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탐구-출판 외주노동자 표준계약서-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출판탐구-출판 외주노동자 표준계약서-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출판탐구 출판 외주노동자 표준계약서,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윤정아(출판노동유니온 조합원, 말랑북스 대표) 2026. 1+2.

출판 외주노동자에게 ‘계약서’란?

“출간 일정이 빠듯해서 그런데, 이번 연휴와 모든 휴일 포함해 작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계약금은 바로 넣어드릴게요. 참, 잔금은 출간 익월 말일경에 지급될 예정입니다! ” 얼마 전 필자가 진행했던 단행본 원고 교열 작업의 일정과 작업비 지급 조건이었다. 여러 번의 통화와 메일을 거쳐 위 내용으로 계약이 정리되었다. 한마디로 일정이 너무 급하지만 작업비는 회사 내규에 따라 늦게 준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작업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부터 시작해야 했다. 일을 받자마자 바로 시작하지 않으면 도저히 맞출 수 없는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부당함을 지적하노라면 “작업 일정이 불만이면 일을 거절하면 되지.”, “잔금 지급일이 불만이면 그 출판사랑 일을 안 하면 되지.”와 같이 외주노동자들의 불만은 깔때기처럼 ‘그러면 그 일을 안 하면 된다’로 모이곤 한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들어온 일을 시원하게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부분은 일이 들어온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무리해서 작업을 하고, 날짜를 확인하며 초조하게 잔금을 기다린다. 평범한 외주노동자의 일상이다. 그 외에도 증정본 부수가 없는 계약서, 일은 다양한데 업무 범위 표현은 오직 ‘편집’ 하나인 계약서, 그저 작업비와 작업 일정만 적혀 있을 뿐 다른 무엇도 기재된 것 없이 텅 빈 계약서, 이메일 내용으로 계약서를 대신하거나 그마저도 없이 구두 협의로 끝내는 등 외주노동자로 오래 일하다 보면 다양한 상황을 만나게 된다. 초보 프리랜서 시절 필자는 계약서 없이 일을 시작했다가 여러 건의 미팅, 상당한 분량의 교열 작업을 하고는 제대로 된 통보도 없이 작업비와 함께 일감이 사라진 적이 있다.

부실하거나 이상한 계약이 출판사 담당자의 탓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담당자 역시 회사 내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정해진 계약서 양식을 따르고 있을 뿐이다. 대형 출판사는 독자적인 계약서 양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 이미 법률 검토를 마친 경우도 있다. 특히 일부 계약에만 수정 조항을 적용하기 힘든 분위기라면 외주노동자가 계약 조항을 수정해 달라고 했을 때 담당자 역시 곤란해진다. 작은 출판사나 신생 출판사의 경우 개별적으로 법률 검토를 받기 어렵기 때문에 알음알음 다른 출판사의 계약서를 적당히 변형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외주를 의뢰하는 상대나 작업의 종류에 따라 적당히 조항을 변경해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 혹시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을지 불안감이 따라오는 것도 사실이다. 계약서에서 정해야 할 사항이 업무 범위나 작업비, 작업 기간뿐일 때는 조건을 명확히 설정한다면 걱정할 부분이 적지만, 저작권이 관련된 경우 담당자들은 혹시 내가 다루고 있는 이 계약서가 현행법을 위반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표준계약서가 필요한 이유다.

출판 외주노동자 표준계약서 제정을 위한 노력

출판 외주노동자는 무척 다양하다. 편집 직무뿐 아니라 디자인, 일러스트, 번역, 대필, 심지어 요즘은 마케터도 프리랜서가 많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24 출판산업 실태조사(2023년 기준)>에 따르면, 출판사들이 외주 작업을 맡기는 비율은 2021년 33.4%, 2022년 33.2%, 2023년 39.7%로 거의 40%에 가까우며 이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특히 5인 이하의 소규모 사업장이 많은 출판계 특성상 모든 직무를 정규직으로 고용하기 힘들어 외주노동자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대형 출판사는 정해진 일정에 맞추어 출간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외주노동자를 필요로 한다. 이렇듯 출판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외주노동과 분리될 수 없는 관계였다. 2021년에 저자와 출판사 사이에서 사용하는 ‘출판권 설정계약서’가 제정되었고 여러 제도적 지원을 받아 널리 쓰이고 있지만 외주노동자와 출판사 간의 표준계약서는 미비한 상태다.

