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추천사, 독자의 마음을 여는 한마디], 책 추천사의 힘: 북인플루언서 책여사가 전하는 독서와 신뢰의 연결고리
[추천사, 독자의 마음을 여는 한마디]
북인플루언서가 책을 건네는 마음
이지혜(북인플루언서 ‘책여사’)
2025. 9+10.
북인플루언서가 된 계기
나는 2021년부터 ‘책여사’라는 이름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책을 전혀 읽지 않았던 내가 ‘북인플루언서’로 불리게 되다니 여전히 낯설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15만이라는 숫자 앞에 종종 어리둥절해지곤 한다. 사실 나는 북인플루언서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진 적도, 특별한 계기를 마련한 적도 없었다. 시작은 단순했다. 책을 읽고 기록할 개인 아카이빙(Archiving)으로 인스타그램을 선택했을 뿐이었다. 과거에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괴롭던 시절이 있었다. 가족들에게조차 떳떳하지 못한 나에게 책 읽기는 모든 불만족으로부터의 도피처였다. ‘책 읽는 나’의 모습만큼은 진짜 나였으면 하는 마음, 꽤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바람을 인스타그램에 남기기 시작했다. 현실에서 얻기 힘든 만족을 ‘책 읽는 나’에게서 얻은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책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없던 내게 온라인 소통은 손끝으로 닿을 수 있는 안식처였다. 마침 사회적으로도 ‘#북스타그램’이라는 해시태그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던 시기였다. SNS는 단순한 일상 기록을 넘어 취향을 공유하고 또래 집단을 형성하는 플랫폼으로 확장되었다. 나 역시 개인적인 기록을 남긴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나의 콘텐츠가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독서의 길잡이가 된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다. ‘책을 읽는 나’라는 개인의 취향이 서로의 삶을 움직이는 연결고리가된 것이다.
그 가운데 특별한 전환점이 된 콘텐츠가 있다. 칠레 작가 벵하민 라바투트(Benjamín Labatut)의 『매니악(The Maniac)』(문학동네, 2024)을 소개한 영상이다. 그의 전작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When We Cease to Understand the World)』(문학동네, 2022)는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의 추천사 덕분에 읽게 된 책이었다. 김 교수가 이 책에 대해 “나의 물리 영웅들이 바로 눈앞에서 이야기하는 착각에 빠졌다.”라고 쓴 추천사는 낯선 작가를 향한 신뢰의 다리가 되어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매혹적으로 소개한 책이라면 읽어보고 싶어지는 마음이었다. 결국 그 신뢰가 나와 라바투트라는 작가를 연결해 준 것이다.
『매니악』,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나는 출근길에 읽던 『매니악』의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휴대전화 메모장에 감상을 쏟아냈다. 책을 읽고 들뜬 기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퇴근 후 짧은 리뷰 영상을 찍어 늦은 밤 인스타그램 계정에 업로드했다. 다음 날 아침, 이 게시물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나는 이때 도서 리뷰란 ‘아, 생생한 내감정을 쉬운 언어로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도서 리뷰나 추천 콘텐츠의 중심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진심으로 즐겁게 읽은 책을 나의 언어로 전하는 것, 그것이 북인플루언서 활동의 뿌리가 되었다.
‘책여사’ 인스타그램 계정(@bookyeosa)과 『매니악』 추천 영상
추천 도서의 선정 기준
나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언제나 내 취향으로 꾸려져 왔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다양한 출판사로부터 협업·광고 제안을 받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읽지 않은 책은 추천할 수 없다. 그래서 한정된 시간에 무슨 책을 읽고, 어떤 감상을 팔로워와 나눌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더욱 중요해졌다. 내가 추천 도서를 선정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순수하게 ‘독자’로서 읽고 싶은 책이다. 이때 추천사가 ‘읽고 싶은 책’을 만들기도 한다. 평소 좋아하던 작가나 장르가 있다면 비교적 쉽게 원하는 책을 선택할 수 있겠지만, 낯선 저자의 경우 믿을 만한 추천인의 추천사를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김상욱 교수의 추천사를 따라 라바투트를 만난 경험처럼 말이다.
