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프랑스 철학의 숨겨진 보석 사랑의 철학 I
저자 : 이명곤
ISBN : 978-89-6131-201-1
페이지 : 354page
발매일 : 2025-12-26
크기 : 152*225mm
정가 : 25,000원
책소개
“사랑이 없는 곳, 그곳이 곧 지옥이다.” 차가운 지성을 녹이는 프랑스 현대 철학의 거장 5인의 뜨거운 사유
디지털화된 세상, 피상적인 인간관계, 그리고 끊임없이 들려오는 우울한 소식들… 우리는 지금 ‘사랑의 빈곤’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대 프랑스 철학의 숨겨진 보석 사랑의 철학 I》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저자는 프랑스 유학 시절, 가난한 유학생인 자신에게 대가 없는 호의를 베풀어주었던 프랑스인들의 삶 속에서 철학의 실천적 힘을 목격했습니다.
앙리 베르그송, 떼이야르 드 샤르댕, 가스동 바슐라르, 시몬느 베이유, 에마뉘엘 무니에 등 현대 프랑스 철학을 대표하는 5명의 사상가를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새롭게 조명합니다.
• 창조적 진화의 원동력을 사랑에서 찾은 베르그송
• 과학과 종교, 우주와 신성을 사랑으로 통합한 샤르댕
• 사랑을 대립의 일치이자 비상의 힘으로 본 바슐라르
• 고통과 불행을 신적인 사랑으로 승화시킨 시몬느 베이유
• 사랑을 실존적 결단과 사회적 소명으로 확장한 무니에
이 책은 난해한 철학 이론서가 아닙니다. 사랑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전하는 지적 위로이자, 다시금 삶을 사랑하게 만드는 따뜻한 초대장입니다. 사랑에 대해 더 깊이 사유하고 싶은 당신에게, 이 책은 잃어버린 삶의 의미를 되찾아줄 나침반이 될 것입니다.
저자소개
이명곤
• 경북대 철학과 졸업
• 리옹 가톨릭대학(프) 토마스 아퀴나스 영혼론으로 DEA학위 취득
• 파리 1대학(판테온 소르본)에서 철학사(비교철학) DEA학위 취득
• 동 대학 철학과에서 토마스 아퀴나스 ‘인간학과 영성’으로 「박사학위」 취득
• 동 대학 예술대학 조형미술학과 리상스 및 석사학위(한국화) 취득
• 동 대학 미학(현대미학) DEA학위 취득
• 대구가톨릭대 연구교수 및 경북대 전임연구원
• 2012년부터 현재까지 국립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서양고중세철학, 예술철학, 종교철학 등 강의)
• 2014년 영남미술대전의 초대작가(한국화)로 등단
• 2023년 「우수교수」 학술진흥부분 교육부 장관 표창 수상
• 저서 : 《한글세대를 위한 서양철학 : 고중세편》, 《철학, 인간을 사유하다》, 《토마스 아퀴나스 읽기》, 《키르케고르 읽기》, 《토미즘의 생명사상과 영성이론》, 《종교철학 명상록 : 성인들의 눈물》 외 10여 권이 있다.
• 역서 : 《죽음에 이르는 병》, 《물질과 기억》, 《토마스 아퀴나스 존재의 형이상학》, 외 5권이 있다.
• 발표 논문 : 「중세철학에서 내면성의 의미」, 「토미즘에 있어서 완전한 사랑은 가능한가」 외 약 60여편이 있다.
목차
저자의말
1장. 앙리 베르그송
1. 사랑의 시선으로 다른 철학자들 바라보기
2. 창조적 감정 이 매혹적인 우주는 어디에서 왔는가?