신간 도서 1종 발행 기준 자사 수행 및 외주 작업 비율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4 출판산업 실태조사(2023년 기준)>, 77p

그간 외주노동자를 위한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출판노동조합협의회(이하 노조) 가운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이하 출판노동유니온)는 유일한 회사 밖 노조로, 다양한 출판사에 다니고 있는 재직자들뿐 아니라 외주노동자들도 가입하여 활동해 왔다. 출판업계에서 외주노동자 비율이 높아지면서 노조 내 외주노동자 비율도 늘었고 필자 역시 그중 하나다. 출판노동유니온은 2012년 노조 설립 이후 외주노동자의 근로환경 개선과 법적 테두리 안에 적법한 이익이 보장될 수 있도록 여러 노력을 기울여왔다. 2013년에 첫 외주노동자 실태조사를 자체적으로 진행하였고, 이후 외주노동자 대상 프로그램을 여러 차례 꾸려 왔다. 2020년에는 외주노동자 간담회를 열어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였다.

정부가 출판 외주노동자 표준계약서 제정을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은 2022년부터다. 노조는 정부와 국회, 사용자 단체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여 2022년 12월 처음으로 국회 토론회를 통해 출판 외주노동자의 실태를 논의하였고, 문화체육관광부에 이들을 위한 표준계약서의 필요성을 알렸다. 이 연장선에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는 2023년 「출판 외주노동자 근로환경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에 착수하여 2024년 2월에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이는 한국노동보건안전연구소에서 수행한 2013년 「외주 출판노동자 노동실태 연구」 이후 10년 만에 출판 외주노동자에 대해 연구한 것으로, 기획, 편집, 디자이너, 마케터 등 7개 직무에 해당하는 459명의 외주노동자가 실태조사에 참여하여 출판 외주노동자를 위한 정책 기초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2024년에는 유인촌 전(前) 장관과 노조가 간담회를 진행한 뒤 출판 외주노동자의 근로환경 개선의 필요성이 더욱 주목받을 수 있었고, 최근에는 해당 실태조사에서 제안된 표준계약서를 바탕으로 실제 ‘출판 외주노동자 표준계약서(이하 외주 표준계약서)’ 제정을 위한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2025년 12월 기준).

외주 표준계약서 제정을 위한 기본적인 조건들

외주 표준계약서를 만들기 위해서 명확한 기준들이 필요하다.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누가 외주노동자인가’일 것이다. 필자는 편집 직군의 외주노동자이고, 업무를 할 때는 작업비의 총액에서 원천징수세액 3.3%를 공제하고 받는다. 계약을 맺는 작업물은 주로 단행본 도서 1종이다. 작업을 완료해 발주처에 보내면 대금을 받는다. 계약의 특성에 따라 계약금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 아마 대부분의 외주노동자가 필자와 비슷한 계약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번 외주 표준계약서 제정 연구 용역 자문위원으로 참여하여 표준계약서에 필요한 기본적인 조건들을 제안하였다.

이번에 제정된 외주 표준계약서는 용역 혹은 도급 계약을 맺는 이들을 주요 대상으로 삼았다. 외주노동자는 발주처의 의뢰를 받아 ‘노동’을 하고 그 내용을 검수받는다. 다만, 이번 외주 표준계약서 제정이 근로자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아니다. 프리랜서인 출판 외주노동자가 사실상 근로자와 동일한 눈높이에서의 근로계약 및 관련 법령(근로기준법, 산업재해보장법 등)에서 보장하는 수준의 복지 향상을 바라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프리랜서는 업무 특성상 업무 시간이나 장소를 특정하기가 어렵다. 대부분 프리랜서는 집이나 작업실에서 업무를 수행하며, 업무 시간도 유동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만약 근로자성을 획득하기 위해 업무 시간과 장소를 특정한다면 이는 계약직으로 봐야 한다. 프리랜서는 자유 형태의 근무를 원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이 가정 내 상황이든 개인의 성향 차이이든 이유를 불문하고 그 선택이 존중되었으면 한다.

