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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독서 시장의 현재와 미래]
노인도 읽고 싶습니다
손효순(어른그림책연구모임 부대표, 독서활동가, 작가)
2025. 7+8.
이제 100세 시대다. 2025년 5월 기준 통계청의 ‘고령인구비율’을 보면, 대한민국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는 초고령 사회가 되었다. 이렇게 큰 비중을 차지한 노년층은 점차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신체적 노화나 정신적 피로 등의 이유로 사회적 활동과 인간관계로부터 멀어지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심리적인 불안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불안을 일으킬 수 있다. 이 모든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없겠지만 그들을 위로하고 사회적인 소통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으로 독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이야말로 고령화 시대에 발맞춰 시니어 독자들을 위한 출판 및 독서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2025년 5월 기준 전국 ‘고령인구비율’
노년의 독서, 삶을 풍성하게 하다
노년의 독서는 삶을 풍성하게 하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필자가 여러 지역에서 시니어의 독서 증진 활동을 하며 겪었던 긍정적인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문해 교육 수강생 중 나이가 들어 한글을 배운 어르신들이 있었다. 문해 약자로서 책 읽기를 두려워했던 그들은 그림책 『엄마 마중』(이태준(글), 김동성(그림), 보림, 2013)을 읽고는 코끝이 찡해져 오는 것을 느끼며, 집에 돌아가 가족들과 어렸을적 삶에 대해 한참 동안 이야기 나눴다고 전했다. 글자를 몰라 책을 두려워하던 예전과 달리 이제 그들은 그림책을 언제든 자신 있게 펼쳐보게 되었다.
근처 도서관 내 시니어 독서 모임에 발을 들여놓고 독서에 흠뻑 빠진 중년 은퇴자도 있었다. 그는 은퇴 후 그동안 바빠서 미뤄 두었던 것들을 닥치는 대로 했다고 한다. 운동을 하거나 카페에서 한가로이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못 갔던 여행도 실컷 다녔는데, 독서에 빠져든 순간보다 만족감은 부족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 우연히 읽게 된 책 한 권에 자신도 모르게 흘렸던 눈물이 큰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독서동아리 활동에 매진하면서 책과 동아리 벗들이 주는 기쁨에 흠뻑 빠져 은퇴 후 삶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했다.
20여 년을 함께했던 1964년생과 1965년생의 친목 모임이 ‘그림책 함께 읽는 모임’으로 변한 사례도 있었다. 그들은 이제부터는 만날 때 “책을 읽어보자.”라는 누군가의 제안으로 그림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처음 책 모임에 참여했던 그들은 “처음엔 어색할 거 같았는데, 화젯거리도 풍부해지고, 시들하던 감정과 생각이 죄다 되살아나는 것 같아 너무 좋다. 모임 날이 이렇게 기다려질 줄 몰랐다! ”라는 고백을 전했다.
노년의 독서는 바로 이러한 치유와 화합의 힘을 지니고 있다. 대화가 없던 가족의 말문을 트이게 하고, 노년기의 새로운 만남과 소통을 통해 행복감을 느끼게 하며, 젊은 시절을 보상받는 듯한 위로는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그동안 바쁘게 달려오느라 책 읽을 시간이 부족했던 많은 이들이 노년에 찾아온 여유 속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려는 시도는 소설, 자서전, 수필, 인문서등 다양한 장르의 책을 통해 실현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자신의 경험과 유사한 이야기에 공감하며 위로와 통찰을 얻기도 한다.