3. 생의 약동 사랑의 원초적인 형식은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다
4. 원초적 본능에서 영적인 상태로
5. 자연에 대한 사랑, 인간의 사랑, 신비적 사랑
6. 예술가의 사랑 더 높은 감정은 그 자신만으로 충분하다
7. 사랑과 야망 그리고 신비주의에 지지되는 애국심
8. 집단성을 극복하는 사랑의 영웅주의
9. 종교적 사랑과 진정한 신비주의
10. 신비가의 사랑은 도덕적인 것 이상이다
2장. 떼이야르 드 샤르댕
1. 우주에 대한 매력과 신성에 대한 매력
2. 사랑의 보편성, 우주적 사랑
3. 모든 것의 중심인 사랑
4. 모든 것을 ‘인격화’하는 사랑
5. 삶에 대한 헌신으로서의 도덕적인 사랑
6. 모든 것을 변모시키고 통합하는 종교적 사랑
7. 다양성의 시대, 그리스도인의 사랑
8. 모든 사랑의 정점인 그리스도의 사랑
9.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신비주의적 사랑
10. 모든 순간, 모든 것에서 섭리하시는 신성한 사랑과 보편적 사랑
3장. 가스동 바슐라르
1. 현대 문명, 무엇이 문제인가?
2. 사랑하는 자만이 수백 가지의 이름을 부여할 수 있다
3. 과학은 지성의 미학이며, 몽상은 창조적 능력이다
4. 진정한 야행성의 삶이란 몽상을 통해 비상하는 것에 있다
5. 교감은 정신적인 실재를 낳고, 가장 충실한 사랑이 된다
6. 사랑은 대립하는 두 존재를 일치하게 하는 힘이다
7. 사랑은 삶의 중심을 우리 바깥으로 옮긴다
8. 사랑은 이상성을 낳고 또 완성을 낳는다
9. 사랑은 지칠 줄 모르는 비상의 힘이다
4장. 시몬느 베이유
1. ‘사랑의 소명’을 선택한 시몬느 베이유
2. 실재와 진리 인식의 원리인 사랑
3. 사랑, 불행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
4. 진리가 사랑을 참된 것으로 만든다
5. 하나의 사랑이 무수한 이름을 가진다
6. 인생길에 나타나는 사랑의 제 원리들
7. 필연성과 고통을 껴안는 신비가의 사랑
8. 고통과 불행을 사랑으로 바꾸는 신적 사랑의 역설
9. 절대자이자 초월자인 신에 대한 신비가의 사랑
5장. 에마뉘엘 무니에
1. ‘시대적 불안’에 대한 각성과 사회적 소명
2. 실존적인 코기토(cogito existentiel)로서의 사랑
3. 사랑이 전혀 없는 곳, 그곳이 곧 지옥이다
4. 사랑은 완성을 지향하며, 끊임없이 성장하는 것이다
5. 사랑은 정의를 요청하며, 그 이상으로 나아간다
6. 사랑을 상실한 현대인의 비극과 예언자적 소명
저자후기
출판사 서평
사랑을 잃어버린 시대를 위한 철학적 처방전 지성의 언어로 감성의 온기를 되살리다
철학은 흔히 차가운 이성의 학문으로 오해받곤 한다. 하지만 서양 철학의 근저에는 언제나 ‘에로스’와 ‘아가페’에 대한 치열한 탐구가 있었다. 신간 《현대 프랑스 철학의 숨겨진 보석 사랑의 철학 I》은 20세기 프랑스 지성사를 수놓은 다섯 명의 철학자를 통해, 철학이 어떻게 인간의 가장 뜨거운 감정인 ‘사랑’을 사유했는지를 보여주는 수작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균형감’과 ‘진정성’이다. 저자는 단순히 학문적 텍스트를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유학 생활과 개인적 체험을 녹여내어 독자들에게 말을 건넨다. 베르그송의 생명 철학이나 바슐라르의 몽상론 등 다소 난해할 수 있는 주제들을 ‘사랑’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명쾌하게 풀어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책이 다루고 있는 스펙트럼이다. 과학적이고 보편적인 사유를 전개한 베르그송과 바슐라르에서 시작하여, 종교적 신비주의와 사회적 참여를 강조한 샤르댕, 베이유, 무니에로 이어지는 흐름은 ‘사랑’이 개인의 감정을 넘어 사회적 연대와 우주적 원리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랑만이 그 대상에게 수천 가지의 이름을 부여할 수 있다”는 바슐라르의 말처럼, 이 책은 독자들에게 사랑의 다채로운 얼굴을 발견하게 한다. 삶이 건조하다고 느껴지는가? 관계에 지쳐 있는가? 그렇다면 이 책을 펼쳐보라. 프랑스 철학자들의 깊은 사유 속에서, 당신은 다시 사랑할 수 있는 논리와 용기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전문 연구자들에게는 ‘사랑’이라는 주제로 현대 철학을 재해석하는 신선한 관점을, 일반 독자들에게는 메마른 삶을 적시는 인문학적 단비를 제공할 것이다.