둘째, 출판사로부터 제안받는 도서를 검토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꽤 까다롭다. 우선 책이 나의 취향에 맞아야 하고 책을 읽고 게시물을 제작 및 업로드하는 일정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실제로 읽었을 때 독자와 나눌 만한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서야 한다. 그래서 먼저 해당 도서의 보도자료와 온라인 서점의 상세 페이지를 검토하고, 첫 번째 기준에 부합하여 관심이 생기면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의 본문 PDF나 실물 도서를 받는다.
도서 광고 제안을 받을 때마다 가장 크게 고민하는 것은 ‘독자에게 솔직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다. 단순히 출판사에서 요청한 책을 모두 소개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신뢰를 잃는 순간, 계정의 의미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안받은 도서 중에는 끝내 소개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단기적인 보상보다 장기적인 신뢰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를 ‘광고 창구’가 아니라 ‘취향의 안내자’로 믿고 찾아온다. 그 믿음을 배반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책 추천 활동의 본질이다.
오랫동안 책을 추천하다 보니 ‘여름에 어울리는 소설’, ‘가을 강추 에세이’, ‘광복 80돌 전 국민 필독서’처럼 계절·시의성·테마별 도서 추천도 자연스레 해왔다. 팔로워들의 피드백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주제의 책도 알고 싶다.”, “최근 힘든데 위로가 되는 책이 필요하다.”라는 요청은 추천의 방향을 넓히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가장 중요한 기준은 같다. 내가 직접 읽고 감동한 책일 것, 내 취향에 맞는 책일 것! 내 계정은 철저히 ‘개인적 취향의 공유’라는 원칙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이 말했듯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조적인 것”이라 믿는다. 내 취향을 정직하게 가꾸고 나누는 일이 결국 독자들에게 가장 진정성 있게 다가갈 것이다.
테마별 도서 추천 게시물
독자들의 반응, 그리고 추천인으로서의 마음가짐
책을 추천한 후 가장 반가운 반응은 ‘공감’이다. 개인적인 취향이 하나의 책에서 만나는 순간은 물론 그 순간을 나누는 댓글이나 DM(Direct Message)은 거친 온라인 댓글 문화 속에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다. “저도 좋아하는 책이에요.”, “책여사 님 덕분에 다시 책을 읽게 되었어요.”라는 메시지를 받을때면, 오히려 내가 더 큰 선물을 받는 듯하다. 특히 육아, 직장, 학업 등으로 책을 멀리했던 사람들이 나의 추천으로 다시 찾은 독서의 기쁨을 전할 때면 지난 나의 경험이 떠오르며 큰 울림을 받는다. 어떤 이는 나의 책 리뷰 콘텐츠를 보고 그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 회원증을 다시 만들었고, 또 다른 이는 부모님께 책을 선물했다고 했다. 책 한 권이 개인의 습관과 관계의 방식을 바꾸는 것을 확인할 때마다 도서 추천이 결코 가벼운 행위가 아님을 절실히 느낀다.
독서는 개인의 취향이 비교적 확고한 만큼 자신과 비슷한 취향의 사람을 만나면 더 큰 시너지가 난다. 간혹 팔로워들이 나의 도서 추천 콘텐츠를 보고 그와 결이 비슷하거나 자신의 취향을 드러낸 다른 책을 추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럴 때 나 또한 한 사람의 독자로서 새로운 책과 작가를 만나는 선순환을 이루게 된다. 이렇게 서로 책을 추천하는 문화가 계속 만들어진다면 추천인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
나는 20대 후반, 교통사고 후 회복기에 우연히 봤던 한 장면을 기억한다. 책을 읽는 타인의 ‘눈빛’이다. 단순한 종이 꾸러미였던 책을 펼쳐 글자를 따라 이야기에 빠져들던 그 사람의 눈빛이 나를 독서로 인도했다. 그렇게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고, 이후 하루 10분, 한 달 한 권으로 조금씩 책과 가까워지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그 눈빛으로 책을 읽고 전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름 모를 누군가의 눈빛에 독서를 시작한 것처럼 나의 눈빛도 누군가에게 전달되어 책을 읽게 하고, 그 책이 그에게 든든한 기댈 곳이 되기를 바란다. 책에 기대어 인생의 가장 힘든 시간을 건너왔기에, 책을 권하는 내 마음은 언제나 간절하고 진심이라고 전하고 싶다.
