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향, 남미 문학의 거장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문학 세계, 인쇄편집, 제품카다록, 총회자료
남미 문학의 거장,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문학 세계
송병선(울산대학교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2025. 7+8.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오해로 점철된 작가
2025년 성주간이 시작된 4월 13일, 페루·스페인 소설가 호르헤 마리오 페드로 바르가스 요사(Jorge Mario Pedro Vargas Llosa, 이하 바르가스 요사)가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으로 20세기 말에 세계 문학을 이끌었던 라틴아메리카의 거장들, 다시 말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ía Márquez), 카를로스 푸엔테스(Carlos Fuentes), 바르가스 요사로 대표되는 라틴아메리카 ‘붐 (Boom) 소설’* 작가들은 이제 모두 고인이 되어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 붐 소설은 1950~1970년대 사이에 라틴아메리카 소설이 세계 문학 시장에서 급부상하면서 붐을 일으킨 문화 현상을 지칭한다.
바르가스 요사(출처: 위키미디어)
1936년 3월 28일 페루 남부의 아레키파(Arequipa)에서 태어난 바르가스 요사는 소설, 단편, 희곡, 문학비평, 언론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한 다재다능한 작가였다. 그는 결코 지식인들과의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라틴아메리카 문화와 정치의 대변인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바르가스 요사는 붐 소설의 시작과 마지막을 의미하는 중요한 작가로, 그가 붐 소설을 유럽에 본격적으로 알린 첫 작품은 『도시와 개들(La ciudad y los perros)』(1962)이었다.
그는 악의적 비난과 비방에 계속 시달렸다. 언젠가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는 그에게 “칭찬을 한 번 받으면 욕은 두 번 얻어먹는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바르가스 요사는 파시스트, 보수주의자, 극우주의자, 반동주의자, 제국의 하수인이라는 말을 비롯해 라틴아메리카 좌파에 등을 돌린 배신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그의 ‘우경화’와 관계가 있다. 그는 “이념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작가”라고 불리지만, 이것 역시 옳지 않은 평가로 보인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주제 사라마구(José Saramago)는 좌파 독재자에게 찬사를 보냈고, 미시마 유키오(Mishima Yukio)도철저한 파시스트였지만 그렇게 불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21세기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소설가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Juan Gabriel Vásquez)의 말에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그는 바르가스 요사의 작품이 위와 같은 비방이나 주장이 옳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이지만, 바르가스 요사의 비방자들은 그의 작품을 읽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사실 바르가스 요사의 작품과 글을 읽어보면 그는 개인의 자유를 지키려고 애썼으며, 자유를 위협하는 수많은 권위주의 세력과 맞섰고, 이념이라는 이름으로 범죄나 학대를 정당화하는 행위를 소리 높여 비난했다. 그에게 문학은 반란이자 반항의 도구였다. 작가와 예술가들을 경멸했던 아버지에 대한 반항이자, 그가 어렸을 때 페루의 독재자였던 마누엘 오드리아(Manuel Arturo Odría), 그리고 우매함과 기억 상실에 대한 반란이었다.
바르가스 요사의 작품 세계: 권력 구조의 해부
① 권력 구조와 사회 비판의 시작
바르가스 요사는 첫 소설 『도시와 개들』을 발표한 이후 올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60년 넘게 왕성하게 활동했다. 『도시와 개들』은 그가 재학했던 리마(Lima)의 레온시오 프라도 군사 고등학교(Colegio militar Leoncio Prado)를 배경으로 삼는다. 이 소설은 군사 고등학교를 페루 사회의 밀실 정치를 보여주는 소우주로 사용하면서, 학교의 군대식 규율이 어떤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서술한다. 바르가스 요사는 자기 안에 ‘악령’으로 자리 잡은 그곳의 경험을 서술하면서 그 악령을 떨쳐 버렸다. 이 작품은 스페인에서 유명한 문학상을 받았지만, 학교의 명예를 실추했다는 이유로 해당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공개적으로 불태워지기도 했다.
바르가스 요사의 두 번째 소설 『녹색의 집(La casa verde)』(1966)은 도시와 학교의 대립을 아마존 밀림의 녹색이 상징하는 ‘자유’와 아마존 마을의 혼탁한 색으로 구현되는 ‘구속’의 대립으로 확장한다. 시간적 대립은 물리적 대립을 일으키면서, 신화적 과거를 지닌 아마존은 현재에 의해 침투되고 변형된다. 그렇게 40년에 걸쳐 일어나는 서로 연결된 다섯 개의 서사는 혼합된다. 한편, 『까떼드랄 주점에서의 대화(Conversación en la Catedral)』(1969)에서 바르가스 요사의 무대는 리마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들을 혼합하면서, 탐정 소설 구조와 순환 구조를 통해 수수께끼를 풀어간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나로 통합하는 이 소설은 1950년대 마누엘 오드리아 독재 정권에서 자행된 사회적·성적·정치적 타락을 보여준다.
