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이모저모. 허위 이력 논란과 저자 검증: 출판계 신뢰 확보를 위한 현실적 제도와 대응 방안

출판계 이모저모. 허위 이력 논란과 저자 검증: 출판계 신뢰 확보를 위한 현실적 제도와 대응 방안

 

 

 

출판계 이모저모
허위 이력이 남긴 저자 검증의 필요성
손수호(법무법인 지혁 대표 변호사)
2025. 9+10.

출판계, 저자 검증, 허위 이력, 출판윤리, 출판사 사례, 책 판매 전략, 출판법, 베스트셀러, 독자 신뢰

 

 

유명한 저자가 쓰면 팔린다

지치고 피곤하면 서점에 가서 책 구경을 한다. 서점에 진열된 책 표지만 슬쩍 보고 다녀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렇게 많은 책을 골라 읽을 수 있다니 즐거운 일이다. 책만큼 출판사도 많다. 필자도 얼마 전출판사를 설립했다. 출간한 책은 아직 직접 쓴 전자책 한 권이 전부이지만, 어설프게나마 출판을 경험했더니 서점에서 만나는 책들이 더 반갑고 특별해 보인다. 그래서 이 글에서 다룰 이야기가 그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다양한 책들이 진열된 서점 내부

책과 출판사는 넘쳐나지만 모든 책이 독자들의 선택을 받지는 못한다. 물론 재미와 감동을 전해주는 좋은 책은 독자들이 잘 알아보지만 의외로 외면당하는 경우도 많다. ‘좋은 책’을 판단하는 기준이 사람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판사는 당사가 출간한 책이 좋은 책이라는 것을 대중에게 설득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저자’다. 책을 집필한 작가는 대중에게 영향을 직접적으로 끼치는 매우 중요하고 강력한 요소다. 그래서 출판사는 ‘좋은 저자’를 찾는다. 전문성을 갖추고 통찰력도 있으며 글솜씨까지 좋다면 독자의 선택을 받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유명해야 한다. 그리고 유명함을 뒷받침할 학위나 경력, 즉 누구나 인정할 만한 ‘간판’이 있어야 한다. 저자의 인지도가 책 판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저자의 인맥도 중요하다. 책 띠지에 올라온 추천 마크나 뒤표지에 실린 추천사로 저자의 사회적 평판과 관계망을 확인하기도 한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사람들의 칭찬과 추천은 중요한 마케팅 수단이다. 인기도 있고 인맥도 좋은 저자의 영향력이 출판사의 마케팅과 결합하면 대중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 그런데 최근 벌어진 저자 허위 이력 사건을 보면, 그 배경에는 이처럼 저자의 유명세에 의존하는 출판계의 관행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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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좋은 저자’

최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살펴보자. 심리상담가로 활동하던 저자는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 및 뇌과학 학사와 UCLA 임상심리학 박사라는 이력을 내세워 강남에서 심리상담소를 운영했다. 상담실에는 하버드 대학교를 포함한 여러 기관에서 발급된 인증서들이 놓여 있었다. 이런 간판을 내세운 저자는 온라인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여러 공공기관과 함께 일하기도 했다. 대검찰청과 서울시교육청에서 강연했으며 방송을 통해 대중에게 소개되며 널리 알려졌다. 이처럼 관련 분야 전문성을 기초로 인지도와 해외 학위까지 갖췄으니, 그야말로 출판사가 찾는 ‘좋은 저자’였을 것이다.


출처: 챗GPT(ChatGPT)

위 저자의 신간은 올해 1월 출간됐다. 그동안 좋은 평가를 받아온 규모 있는 출판사와 함께 자녀 양육을 다룬 교양·인문서를 펴냈다. 작가의 화려한 이력에 더해 해외 유명 석학들의 추천사를 내세워 홍보한 그 책은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저자의 오프라인 심리상담소는 더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온라인상에서 저자의 학력 위조 의혹이 제기되면서 출판사는 사실 검증에 나섰고, 결국 모든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이후 저자는 SNS 계정을 삭제하였고 출판사는 급히 도서 판매 중단과 환불 절차를 진행했다. 그리고 며칠 뒤, 저자는 사건의 책임을 물을 겨를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정확한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가 이미 다른 여러 출판사와 새로운 책 출판 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출판사와 독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좋은 저자’가 되려던 무모한 행보가 이런 비극을 만들어 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떤 책이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필자는 논란의 그 책을 직접 읽어보았다. 그런데 의외였다. 가짜 학자가 쓴 책인지 의심될 정도로 구성은 탄탄했고 내용과 사례는 설득력이 있었다. 실제 저자가 집필했는지 대필이나 편집 과정에서 어느 정도 윤문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자의 간판을 떼어놓고 봐도 책의 메시지는 진지했고 전달 방식은 매끄러웠다. 술술 잘 읽히는 책이었다.