다만 업무 환경의 최소 보장선을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다. 노조는 오랫동안 출판 외주노동자들을 예술인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대상 범위 안에 포함하려 노력해 왔다. 이에 제도적 진전은 있었으나 아직 현장에서 적용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 필자만 해도 여러 출판사와 협업하고 있고 그중에는 장기적으로 거래하는 곳들도 있지만, 한 번도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은 적이 없다. 과업마다 새로운 계약을 하니 거래처에 고용보험 가입을 요청하기가 어렵다. 이런 사회보험의 영역은 별개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출처: 챗지피티(ChatGPT)

이번 외주 표준계약서는 공정한 용역 계약서가 보장해야 할 기본적인 내용에 중점을 두고 있다. 작업비 지급 조건과 지급일 명시, 휴일에 야근하지 않을 수 있도록 최소 휴식권의 보장, 합의 없는 추가 업무 방지, 명확한 저작권 설정 등 출판업계에서 고질적으로 문제가 된 부분들을 이번 기회에 바로잡자는 것이다. 특히 외주노동자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문제점은 작업비 지급을 ‘출간 후 ○○일’로 정하는 조항이다. 월급은 정해진 날에 들어오는데, 외주노동자들은 작업을 완료하고도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몇 달을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출판사가 서점과 주로 어음거래를 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악습이다. 출간 일정은 전적으로 출판사의 결정에 달렸기 때문에 마케팅 방향에 따라 출간이 몇 달이나 미뤄지는 책들도 있다. 다행히 최근에는 ‘작업물 인도 후 ○○일’로 지급 기준을 정하는 출판사가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일부 출판사의 내규 때문에 여전히 외주노동자들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앞서 간략하게 언급했듯, 출판계 외주노동은 분야가 워낙 다양하다. 편집 분야는 기획, 책임 편집, 교정·교열로 나누어지고, 디자인은 본문 디자인과 표지 디자인, 조판으로 세분화할 수 있다. 일러스트나 번역도 업무의 특성이 있어 각기 다른 계약 조항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외주 표준계약서가 분야별 특징을 고려해 다양하게 세분화한 양식을 마련할 것인지, 표준이라는 기본 틀만 제시한 뒤 별도의 협약서를 통해 직무별 특성을 반영할 것인지에 대해 깊은 고민과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출판사와 외주노동자들은 이번 외주 표준계약서 내용을 기반으로 각 상황에 맞춰 변형하여 사용한다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표준계약서가 공정한 계약을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셈이다.

외주 표준계약서 제정의 걸림돌과 보완 사항들

지식과 정보를 다루는 출판계가 계약 관계에서 다른 문화산업보다 한참 뒤처져 있다는 점은 자못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번 외주 표준계약서가 제정되면 그동안 출판사에 따라 중구난방이었던 계약서들이 어느 정도 법적 검토를 마친 공정한 계약서 양식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외주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용역 환경을 보장받게 된다. 작업을 마치고도 몇 달씩 기약 없는 입금을 기다리는 일도 줄어들 것이고, 휴일에도 조금은 마음 놓고 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출판사들의 입장은 어떨까. 처음에는 다소 불편한 점이 있을 것 같다. 그동안 익숙하게 써온 자사의 계약서들을 바꾸면 업무에 다소 혼란이 올 수 있겠지만, 이는 언젠가는 반드시 넘어야 할 언덕이다. 최근에는 외주노동자를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갑을 관계보다는 협력 관계로 보려고 노력하는 출판사들이 늘고 있고, 계약서의 용어 하나까지 더 공정하고 평등하게 작성하려 애쓰고 있다. 출판사와 외주노동자가 모두 믿을 수 있는 표준계약서가 제정된다면 출판사들은 계약서의 법률을 검토하기 위해 추가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신생 출판사가 다른 출판사에서 쓰는 양식을 복사해 쓰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혹시 저작권 양도와 관련해 분쟁이 생겨도 불공정 계약서로 판단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아질 것이다. 저작권 관련하여 출판 창작물은 출판사와 상호 협의에 따라 저작물 인도에 대한 권리를 일체 넘기는 계약 형태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표준계약서가 마련된다고 해도 실제 현장에서 쓰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더욱이 출판사와 외주노동자의 관계에서 힘의 논리가 없을 수는 없고, 비교적 약자인 외주노동자가 표준계약서를 사용하자고 먼저 요청하기도 어렵다. 그러므로 외주 표준계약서가 효용이 있으려면 외주노동자의 의견뿐 아니라 출판사의 의견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다. 표준계약서와 함께 조항의 해설서를 곁들여야 하고, 출판사와 외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관련 교육이나 권고 활동도 진행해야 할 것이다. 외주 표준계약서를 사용했다는 증빙이 있으면 각종 출판 관련 정부 사업에서 가산점을 주는 등의 혜택을 마련하면 효과가 있지 않을까. 이번 외주 표준계약서가 노동의 가치와 정당한 보상을 받게 하는 지름길이 되길 바란다.

* 웹진에 실린 글의 내용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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