머리말
‘인생은 고통의 바다’라는 불교의 말이 있듯이, 어쩌면 매 시기 동일하게 느끼는 감정일지도 모르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참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점점 더 디지털화되는 세상에서,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메마르고, 소통이 단절되며, 인간관계가 관계라고도 할 수 없을 만큼 피상적인 이러한 시대는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하는 이들에게는 그 자체 하나의 시련이다. 게다가 현재의 국내 사정을 보면, 언론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불행한 소식들이 들려오는 것 같고, 우울하고 암울한 일들이 끊이질 않는다. 그래서 천성적으로 낙천적인 나 역시도 삶의 밝은 면을 보기가 무척 어렵다. 이런 때에 무엇을 해야 할까? 「사랑의 철학」이라는 책을 구체적으로 구상한 것은 프랑스에서 유학할 때였지만, 무의식중에는 언제부터인지 알 수가 없다.
고2 때 여러 이유로 성당에 나가 ‘예비자 교리’라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3 여름 방학 때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런 것은 대학 가서 하지!’라는 가족들의 우려가 있었다. 특히 정월 보름이면 승복을 입고 절에 가서 이틀을 보내는 독실한 불교 신자인 어머님의 실망은 참으로 컸다. 대학 졸업 후에는 ‘예수회 수도회’에 입회를 하자 어머님과 형님의 나에 대한 실망과 원망의 마음이 나에겐 가장 큰 안타까움이었다. 내가 수도회를 퇴회한 것이 오직 가족의 반대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내가 예수회를 떠나게 된 중요한 하나의 이유가 된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는 ‘가장 가까운 가족들 하나 사랑하지 못한다면 내가 누구를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였다. 내가 유학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을 떠나 프랑스에서 살게 되었을 때, 나는 큰 하나의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나의 청소년 시절과 청년시절의 모든 고뇌와 갈등이 사실은 단 하나의 이유, 즉 ‘사랑의 부재 혹은 부족’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천주교 신자로서 성당에서 늘 들었던 말이 ‘사랑하라!’는 말이었지만, 그 말이 현실 속에서 절실하게 그리고 뼛속까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프랑스에 살면서였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곤란한 일에 처할 때마다 프랑스인들의 사랑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고, 아무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줄 것이 없었던 나였지만, 나를 오직 사랑으로 대해준 프랑스 학생들과 이웃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유학을 하면서 기대 이상으로 결과를 도출하였던 이유도 그들의 사랑 덕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물론 그곳에서도 정도의 차이를 가지고 인간적 삶에서 가지는 무수한 고뇌와 어려움 그리고 사회악들이 존재하였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삶의 근본원리는 곧 사랑인 것처럼 보였다. 소르본(파리 1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준비할 때, 한국에서 IMF가 터졌다. 집에서 부모님이 보내주시던돈이 반토막이 났다.
첫 아이까지 있는 터라, 도저히 어려워 유학을 포기하고 ‘귀국할까’ 하는 생각이 굴뚝 같았다. 내 사정을 알고 있던 지도교수인 ‘헤미 브라그’ 교수는 참으로 관대하고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내가 쓴 학위 논문들을 일일이 교정까지 해주시며, 학위과정을 무사히 마치도록 용기를 주었다. 그 덕분에 학위가 완성되었을 때는 더 이상 프랑스 학생에게 교정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박사 논문이 통과되었을 때, 프랑스 국립학위보급기관(ENRT)에서 비용 없이 내 논문이 출간되도록 추천해 준 사람도 그분이었다. 학위논문에 진척이 있었고 경제 사정도 점차 나아졌을 때, 24시간 자유였던 나는 그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기가 너무 아까워 예술대학 조형미술학과에 등록하였다.