그러나 이런 의문이 들었다. 과연 저자의 화려한 간판이 없었더라도 이 책이 대중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을까. 쉽게 답하기 어려웠다. 물론 저자의 명함은 독자의 신뢰를 얻기 위한 좋은 도구이다. 또한 저자 자체를 도서 마케팅 도구로 활용하는 것을 나쁘게만 볼 수도 없다. 하지만 바로 그 신뢰 때문에 독자들은 이 사건에서 더 큰 충격과 배신감을 느꼈다. 책을 구매하고 시간을 들여 읽고 그 내용을 삶에 적용해 보려는 독자들의 믿음은 그렇게 무너졌다. 가장 큰 피해자는 독자들이었다.

 

 

저자 검증의 현실과 문제점

출판사는 공식 입장문을 올렸다. “저자의 이력과 경력을 검증하는 과정이 충분하지 못하였다는 점과 추천사의 진위 여부를 의심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사과했다. 저자의 오프라인 강연을 진행한 공공기관이 이미 이력을 검증했을 것으로 판단했고 주변 임상심리 전문가의 평가도 좋았기 때문에 의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의아하고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해명이었다. 그러나 대중은 그렇지 않았다. 기본 중의 기본인 저자의 학력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며 비판했다. 이번 사건은 저자 개인의 일탈과 범죄를 넘어 출판계 전반의 검증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


출처: 챗GPT(ChatGPT)

출판사는 ‘좋은 저자’에게 기대고 있다. 경력이 화려하고 이름이 알려진 저자는 현실적으로 출판사보다 우위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출판사가 저자를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나서기는 쉽지 않다. 우리 사회 정서상 학위나 경력 증명서와 같은 공식적 문서를 요구하면 저자에 대한 의심으로 받아들여진다. 무엇보다 출판계에는 저자의 경력을 직접 문서로 확인하도록 하는 규정이나 관행이 없다. 그러니 출판사가 먼저 적극적으로 저자에게 확인을 요구하기는 쉽지 않고 저자가 나쁜 의도로 이력을 속이려 들면 출판사는 그저 속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듯 출판사의 난감한 입장도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고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일은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해결책은 무엇일까? 저자와 출판사, 독자의 입장을 모두 고려하여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저자 이력 검증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필자는 변호사로서 법적 관점에서 몇 가지 절차와 제도를 떠올려봤다.

 

 

시스템 개선 제안 ①: 계약서부터 바꾸자

가장 먼저 출판사와 저자 계약서에 명시하는 방법이 있다. 현행 출판권 표준계약서에는 제3자의 저작권 등 법적 권리 침해 시 저자가 책임진다는 내용은 들어 있다. 하지만 저자의 허위 이력 기재는 여기에 명확히 포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저자가 출판사에 대하여 직접 저자 정보의 진실성을 보증하고 이를 위반했을 시 법적 책임을 다할 것을 스스로 확인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조항의 삽입을 제안한다.

제O조 (저자 정보의 진실성 진술 및 보증)
① 저작권자는 출판사에 제공한 본인의 학력, 경력, 자격, 면허, 수상 내역 등 모든 이력 정보가 진실하고 정확함을 진술하고 보증한다.
② 출판사는 위 정보의 진실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저작권자에게 객관적인 증빙 자료의 제출을 요청할 수 있으며, 저작권자는 이에 성실히 협조하여야 한다.

위 조항을 통하여 출판사의 이력 검증 요청을 관행에 반하는 무례한 요구가 아닌, 계약에 따른 정당한 권리 행사로 만들 수 있다. 또한 저자의 협력 의무를 명시함으로써, 저자가 자료 제출을 거부하거나 주저할 경우 출판사가 위험을 미리 감지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이어서 다음과 같이 위약벌 조항까지 추가하면 그 효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제O조 (허위 이력에 대한 위약벌)
① 만약 전조의 진술 및 보증 사항이 허위로 밝혀져 출판사에 유무형의 손해가 발생한 경우, 저작권자는 출판사에 위약벌로 ______원을 지급한다.
② 전항의 위약벌 규정은 출판사가 실제로 입은 손해의 배상 청구(도서 제작, 폐기 및 환불 비용, 마케팅 비용, 출판사 신용 훼손에 따른 손해 등)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아니한다.

