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불황을 이기는 기획]비인기 기획에서 답을 찾은 출판사들, 개인출판, 소규모출판, 책발간

커버스토리, [불황을 이기는 기획]비인기 기획에서 답을 찾은 출판사들, 개인출판, 소규모출판, 책발간

 

 

 

[불황을 이기는 기획]
비인기 기획에서 답을 찾은 출판사들
이호재(<동아일보> 기자)
2025. 3+4.

 

 

어렵지만 확실한 팬덤을 찾아

“아무리 희곡이 인기가 없다고 해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는 다릅니다. 확실한 수요층이 있는 작가입니다.” 민음사에서 『셰익스피어 전집』(전 10권)을 담당하는 박여영 부장은 최근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희곡을 읽는 이가 줄어드는 시대에도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처럼 ‘팬덤’이 있는 작가에 대한 ‘틈새 시장’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민음사는 『셰익스피어 전집』을 여러 차례 나눠 출간했다. 2014년에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햄릿(Hamlet)」, 「오셀로(Othello)」, 「리어왕(King Lear)」, 「맥베스(Macbeth)」)과 4대 희극(「한여름 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 「베니스의 상인 (The Merchant of Venice)」, 「좋으실 대로(As You Like It)」, 「십이야(Twelfth Night)」)을 포함한 4권을, 2016년에는 「소네트(Sonnets)」 등을 담은 1권을 출간했다. 그리고 2024년 희극 「말괄량이 길들이기(The Taming of the Shrew)」를 비롯한 문제적 비극, 로맨스, 사극 작품 등을 수록한 5권을 추가로 펴냈다. 기획부터 번역과 출간까지 30여 년의 대장정이 걸린 작품이다.

 

민음사의 『셰익스피어 전집』

 

물론 이 전집을 읽는 일은 쉽지 않다. 운문이 전체 대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운문과 산문의 비율을 보면, 「햄릿」은 75:25, 「오셀로」는 80:20, 「맥베스」는 95:5에 달한다. 더군다나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에서 리어왕의 대사는 운문과 산문이 뒤섞여 있다. 『셰익스피어 전집』을 번역한 최종철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는 해당 전집에 대해 “1993년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운문 번역”이라며 “우리나라 시의 운율을 적용해 셰익스피어가 전달하는 감정과 사상을 한글로 리듬감 있게 살려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집은 쉽지 않은 작품이지만 꾸준히 찾는 독자들이 있다. 힘들어도 읽어내고 싶은 책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서점에는 “고전의 위력이 오롯이 전해진다.”, “전집을 모두 주문했다.”라는 독자들의 반응이 있다. 박여영 부장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위주로 초판 이상을 찍는 ‘증쇄’가 이뤄지고 있다.”며 “『셰익스피어 전집』은 판매량뿐만 아니라 민음사라는 출판사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틈새 공략과 색다른 디자인 활용

출판사들은 ‘비인기 기획’에서 불황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다. 비인기 기획은 대중적 트렌드를 따르기 보단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는 주제나 분야를 깊이 있게 다루는 시리즈다. 주로 고전, 사상, 역사 관련 대형 전집인데, 출판사들이 이런 비인기 기획 도서를 내놓는 것은 심도 있는 독자를 겨냥한 ‘틈새 시장’ 공략의 일환이다. 작게라도 시장의 빈틈을 공략하는 책을 시장에 내놓음으로써 애독자를 잡으려는 것이다. 한 대형 출판사 편집자는 “주로 일반 독자보다는 학계 연구자나 지식인을 겨냥한 시리즈가 많다.”며 “주류 시장 중심의 인기 기획 도서와 달리, 비인기 기획 도서는 상대적으로 경쟁자가 적어 독자층을 집중적으로 공략할 수 있다. 틈새 주제에 관심을 지닌 독자들은 해당 분야에 대해 깊은 애정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한번 형성된 독자층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판매의 기반이 된다.”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출판사 창비가 2024년 6월부터 내놓고 있는 『한국사상선』이 있다. 이 시리즈는 2026년 창비 60주년을 앞두고 총 30권 분량으로 기획됐다. 3년에 걸쳐 매년 10권씩 출간될 예정이다. 다루는 인물은 정도전(1권)부터 김대중(30권)까지 조선 시대와 20세기에 걸쳐 활동한 사상적 거장 총 59인으로, 다양한 인물과 함께 전집을 원하는 수요층을 만족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사상선』의 간행위원장을 맡은 백낙청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기자간담회에서 해당 시리즈에 대해 “한국 사상에 중요한 변화를 불러왔고, 세계적으로도 주목할 만한 영향을 미쳤던 이들을 선정해 조명했다.”라고 전했다. 한 출판사 대표는 “한국 사상을 이끌어 온 상징적인 출판사인 창비가 『한국사상선』을 내놨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며 “일반 독자뿐만 아니라 학계 연구자처럼 전문 독자에게도 판매할 수 있는 시리즈”라고 평했다.