프랑스에는 예체능계도 복수전공이 가능하였고, 취미로 문인화를 배웠던 나는 좀 더 전문적으로 한국화를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파리 1대학 예술대에는 ‘한국화’를 전공하는 학생도, 한국화를 배운 교수도 전혀 없었다. 놀라워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많은 학생과 교수들이 비판과 핀잔 그리고 냉소를 보냈다. 심지어 어떤 때는 F 학점을 3과목이나 받아서 방학 때에 재시험을 보아야 했다. 하지만 내가 한국화로 ‘석사학위’를 받고 또 미학으로 ‘DEA학위’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프랑스인들이 보여준 사랑의 행위가 용기를 준 때문이었다.
한국에 귀국하여 어려운 강사 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미전에 출품하고, 마침내 작가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재주가 많네” “철학이면 되었지! 욕심이 많다” 심지어 “별것 다하네”라고 하면서 비꼬는 시선이 더 많았다. 그리고 지금도 ‘철학 교수’인내가 한국화 작가라는 것에 대해 그것이 가능한가 하면서 의심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노골적으로 “교수인가 작가인가?”라고 묻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나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는 사람들에게 사랑이 너무 부족하다’라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청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 한국에서 사랑을 충분히 느낄 수 없었던 나는 프랑스 철학자들을 공부할 때마다, ‘사랑’이라는 화두를 놓지 않았고 그들이 생각하고 말하는 ‘사랑’에 대해 유심히 살펴보았다. 흔히 사람들은 ‘사랑이란 너무나 보편적인 것이어서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고, 또 사랑이란 것을 철학적으로 공부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묻곤 한다. 하지만 중세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의 모든 정념의 뿌리는 사랑이다”라고 하였고, 키르케고르는 “사랑은 본질적으로 무한을 사랑하며, 사랑이 두려워하는 것은 한계뿐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말하자면 우리가 ‘인간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중에 사랑이 연관되지 않는 것이 없고, 또 이러한 사랑은 무한을 지향하기에 ‘이만하면 되었다’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며, 항상 모자라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공부를 해도 부족한것이 사랑에 관한 주제일 것이다. 사실 사랑에 관한 이론은 플라톤 이후 서양 철학사에서 끊임없이 논의되어 온 일반적인 주제였다. 특히 사유가 막다른 골목에 처할 때마다, 철학자들은 사랑의 이론에서 영감을 얻고 길을 모색하였다. 그래서 유학을 하면서 ‘나중에 한국에가서 학자가 된다면 꼭 「사랑의 철학」이란 책을 써야겠다’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은 그 다짐의 첫 번째 결실인 셈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철학자들은 총 5명이다. 애초에 10명을 선택하여 준비하였지만, 분량이 너무 많았다. 아무리 유용하고 좋은 책이라고 해도 너무 두꺼우면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1부와 2부로 나누기로 하였다. 1부는 보다 현대인의 감성에 적합한 ‘과학적 사유’ ‘보편적인 사유’를 중심으로 구성하였고, 2부는 특히 그리스도교 철학자들의 사상을 중심으로 구성하였다. 사상이라는 측면에서 ‘사랑’에 대한 주제는 당연히 그리스도교의 핵심이지만, 전통적으로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에서는 기독교와 무관한 철학자들도 사랑에 대해 깊이 성찰한 이들이 많은 편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은 앙리 베르그송, 떼이야르 드 샤르뎅, 가스동 바슐라르, 시몬느 베이유, 에마뉘엘 무니에이며, 이들 중에서 오리지널하게 그리스도교 철학자라고 할 만한 사람은 ‘떼이야르 드 샤르뎅’ 한 명뿐이다. 그럼에도 사랑에 대한 다른 철학자들의 사유가 결코 샤르댕 신부보다 빈약하거나 덜심오하지 않다. 그 이유는 사랑이란 비록 그 이름이 다를 뿐 누구에게나 중요하고 소중한 개념이자 가치이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철학자들의 사유에서도 사랑에 대한 주제는 적지 않을 것이지만, 현대 철학자들을 선택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 번째 이유는 과거 철학자들의 사유는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지만, 현대 철학자들의 사유는 비록 많이 연구되었다 해도, 그들의 사랑에 대한 사유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책의 제목에 「현대 프랑스 철학의 숨겨진 보석」이라는 소제목이 붙은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소중한 것은 드러나야 하고 만인에게 공유되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일종의 낭비이다. 두 번째 이유는 ‘하나의 사랑이 무수한 이름을 가진다’라고 시몬느 베이유가 말하고 있듯이 사랑만큼 다양한 이름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없으며, 현대에는 또한 현대인의 감성과 지성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나타나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교회나 성당에서는 여전히 사랑을 말하고 있지만, 어떤 관점에서 그것은 2천 년 전에 말했던 것을 되뇌는 것에 지나지않는다.