위약벌은 출판사가 실제로 입은 손해에 대한 배상 청구와 별개로 일종의 금전적 벌칙에 해당한다. 출판사의 실제 손해액 입증과 관계없이 계약 위반 사실만으로 곧바로 거액의 위약벌을 지급하도록 하면 저자가 위험을 감수하고 허위 이력을 제공할 가능성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단순히 사후적인 제재 규정이 아니라 이력 사칭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예방 조치에 해당한다.

이처럼 계약서에 저자 제공 정보의 진실 보증 조항 및 위약벌 조항을 추가함으로써 저자에게 자신의 이력에 대한 책임감을 명확히 인지시킬 수 있다. 이로써 ‘믿음’과 ‘신뢰’의 영역에 있던 저자 검증을 ‘계약’과 ‘책임’의 법적 영역으로 가져올 수 있다. 한편 현행 출판 분야 표준계약서의 근거는 문화체육관광부 고시이고, 장관이 3년 단위로 타당성을 검토하여 개선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위와 같은 안전장치가 표준계약서에 포함될 수 있도록 출판계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시스템 개선 제안 ②: 저자의 직접 증빙 자료 제출

다음으로 법령에 출판사의 저자 검증 의무를 규정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을 비롯한 출판 관련 법률을 개정하거나 아니면 법률까지는 아니더라도 간행물 심의 등과 관련한 여러 규정을 통해 출판사의 검증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즉, 출판사가 직접 저자의 이력을 사실로 확인하지 못하면 이를 책에 기재하거나 이를 활용해 홍보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이다. 위반 시 벌칙까지 규정하면 출판사의 검증 의무는 더욱 무거워질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내용의 법제화가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다소 의문이다. 또한 저자가 작정하고 출판사를 속이기 위해 허위 자료를 제출하면 출판사가 이를 제대로 검증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책임 소재를 둘러싼 갈등이 벌어질 수 있다. 이처럼 출판사가 검증의 주체가 되도록 하는 방식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출판사가 아니라 저자에게 직접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 즉, 저자가 직접 자신의 책에 기재한 경력을 증명하는 자료를 제출하도록 하고, 이를 출판의 전제 조건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물론 저자가 증빙 자료 자체를 위조하거나 변조할 위험은 여전하다. 하지만 출판사가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스스로 제출하도록 함으로써 출판사의 책임을 경감하고 실질적인 검증 절차를 강제할 수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출판사에만 검증 의무를 지우면 제대로 된 검증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구체적으로 이런 방식은 어떨까. 저자의 경력 확인 자료 제출을 출판 유통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만들어야 한다. 출판사는 신간의 국제 표준 도서 번호(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 ISBN)를 신청할 때 다양한 정보를 입력해야 하는데, 출판사가 저자의 경력 자료를 받아서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직접 업로드하고 사실에 반할 경우 법적 책임 부담을 약속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저자가 허위 자료를 제출한다면 1차 책임은 온전히 저자가 부담한다. 따라서 저자가 경력 부풀리기 없이 사실대로 이야기하도록 만들 수 있다. 만약 무언가 부담을 느낀 저자가 자료 제출을 거부하면 애초에 유통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저자가 주저한다면 출판사는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전산 시스템 개편이 필요하지만, 출판사의 부담을 줄이면서도 허위 이력 논란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아이디어다. 이처럼 제도와 시스템을 통해 출판 전 저자의 이력이 확인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또한 이는 출판사가 저자에게 이력 검증을 요구할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있다. 충분한 명분을 제공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실효성 있는 검증이 이루어질 수 있다.

필자는 변호사로 일하며 겪은 놀라운 사건과 감상을 기록한 『사람이 싫다』(브레인스토어, 2022)를 출간했다. 꽤 많은 독자가 읽었고, 꽉꽉 눌러 담은 충실한 내용에 여전히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만약 필자가 변호사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아무래도 독자들의 관심과 신뢰를 얻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전문성을 내세운 유명한 저자는 독자의 선택을 받기 쉽다. 이런 현실을 그저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역시 출판 과정에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출판은 믿음을 기반으로 사람에서 시작해서 사람으로 가는 과정이다. 글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의 온정과 유대감은 매우 소중한 자산이자 우리 출판계의 문화와 자랑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이런 따뜻함이 어리숙한 허점으로 느껴질 수 있다. 우리의 믿음을 악용한 허위 이력 사건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이를 뒷받침하는 현실적인 제도 마련을 위해 고민해야 한다. 이제 출판계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강한 의지를 보여줘야 할 때다.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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