『녹색의 집』 초판 표지(출처: 위키미디어)
② 이념적 전환과 사회적 풍자
이 세 작품을 발표한 다음, 쿠바 혁명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바르가스 요사는 쿠바 혁명과 결별했다. 이 계기가 된 사건은 ‘파디야 사건(Caso Padilla)’이었다. 이것은 쿠바 문학계의 대표 시인인 에베르토 파디야(Heberto Padilla)가 그의 시집 『반칙(Fuera de juego)』(1968)에 반혁명적 내용을 담았다는 이유로 1971년 감옥에서 고문을 받은 후 공개적으로 자아비판을 하면서 쿠바 혁명 정부에 대한 비판을 취소하게 된 사건이었다. 이후 쿠바 혁명 정부에 동조했던 많은 라틴아메리카와 유럽의 지식인들이 반발하며 쿠바 혁명과 멀어졌는데, 이 지식인들을 대표해서 쿠바 정부에 설명을 요구한 사람이 바르가스 요사였다.
이후 그는 좌파에서 우파로 선회했다.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Pantaleón y las visitadoras)』(1973)는 이 전환기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외딴 아마존 밀림에서 페루 군대가 직면한 독특한 문제를 다룬다. 병사들이 성욕에 굶주린 나머지 인근 마을의 여자들을 겁탈하자, 지역 주민들은 병사들의 불법 행위를 고발한다. 그러자 군부는 병사들의 성욕을 달래도록 비밀 매춘 사업을 조직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그 지시는 충실히 이행된다. 그러나 결국 여러 문제가 생기면서 그 조직은 군 내외에서 심한 비판을 받고 해체된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바르가스 요사는 진지하고 직설적인 사실주의를 버리고 패러디와 풍자, 그리고 유머로 눈을 돌렸다. 그는 이런 것들이 인간 경험에서 매우 중요하며,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서술 방법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1981년에 출간된 『세상 종말 전쟁(La guerra del fin del mundo)』은 바르가스 요사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이 소설은 19세기 말 브라질을 배경으로 몇몇 광신자들의 반정부 반란과 그 광신자들을 진압하려는 정부군과의 싸움을 다룬다. 광신자와 정부군은 철천지원수지만 눈먼 욕망에 사로잡혔다는 공통점이 있다. 바르가스 요사는 이들의 편협한 욕망과 광기를 서슴지 않고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한편, 『마이타의 이야기(Historia de Mayta)』(1984)는 현재의 권력에 저항하는 바보 혹은 영웅들을 구성하기 위해 모순적이고 잘 알려지지 않은 증거들을 이용하면서, 페루의 정치적·경제적 문제를 부각한다. 이 작품은 초기에 실패한 테러리즘 일화부터 반정부 무장 그룹 ‘빛나는 길’이 투쟁에 이르기까지의 순간을 다루면서, 1958년에 혁명을 시도했다가 체포되어 생을 마감한 페루의 트로츠키주의자(Trotskyist) 알레한드로 마이타(Alejandro Mayta)의 모습을 재구성하여 페루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폭력을 탐구한다.
1981년에 바르가스 요사는 페루 페르난도 벨라운데 테리(Fernando Belaúnde Terry) 대통령의 요청으로 우추라카이(Uchuraccay) 살인 조사위원회의 조사위원으로 활동했다. 그 위원회의 임무는 좌익 게릴라 ‘빛나는 길’이 폭동을 일으킨 기간에 우추라카이 마을에서 여덟 명의 기자가 학살된 사건을 조사하고 그 살인범들을 밝혀내는 것이었다. 그가 우추라카이 조사를 마친 후 얼마 안 되어 출판한 『누가 팔로미노 몰레로를 죽였나?(Quién mató a Palomino Molero?)』(1986)는 우추라카이의 비극적 사건과 매우 유사하다.
『누가 팔로미노 몰레로를 죽였나?』 초판 표지(출처: 위키미디어)
해외동향, 남미 문학의 거장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문학 세계, 인쇄편집, 제품카다록, 총회자료
1988년에 출간된 『새엄마 찬양(Elogio de la madrastra)』은 익살스럽고 장난기가 가득한 에로티시즘 소설이다. 바르가스 요사는 이 작품에 벨기에 화가 야코프 요르단스(Jacob Jordaens)의 ‘칸다울레스(Candaules)’, 프랑스 화가 프랑수아 부셰(François Boucher)의 ‘목욕하는 디아나(Diana Getting out of her Bath)’ 같이 유명한 그림들을 삽입해서 현실과 해석의 차원을 복잡하게 만들고, 에로티시즘을 통해 문학성을 구현했다.
③ 권력의 전 지구적 해부와 문학적 업적
2000년대에 들어서 바르가스 요사는 유달리 독재 체제에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스페인의 유력 일간지 <엘 파이스(El País)>는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초기 작품이 아니라, 2000년에 발표한 『염소의 축제(La Fiesta del Chivo)』라는 도미니카공화국의 독재에 관한 소설 때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소설은 1930년부터 1961년에 살해될 때까지 도미니카공화국을 통치했던 라파엘 트루히요(Rafael Trujillo)의 독재에 바탕을 두고 전개된다. 이 작품은 도미니카공화국을 넘어 라틴아메리카 내외부에서 아직도 존재하는 독재와의 투쟁에 대한 조언이다.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문학상 시상 이유처럼, 이 작품은 단지 한나라가 아닌 전 세계의 권력 구조에 대한 지형도이며, 저항과 봉기, 그리고 개인의 패배를 예리하게 간파하여 지적하는 작품이다.