사랑은 결코 고여있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한다. 몽상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바슐라르는 “사랑만이 그 대상에게 수천 가지의 이름을 부여할 수 있다”라고 말하였다. 시대가 바뀌면, 세상이 변화하면 사랑도 새로운 목소리를 내어야 하고, 새로운 빛과 향기를 퍼뜨려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이중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보다 많은 이들이 사랑에 대해 보다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이로써 한국 사회가 더욱 인간답고 더욱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일반인들을 위한 것이다. 둘째는 매우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지만, 학문적으로는 좀처럼 다루지 않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통해 프랑스의 현대철학자들 사상의 또 다른 면, 또 다른 깊이를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철학도나 학자들을 위한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사랑이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에 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철학자 파스칼은 “끊임없이 사랑에 관해 이야기함으로써 우리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사랑을 이야기하고, 사랑에 대해 묵상하고, 사랑에 대해 논하는 가운데 우리는 분명 조금이나마 더 사랑스러운 존재로 변화될 것이다. 사랑에 대한 철학자들의 사유를 다루다 보면 사랑에 대해 어떤 이는 존재론적인 근원으로, 어떤 이는 인식의 원리로, 어떤 이는 참된 관계성의 지반으로, 어떤 이는 창조적 힘의 근원으로, 어떤 이는 행동의 원칙으로, 어떤 이는 윤리·도덕의 궁극적 목적으로 또 어떤 이는 통합과 일치의 원리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동일한 사랑의 다양한 효과이고 다양한 현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분명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같은 소중한 사유들이 학계에서는, 특히 국내의 학계에서는 그 가치가 평가절하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좀 더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좀 더 사랑하는 삶으로 변화되기를, 그리고 학자들에게는 사랑이라는 주제가 조금이나마 학문의 소중한 주제로 인식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사랑이 전혀 없는 인생이란 살아도 산 것이 아닐 것이며, 사랑이 희미해지면 삶의 의미나 맛도 희미해진다.
