국 코지 미스터리는 프랑스 독서 시장에서 일시적 유행을 넘어선 지속 가능한 장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앞으로의 과제는 더 다양한 목소리와 배경을 담아내며, 현재 불고 있는 열풍을 장기적 문화 현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출처
https://actualitte.com/article/125856/enquetes/polar-breton-enquete-provencale-le-cosy-mystery-a-la-francaise
https://www.lemonde.fr/economie/article/2025/04/06/le-polar-une-bonne-sante-en-trompe-l-il_6592120_3234.html#:~:text=Selon%20l’institut%20Nielsen%20IQ,en%20valeur%20l’an%20dern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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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livreshebdo.fr/article/les-autrices-francaises-grandes-oubliees-du-du-polar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5년 ‘랑데르노상’ 후보작의 네 가지 포인트, 프랑스의 새로운 문학 현상, 코지 미스터리
2025 프랑스 출판시장 트렌드: 랑데르노상과 코지 미스터리 열풍으로 본 문학계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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