 

창비의 『한국사상선』

 

비인기 기획 도서에서 ‘색다른 디자인’도 독자를 새롭게 매료시키는 전략 중 하나다. 2024년에 출판사까치가 출간한 『오늘을 비추는 사색』(전 6권)은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에리히 프롬(Erich Seligmann Fromm),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마르크스(Karl Marx), 푸코(Michel Foucault), 루소(Jean Jacques Rousseau) 등의 철학 사상을 쉽게 설명해 준다. 이 시리즈는 까치의 기존 책들과 달리 감각적인 표지 디자인으로 시선을 끌었다.

 

까치의 『오늘을 비추는 사색』

 

앞서 언급했던 『셰익스피어 전집』도 무채색을 주로 사용한 디자인으로 간결하게 시리즈의 통일감을 살렸다. 전 7권 분량으로 한국 근현대 여성문학의 역사를 정리한 『한국 여성문학 선집』(민음사, 2024)은 여성을 형상화한 조각상을 담은 흑백 표지 디자인으로 차별점을 뒀다. 한 중소 출판사 디자인팀 관계자는 “비인기 기획 도서의 디자인은 단순한 미적 요소를 넘어서 책의 지적 권위를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소비자에게 ‘프리미엄’ 경험을 제공하려는 시도가 책의 판매에 영향을 미치곤 한다.”라며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문성’, ‘신뢰’로 브랜드 이미지 구축

비인기 기획 도서는 판매량 자체가 높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기획물에 쏟아 부은 대규모 투자가 오히려 발목을 잡기도 한다. 한 1인 출판사 대표는 “전집과 같은 기획물은 많은 투자가 필요하고, 그만큼 수익이 날지 알 수 없다.”며 “대형 출판사나 역사가 긴 출판사가 아니라면 이런 큰 기획은 도전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비인기 기획 도서의 출간이 계속되는 이유는 ‘지속 가능성’ 때문이다. 고전, 사상, 역사와 같은 분야는 일시적인 유행에 좌우되지 않고 지속적인 애독자가 존재한다. 이 때문에 철학자 74명이 공동 집필한 『철학과 현실, 현실과 철학』(전 4권) 시리즈를 작년에 내놓은 21세기북스처럼 꾸준히 비인기 기획 도서에 투자하는 출판사도 적지만 분명히 있다.

 

21세기북스의 『철학과 현실, 현실과 철학』

비인기 기획에서 답을 찾은 출판사들, 개인출판, 소규모출판, 책발간

 

비인기 기획 도서가 ‘혁신의 기회’라는 평가도 있다. 대다수가 간과하는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룸으로써 새로운 트렌드를 선도할 가능성이 있다. 또 인기 주제에 묶이지 않아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시도를 할 수도 있다. 그 덕에 상업적 성공이 이뤄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작년 온라인 북펀딩에서 출판사 휴머니스트가 2024년에 완간한 『박시백의 고려사』(전 5권) 시리즈는 목표 금액의 39배가, 민음사의 『한국여성문학 선집』은 10배가 모였다.

‘위험 분산’도 비인기 기획 도서의 장점 중 하나다. 출판계가 불황인 시기에는 트렌드가 급변하거나 포화 상태가 되기 쉽다. 이에 비해 비인기 기획 도서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요를 유지할 수 있다. 시장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할 수 있는 ‘전략적 무기’가 되는 것이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비인기 기획 도서는 힘들어도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하고, 브랜드 신뢰성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 꾸준히 심도있는 기획물을 선보이면 출판사는 ‘전문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 이는 장기적인 시장 경쟁력으로도 이어진다.”고 말했다.

 

 

해외 비인기 기획 도서 살펴보기

“출판은 단군 이래 언제나 불황”이란 농담도 있지만, 올해 출판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시기를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흔히 출판 선진국이라 부르는 해외의 비인기 기획 도서를 살펴보면 한국 출판사들이 주목할 지점이 있지 않을까.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 출판사 펭귄랜덤하우스(Penguin Random House)의 『위대한 생각(Great Ideas)』(전 33권) 시리즈다. 이 시리즈는 철학, 정치, 과학과 같은 분야의 에세이와 논문을 소책자로 출간하는 기획으로, 심도 있는 주제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한 대형 출판사 관계자는 “고전을 단순한 읽을거리에서 벗어나 ‘소장 가치’가 있는 제품으로 보여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국내에서 『셰익스피어 전집』, 『한국사상선』처럼 프리미엄 전략을 강화하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도 이런 전략의 연장선”이라고 평했다.