시니어를 위한 독서, 그림책으로 시작하다
노년에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조사한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 ‘연령 및 학교급별 종합 독서율’ 대한 발표를 보면 “성인의 연령별로는 고연령대일수록 독서율이 낮게 나타났고”, “성인의 각 연령대별 종합 독서율은 5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서 2021년 대비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고, 특히 60대 이상의 경우 큰 폭으로 하락”했다고 밝혔다. 독서율이 고령 일수록 낮아지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신체적 노화, 경제적 이유, 독서 습관의 부재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연령 및 학교급별 종합 독서율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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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신체적인 노화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도 노년층의 독서 장애 요인으로 ‘시력이 나빠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아서’라고 응답했듯이, 노화로 인한 시력 저하가 독서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또 신체적으로 오래 앉아서 책 읽기가 어렵다는 점도 책을 점점 멀리하게 되는 이유다. 그러므로 독서의 가치와 필요성만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노년의 신체와 여건 등을 고려한 실질적인 대책이 있어야 한다. 또한, 노년의 삶에 공감되는 책들이 많지 않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노년층이 현실적으로 관심을 가질만한 은퇴 이후의 삶이나 건강관리, 노년의 사랑 등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다양한 주제의 책이 많아져야 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시니어 그림책’이라는 특별한 분야가 주목받고 있다. 한 사례로 ‘어른그림책연구모임’을 이끄는 백화현 대표가 만든 국내 최초 시니어 그림책 브랜드 ‘백화만발’이 있다. 백화현 대표는 『어른 그림책 여행: 내 마음을 둘러보고 싶을 때』(백화만발, 2022)에서 시니어 그림책에 대해 “시니어를 내포 독자로 한, 시니어의 삶과 문제를 다룬 그림책”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시니어 그림책의 유형을 첫째, 어린이 시각에서 시니어의 삶과 이슈를 그린 그림책, 둘째, 어른의 시각에서 시니어의 삶과 이슈를 그린 그림책, 셋째, 시니어들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쓰고 그린 그림책으로 분류했다.
남편을 잃고 혼자가 된 지인의 사례를 통해 독거노인 문제를 다룬 『할머니의 정원』(백화현(글), 김주희(그림), 백화만발, 2022)과 백화현 대표의 취미 활동인 도자기를 통해 세대 간 이해를 녹여낸 『엄마와 도자기』(백화현(글), 백한지(그림), 2022)도 실제 경험으로 탄생한 시니어 그림책이다. 그는 책의 길이를 조절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에 전문 그림작가의 아름다운 그림을 더해 시니어들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매력적인 그림책을 만들었고, 큰글자도서도 함께 출판했다. “시니어 독서가 범국민 독서 운동이 되어 시니어들이 그림책으로 독서를 즐기고, 서로 소통하고 위로하며 노년이 더욱 따스하고 풍요로워졌으면 한다.”는 백화현 대표의 목표는 독서에 목마른 시니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준다.
『할머니의 정원』 표지와 내지
『엄마와 도자기』 표지와 내지
시니어들은 이 책이 세월에 묻어두었던 본인들의 이야기 같다며, 누군가 이렇게 깊은 공감을 해 준다는 이유만으로도 자신의 삶을 위로받는 것 같다고 말한다. 『할머니의 정원』의 다소 괴팍한 경자 할머니가 흡사 본인 같다고 한 80대의 남성 독자는 “노년에 배우자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은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위로받았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엄마와 도자기』를 읽은 어르신은 이제부터라도 노년을 삶을 정리하는 시간이 아니라 딸과 함께 나누는 시간으로 보내겠다고 말했다.
한때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시들해졌던 컬러링북(Coloring Book)도 근래 노년층으로부터 다시 재조명 받고 있다. 단순해 보이는 색칠 활동이 노년의 뇌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색을 고르고 경계를 인식하며 손을 사용해 채색하는 과정은 명상 효과를 유도하여 마음을 진정시키고 불안이나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그뿐만 아니라 주의력, 기억력, 문제 해결 능력을 자극하는 효과도 있다. 완성된 그림은 작은 성취감을 유발하고, 그로 인해 자존감을 회복할 수도 있다. 특히 컬러링북은 그룹 활동의 수단으로 활용하면 대화의 소재가 풍부해지며 사회성과 안정감을 높여주기도 한다.