“오래 살았지만 별로산 것 같지 않다!”라는 말로 일반인들의 삶의 느낌을 대변해 주는 어떤 시인의 말이 기억난다. 아마도 그 이유는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은 한 권의 책이 독자들로 하여금 조금이라도 사랑하는 삶에 대해 눈뜨게 하고, 조금만 더 사랑하는 삶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해 준다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저자후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에는 “악인에게 악을 행하지 않도록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선하지 않은 사람에게 선을 행하도록 바란다는 것’도 어리석은 생각일 것이며, ‘사랑으로 충만하지 않은 사람에게 이웃을 사랑하기를 바란다는 것’도 어리석은 생각일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내 존재가 사랑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루소는 “나에게 도덕에 대해 글을 써달라고 한다면, 99페이지를 비워두고 마지막 페이지에 ‘사랑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라고 쓸 것이다”라고 하였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것을 하라”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진술들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행위’ 안에 필요한 모든 덕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사실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무엇이건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나 의지만으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데는 참으로 한계가 있음을 자주 느낀다. 왜 그런 것일까? 그것은 마치 진정으로 수영하고자 한다고 해서 마음이나 의지만으로는 수영을 제대로 할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일 마음이나 의지만으로 사랑이 충분하다면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그토록 많은 갈등과 고뇌는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먼저 내가 사랑으로 충만한 존재로 변모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어떻게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인지 아는 것이다. 사랑의 기술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랑은 단순한 의지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의지가 있다면 우리는 사랑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또 사랑하는 방법도 배워야 할 것이다. 사랑은 존재 전체를 사랑하는 것이지 존재의 일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인간 존재가 소유주와 같은 것이라면 한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도 우주를 사랑하는 만큼의 앎을 필요할 것이다. 누구도 나무를 알지 못하고는 나무를 사랑할 수 없듯이, 우리가 충분히 인간을 이해할 수 없다면, 진정으로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다섯 명의 철학자가 생각하는 사랑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가능한한 그들이 말하고 생각하는 것을 충실하게 전달하고자 노력하였다. 인간이 가진 원초적인 감정으로서의 사랑, 세계와 인간을 인식하는 원리로서의 사랑, 자기 인격을 완성하는 원리로서의 사랑, 창조성을 낳는 예술적 원리로서의 사랑, 이상성과 완전성을 산출하는 사랑, 우리의 실존을 끊임없이 비상시키는 사랑, 삶의 중심으로서의 사랑, 대립하는 것을 일치시키는 능력으로서의 사랑 등의 개념을 통해 사랑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다양한 사랑의 양태들과 그 결과들에 대해서도 고찰하였다. 이러한 사랑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사랑의 정서가 자리 잡고, 또 나를 둘러싼 모든 존재들을 사랑하고자 하는 의지도 유발하게 될 것이다. 최소한 이러한 변화를 조금이라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이라고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철학자들을 통해 사랑에 대한 앎과 이해를 가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사랑에 대한 앎은 앎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랑하면서 살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고자 한다면, 그것은 먼저 내 존재가 사랑으로 변모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내가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사랑으로 그것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요청될 것이다. 비록 진정한 사랑은 모든 이에게 동일한 것이라 해도, 이 사랑은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는 곳에서, 과학자가 분자활동을 고찰하는 곳에서, 기업가가 기업을 운영하는 곳에서, 시인이 시를 창작하는 곳에서, 농부가 농사를 짓는 곳에서, 소방관이나 경찰관이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는 곳에서, 정치가들이 정치를 하는 곳에서 나아가 성직자들이 신도들을 이끌어가는 곳에서, 모든 곳에서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는 사랑이다.
그리고 이 사랑은 최소한 이 지상의 삶에서는 ‘이 정도면 되었다’라는 완성이 주어질 수가 없고, 또 ‘이제 너무 늦었다’라는 시기도 없다. 왜냐하면 사랑은 우리들의 삶의 모든 분야 모든 순간에서, 심지어 죽는 그 순간에도 항상 더욱 요구되고, 더욱 깊어지고, 더욱 나아지기를 바라는 모든 가치들의 가치, 모든 염원들의 염원, 모든 생동감들의 생동감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자주 이러한 생각이 든 것이 사실이다. “과연 내가 이 글을 쓰고, 이러한 진술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사랑하는 사람인가, 내가 이러한 숭고한 사랑에 대해 글을 쓸 만큼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하지만 사랑에 자격이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며, 세상 사람들을 위해 ‘내가 누구인가?’를 잠시 잊는 것도 일종의 사랑이라 생각하며 써 내려갔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아는 모든 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주제넘거나 위선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말기를 당부드린다. 나는 내가 자격이 있거나, 이 책에서 말하는 사랑의 존재나 삶에 어울리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다만 그것을 오래전부터 느꼈고, 그것을 말해야 한다는 일종 사랑의 명령을 느꼈을 뿐이기 때문에 쓰고자 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