『염소의 축제』, 『천국은 다른 곳에』 스페인어판 표지
해외동향, 남미 문학의 거장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문학 세계, 인쇄편집, 제품카다록, 총회자료
2003년에 발표한 『천국은 다른 곳에(El paraíso en la otra esquina)』는 원시 세계를 찾아 타히티로 떠난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과 그의 할머니이자 초기 사회주의자이며 페미니즘의 창시자 중 한 명인 플로라 트리스탄(Flora Tristan)의 이야기이다. 실제로 만난 적이 없는 이 두 사람은 천국을 찾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으나, 바르가스 요사는 천국은 불가능한 꿈이지만 꿈이 있기에 인간의 삶은 가치 있다고 역설했다. 한편, 『켈트의 꿈(El sueño del celta)』(2010)은 아일랜드 출신의 인권 운동가 로저 케이스먼트(Roger Casement)의 일생을 다룬 작품이다. 그는 콩고와 페루에서 이루어지던 고무 채취라는 참담한 현실을 서구 사회에 고발했으며,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가 체
포되어 교수형을 당했던 사람이다.
201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후에도 바르가스 요사는 네 편의 소설을 더 발표했다. 2013년에 출간한 『현명한 영웅(El héroe discreto)』은 용기와 충성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소설이며, 2016년에 발표한 『다섯 모퉁이(Cinco Esquinas)』는 게릴라 ‘빛나는 길’의 테러리즘, 황색 언론, 알베르토 후지모리 (Alberto Fujimori) 대통령 정권의 부패한 정치권력을 다루면서, 폭력으로 위협받는 1990년대 중반의 페루 사회를 그린 소설이다. 2019년 작품 『힘든 시절(Tiempos recios)』은 1950년대 중반 과테말라가 겪은 격동의 역사를 서술하고, 그의 마지막 소설 『당신에게 내 침묵을(Le dedico mi silencio)』 (2023)은 페루 해안 지방의 전통 음악으로 하나가 된 나라를 꿈꾸었던 한 청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현명한 영웅』, 『다섯 모퉁이』, 『힘든 시절』, 『당신에게 내 침묵을』 스페인어판 표지
바르가스 요사는 1985년에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Ordre National de la Légiond’honneur)을 수훈했고, 1994년에는 스페인어권에서 권위 있는 미겔 데 세르반테스 상(Premio Miguel de Cervantes)과 옥스퍼드, 예일, 하버드 등 세계 유명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사실적인 표현 방식, 사건의 빠른 전개, 퍼즐을 맞추는 듯한 치밀한 구성, 날카로운 유머와 비판적 상상력, 그리고 감동적인 휴머니즘을 통해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2010년 스웨덴 한림원은 권력 구조를 세밀하게 그려내고 개인의 저항과 투쟁, 패배를 정확하게 묘사한 점을 높이 평가해 노벨문학상을 수여했다.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가
바르가스 요사의 문학적·정치적 입장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소설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던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 그는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와 쿠바 혁명을 옹호했다. 『도시와 개들』, 『녹색의 집』, 『까떼드랄 주점에서의 대화』가 이 단계에 해당한다. 그러나 1970년대 초 쿠바 혁명에 회의를 느끼면서 그의 입장은 완전히 선회하였고,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사상과 자유 시장 경제를 지지하였다.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와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La tía Julia y el escribidor)』(1977) 같은 작품은 전환기에 해당하며, 『세상 종말 전쟁』 이후의 작품들은 신자유주의 단계를 잘 보여준다.
이렇게 시대에 따라 변화한 바르가스 요사의 작품은 현재 독자에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초기 작품과 후기 작품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그의 작품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폐쇄적 사회의 부패와 위선, 인종과 사회 계층 간의 계급과 권력, 그리고 일반화된 폭력과 사실 조작 혹은 은폐는 야만적인 페루의 영원한 역사라는 점이다. 아니, 페루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또는 전 세계의 메타포(Metaphor)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소설이 페루나 라틴아메리카에 한정된 작품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 세계와 그의 정치적 관점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는 문학에 대한 열정을 자기의 정치적 신념과 일치시키려고 노력한 작가이다. 이것이 그가 훌륭한 문학 작품이란 정치적 의미를 띠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는 문학이 절대적 자유의 산물이 될 때 비로소 훌륭한 작품이 탄생한다고 믿었다. 그의 작품에서 정치는 그대로 재생되지 않고 재창조된다. 그의 작품은 현실을 모방하지 않고 수정함으로써 새로운 현실을 만들면서 문학성을 획득한다. 이렇게 바르가스 요사는 문학과 정치의 관계를 재정립하면서, 미래를 향한 창조적 가치를 구현한 작가이다.
해외동향, 남미 문학의 거장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문학 세계, 인쇄편집, 제품카다록, 총회자료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