해외에선 특히 애독자가 많은 ‘문학’에서 비인기 기획을 자주 시도한다. 프랑스 출판사 갈리마르(Éditions Gallimard)의 『라 플레야드(La Pléiade)』(전 925권)는 고전 문학을 프리미엄 브랜드로 만들어 소장 가치를 강조했다. 영국 출판사 맥밀란(Macmillan Publishers)의 임프린트 피카도르(Picador)의 『모던 클래식(Modern Classics)』(전 12권)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4권씩 3개의 시리즈로 출간되었는데, 시리즈마다 독특한 커버 디자인과 고품질 제본으로 소장 가치를 높인 것도 이런 전략임을 확인할 수 있다.

 

피카도르의 『모던 클래식(Modern Classics)』 시리즈 1~3

 

한편, 출판사는 고전 문학을 기획할 때 현대적 언어로 수정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영국의 아동문학 전문 출판사인 퍼핀(Puffin)은 로알드 달(Roald Dahl)의 작품을 새롭게 기획하면서 작품 속 외모, 성별, 인종 등에 대한 표현을 수정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2004)에서 ‘Fat(뚱뚱하다)’이 ‘Enormous(거대한)’로 변경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논란
이 일자 퍼핀의 모회사 펭귄 그룹(Penguin Group)은 작년에 원본 표현을 그대로 유지한 『로알드 달 클래식 컬렉션(The Roald Dahl Classic Collection)』(전 20권)을 출간할 정도로 고전의 새로운 기획과 수정의 경계는 판단하기 어려운 뜨거운 감자다.

 

『로알드 달 클래식 컬렉션』

 

‘디지털 전략’도 해외에서 떠오르는 이슈다. 예를 들어, 고전 문학 작품을 현대적인 디자인과 해설로 재출간하는 하퍼 페레니얼(Harper Perennial)의 『하퍼 페레니얼 모던 클래식(Harper Perennial Modern Classics)』은 디지털 마케팅 전략으로 젊은 독자층의 관심을 끌어냈다. 먼저 하퍼 페레니얼은 소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페이스북, X,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에 시리즈 관련 콘텐츠를 공유하고 독자와의 소통을 강화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부가적인 가치를 제공하고, 시리즈에 대한흥미를 높이는 것이다.

 

『하퍼 페레니얼 모던 클래식 시리즈』 중 조라 닐 허스턴(Zora Neale Hurston)의 도서 소개(출처: 하퍼 페레니얼 인스타그램)

비인기 기획에서 답을 찾은 출판사들, 개인출판, 소규모출판, 책발간

 

사실 타 국가 출판사들에 비해 한국 출판계의 디지털 마케팅이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트렌드에 맞는 책을 펴낼 때는 적극적으로 디지털 마케팅을 사용해야 한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한국 출판사들의 대형 기획은 착점과 규모 면에서 앞서지만, 비인기 기획 도서의 경우 디지털 마케팅보단 오프라인 마케팅에 대한 투자가 더 큰 것 같다.”며 “비인기 기획 도서도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관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비인기 기획은 ‘인기 기획’이 될 수 있을까

필자는 전자책과 비인기 기획을 결합하는 방안도 고려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전자책 플랫폼이 다양한 독자층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폭넓은 콘텐츠를 확보하려 노력하는 만큼, 출판사가 비인기 기획 도서를 전자책으로 제공했을 때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밀리의서재는 약 14만 권의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데, 대중적인 작품뿐만 아니라 전문적이거나 비교적 덜 알려진 주제의 전자책도 포함돼 있다. 리디셀렉트도 독자들이 평소 접하기 어려운 주제나 분야의 책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예스24의 크레마클럽도 비인기 분야의 도서를 독자들에게 제공한다는 취지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전자책 플랫폼을 조사했을 때, 최근 출판사들이 의욕적으로 펴내는 비인기 기획 도서는 전자책 플랫폼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다. 온라인 서점에서도 앞서 소개된 한국의 비인기 기획 도서는 전자책으로 판매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출판사 입장에서 심혈을 기울인 기획 도서를 전자책 플랫폼을 통해 유통하는 것이 부담될 수 있다. 또한, 전자책 가격을 두고 출판사와 전자책 플랫폼간 이견이 존재하는 상황도 난관이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출판사는 소수의 고정 독자를 공략하는 편이 낫기 때문에 전자책은 만들지 않는 것”이라며 “도서관에서 대출할 독자가 전자책 독자보다 많다는 판단을 내린 것 아니겠느냐.”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전자책이 비인기 기획 도서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는 하나의 창구일 수 있다. 전자책 플랫폼 회원이라면 추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비인기 기획 도서를 빌려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비인기 기획을 준비하는 출판사는 변화하는 독서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인식도 줄 수 있을 듯하다. 아울러 마케팅 측면에서 디지털 마케팅과 전자책 유통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조금씩 더 넓은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발전한다면 언젠가 비인기 기획을 ‘인기 기획’으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