추천사의 영향을 받는 이유
독자들이 책 추천사에 강하게 끌리는 이유는 몇 가지 심리적 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신뢰의 전이(轉移)다. 좋아하는 배우나 존경하는 학자, 혹은 친근하게 느끼는 인플루언서가 특정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면, 그 신뢰가 책으로 고스란히 옮겨간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다고 하니 틀림없을 것’이라는 믿음은 자연스럽다. 둘째, 동일시와 대리 경험이다. 인간은 자신이 호감을 느낀 대상과 닮고 싶은 욕망을 갖는다. 따라서 추천인이 어떤 책에 대한 감동이나 흥분을 글 한 줄로 표현하면, 독자 역시 그 감정을 함께 체험하고 싶어 책을 손에 드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살펴볼 때 추천사는 추천인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사회적 증거의 효과다. 추천사가 SNS나 언론을 통해 화제가 될 때, 독자들은 ‘나도 그 흐름에 합류해야겠다.’라는 무언의 동조 심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문화적으로 널리 퍼지며 어느새 ‘읽어야 할 책’의 기준이 될 때, 그것은 단순한 추천 이상의 힘을 갖는다. 이러한 현상은 책 추천사가 콘텐츠 자체를 넘어 하나의 문화적 신호로 작용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마지막으로 결정 피로의 해소다. 넘쳐나는 책 속에서 무엇을 읽을지 결정하는 일은 독자에게 피로감을 준다. 이때 신뢰하는 추천인의 한마디는 수많은 선택지를 좁혀주며 ‘이 책이면 된다.’라는 안도감을 제공한다. 실제로 내 계정에 달리는 댓글 중에는 “책여사 님 추천이라 믿고 샀어요.”라는 반응이 많은데, 이것이 바로 이런 심리적 요인의 증거이다. 이처럼 추천사는 신뢰·동일시·사회적 증거·결정 피로 해소라는 다양한 심리적 요인이 얽히며 독자의 선택을 움직인다. 북인플루언서의 역할 역시 이 지점에 놓여 있다. 단순히 책을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기댈 수 있는 신뢰의 연결고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던 내가 어느덧 책을 권하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에는 나를 위한 현실 도피였던 독서가 이제는 타인을 위로하고 타인과 공감하는 일이 되었다. 추천사 한 줄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새로운 책과의 만남을 가능하게 하듯, 내가 전하는 작은 기록이 누군가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 앞으로 도서 추천의 방식은 텍스트, 영상, 라이브 등 지금까지 이어온 다채로운 형식을 넘어 언젠가 또 다른 플랫폼과 방식으로 확장될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그 본질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독자의 시간을 아껴주고, 삶에 작은 울림을 선물하는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책장을 넘기며 ‘이 책을 누구에게 어떻게 건넬까.’를 고민한다.
결국 책 추천사는 책을 읽는 사람이 전하는 마음의 언어다. 책을 읽고 감동한 순간을 진심으로 담는다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다. 나 역시 책을 권하는 자리마다 늘 다짐한다. 내가 건네는이 한마디가 누군가의 삶을 더 깊고 풍요롭게 만들 수 있기를. 앞으로도 나의 도서 추천의 출발점은 언제나 같을 것이다. 나의 눈빛, 나의 언어, 나의 취향에서 비롯된 진정성. 그것이 독자와 나를 이어주는 다리이자, 추천사가 가지는 가장 큰 힘이다.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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