『비밀의 정원』(조해너 베스포드, 클, 2014), 『시니어 힐링 컬러링북』(김현경, 베이직북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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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독서 활성화를 위한 제언
노년에 겪는 외로움과 허전함 속에서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이 신체적인 노화를 극복해서라도 더 배우고 싶은 욕망이 솟을 때 주저하지 않고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비독서자들의 독서 장애 요인 중 ‘책 읽는 습관이 들지 않아서’, ‘책 읽기가 재미없어서’, ‘독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와 같은 이유를 극복할 방법은 무엇일까? 신체적인 이유가 아닌 새로운 콘텐츠와 접근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들도 다각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먼저, 점점 넓어지는 노년층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1차 베이비 붐 세대(1955~1963년도 출생)가 2015년부터 은퇴를 시작했고, 2차 베이비 붐 세대(1964~1974년도 출생)도 2030년까지 은퇴를 앞두고 있다. 이들과 이전 세대를 합쳐 ‘노년층’이란 하나의 세대로 통칭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연령별로 독서에 대한 접근성과 이해도에 따라 독서 유형과 콘텐츠도 달라지기 때문에 현재 시니어 독자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신체적으로 약자가 된 독자들을 위해 기존 독서에 대한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의하면 독서라고 생각하는 활동은 ‘종이책 읽기’(99.2%), ‘전자책 읽기’(80.6%), ‘웹소설 읽기’(67.7%), ‘오디오북 듣기’(45.9%) 순으로, 여전히 종이책이 독서 활동 유형의 중심이지만 점차 전자책, 오디오북과 같이 디지털 독서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반영하여 노년층에게도 독서에 접근하기 쉬운 큰글자도서나 귀로 들을 수 있는 오디오북과 같은 맞춤형 도서들이 많아져야 할 것이다.
또한, 참여자들이 사회적 독서 커뮤니티에 접근하기 쉬워야 한다. 집 근처 도서관이나 복지관, 서점 등에서 ‘시니어 북스타트’, ‘시니어 북클럽’, ‘노년 인문학’ 등 맞춤형 프로그램들에 참여하여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삶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지역 기반 시설이 그 중심 역할을 하도록 지원하고, 책을 매개로 다양한 소통의 장을 마련하여 시니어들이 겪는 외로움을 해소하는 연결망, 즉 독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시니어들이 새롭게 등장하는 미디어형 도서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사회적인 친절도 요구된다. 노년층에게는 초 단위로 변하는 현대사회가 버겁다. 특히 낯선 기기의 접촉과 운영자를 위한 정형화된 매뉴얼 등은 매우 어렵고 거북할 수 있다. 이럴 때 그들이 사회에서 뒤처졌다는 생각에 주눅 들지 않고 천천히 다가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여러 번 연습하여 익숙해질 수 있도록 접근성이 개선되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노년이 온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시니어만을 위한 전용 도서관이 필요하다. 어린이 도서관이나 그림책 도서관처럼 특화된 도서관이 있듯이, 노년층을 위한 전용 공간이 절실하다. 수도권 지하철 3호선 대화역 인근의 ‘가원시니어도서관’이 좋은 예시다. 이곳은 어르신들이 공부하고, 사람을 만나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다른 도서관과 달리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다. 이러한 공간은 시니어들이 독서뿐만 아니라 독서 모임등 다양한 활동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며, 노년의 독서율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가원시니어도서관 내부(출처: 가원시니어도서관 블로그)
노인도 읽고 싶습니다
햇살 좋은 어느 날, 도서관 창가에 앉아 책장을 넘기는 노년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책장을 넘기며 마음에 드는 문장을 따라 쓰기도 하고, 떠오르는 옛 추억에 젖으면 노년에 찾아온 소중한 친구와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책을 읽다가 가끔 고개를 들고 생각에 젖는 모습이나 조용히 미소를 짓는 모습에서 독서가 얼마나 따뜻한 호흡으로 삶을 감싸안아 주는지 느낄 수 있다. 노년기에 책을 가까이한다면 삶의 마지막 계절을 더욱 다채롭고 깊이 있게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니어에게 독서가 주는 선물이다.
“노인도 읽고 싶습니다.”라는 말은 당연한 바람이다. 이 바람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시니어 독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 줄 따뜻하고 포용적인 독서 환경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이 순간에도 많은 이들이 책을 읽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책 한 권이 지난 삶을 위로하며, 다가올 시간을 살아갈 힘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시니어 독서 시장은 바로 그 믿음을 현실로 만드는 소중한 여정의 시작이며, 출판시장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우리 사회의 포용성을 강화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시니어 독서를 위한 노력은 앞으로 노년을 맞이하게 될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