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이모저모. 출판 프로세스 이코노미: 과정 공개로 독자를 팬으로 만드는 전략과 사례, 프로세스이코노미, 출판마케팅, 출판편집, 출판사 사례, 독자 소통, 출판팬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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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 이모저모
출판 과정을 팝니다: 프로세스 이코노미
김성신(출판평론가)
2025. 9+10.

 

 

 

과정의 상품화, 소비자가 아닌 팬을 만든다

일본의 그림책 작가 니시노 아키히로(西野亮廣)는 본래 개그맨이었다. 그는 24년간이나 코미디언으로 활동했지만, 스타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좋아하는 일은 돈을 내서라도 한다. 싫어하는 일은 돈을 줘도 하지 않는다.’라는 좌우명을 실천하고자 가수, 배우로 활동하며 만능 엔터테이너로 변신해 갔다. 그리고 갑자기 『Dr. 잉크의 별 하늘 키네마(Dr.インクの星空キネマ)』(겐토샤, 2009), 『오르골 월드(オルゴールワールド)』(겐토샤, 2012) 등을 쓰기 시작하더니 단숨에 베스트셀러 그림책 작가가 되었다. 그는 1년에 100억 원 가까운 돈을 벌었지만, 집도 없고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늘 기상천외한 일을 벌여 일본에서 괴짜이자 천재 사업가로 유명하다.


『Dr. 잉크의 별 하늘 키네마』, 『오르골 월드』

그가 그림책 작가로 변신해 큰 성공을 거둔 과정이 흥미롭다. 작품 구상부터 집필까지의 과정을 모두 유튜브(YouTube)에 공개한 것이다. 그리고 후원금 모집과 사전 예약 등을 통해 구매 독자를 먼저 확보하는 방식을 진행했다. 그는 그림책 작가가 되기 전부터 그림책 구매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주부들과 직접 접촉하며 그들의 일상을 세밀하게 관찰했다고 한다. 아이를 둔 엄마들은 대부분 너무 바쁘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과 시간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는 ‘그림책을 사려고’ 할 때 절대 실패해서는 안된다는 엄마들의 마음가짐을 파악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엄마들은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꼼꼼하게 읽고 살펴본 다음, 본인들이 유익하고 재미있다고 느끼면 그제야 아이에게 그 책을 사주었다. 엄마들은 책의 내용을 모두 알고 있는 작품만 사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무료로 공개하면 돈을 주고 구매하지 않을 것이라는 상식적인 생각은 그림책에 대해서는 완전히 틀린 판단이라는 것을 파악한 것이다. 그는 자전적 자기계발서 『혁명의 팡파르: 현대의 돈과 광고(革命のファンファーレ 現代のお金と広告)』(소미미디어, 2021)에서 이렇게 썼다.

“그런데 어머니도 바쁘다. 좋은 책을 만날 때까지 여러 권의 책을 읽기 위해서 며칠씩 서점이나 도서관을 드나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도’일지 ‘모’일지 모르는 도박을 할 금전적 여유도 없고 그렇다고 재미있는 책을 만날 때까지 계속해서 서서 읽을 시간적 여유도 없다. 그런 어머니가 결과적으로 어디에 착지하느냐면 ‘어릴 때 읽고 재미있었던 그림책을 자기 아이에게 사주는’ 안전 전략이다. …… (그림책을) 웹(Web)에서 무료 공개해, 여유가 없는 어머니에게 ‘집에서 그냥 읽는’ 기회를 주고 ‘1번만’이 아니고 수없이 음미해 우선 ‘살지 말지’의 단계까지 오게 하지 않으면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다.”
– 『혁명의 팡파르: 현대의 돈과 광고』 중

그가 그림책 출간에 앞서 인터넷에서 무료로 공개해야겠다고 판단했던 배경을 밝히는 부분이다. 그런데 그는 완성된 작품만 공개한 것이 아니라 작품을 기획하고 다듬어가는 과정, 즉 그 과정에서 겪은 실패나 극복한 일화부터 자기 생각이 문장이 되고, 그 문장들을 모아 이야기의 흐름을 만들고, 그 흐름을 통해 메시지를 담고,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유튜브에서 공개했다. 이런 활동은 그를 단박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혁명의 팡파르: 현대의 돈과 광고』

이 성공의 원인은 결과만이 아니라 세세한 과정을 모두 공개하고 양방향으로 소통하면서 독자들을 ‘고(高)관여자’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이 참여한 결과물에 대해 큰 애정과 충성심을 갖는다. 그러니까 니시노 아키히로는 한 권의 그림책에 대한 단발성 소비 ‘독자’가 아니라, 작가를 지속적·장기적으로 응원해 주는 ‘팬’으로 성장하게 만든 것이다. 니시노 아키히로의 성공 신화는 ‘과정의 상품화’가 현대 사회에서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를 알 수 있는 훌륭한 성공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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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를 높이는 프로세스 이코노미

스마트해진 환경 덕분에 현대인은 일상적으로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처리해야만 한다. 하지만 과도한 정보는 오히려 정보로서의 가치를 휘발시킨다. 무슨 정보가 진짜인지, 어떤 정보가 더 높은 가치인지등을 판별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대인이 ‘메시지’보다 ‘메신저’에 집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충분히 신뢰할 만한 메신저를 먼저 선택한 뒤, 그로부터 나오는 메시지만 신뢰하는 것이다. 폭포처럼 쏟아붓다시피 하는 정보 속에서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정보만을 신속하게 선별해야만 하는 현대인들로서는 이러한 방식 외에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최근 기업의 홍보 및 마케팅 전략에서도 ‘과정의 상품화’가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이런 현상을 지칭하는 것이 바로 ‘프로세스 이코노미(Process Economy)’다. 이것은 일본의 IT 비평가 오바라 가즈히로 (尾原和啓)의 저서 『프로세스 이코노미』(인플루엔셜, 2022)에 등장한 표현이다. 이 책은 아웃풋(Output)이 아닌, 프로세스를 파는 새로운 가치 전략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는 상품을 무슨 목적에서 기획했는지, 생산까지 어떠한 단계를 거쳤는지를 하나의 스토리로 제시함으로써 브랜드 충성도와 몰입도는 물론 신뢰도까지 높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프로세스 이코노미』

출판산업은 일종의 흥행 비즈니스다. 매일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지만, 출판인들은 한 권씩 새 책을 출간할 때마다 흥행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최근 우리 출판업계에서도 프로세스 이코노미, 즉 ‘책’이라는 ‘결과’와 함께 ‘과정’을 제공함으로써 더해지는 브랜딩 효과에 집중하며 다양한 시도와 의미 있는 성과들을 만들고 있다.

 

 

출판 프로세스 이코노미 사례 ① 독자와 또 다른 소통 방식

출판사 열린책들의 경우 프로세스 이코노미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열린책들은 편집 가이드북인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을 출간하고 있다. 이 책은 출판사의 편집부에서 책을 만드는데 꼭 필요한 자료들을 하나씩 모아 검토하면서 열린책들만의 원칙을 세우기 위해 만든 내부 매뉴얼이었다. 2005년 처음 20부만 제작되었는데 이 책이 매우 유용하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2008년부터 일반 판매용으로 출간되었다. 2016년을 제외하고 올해까지 매년 꾸준히 발간되고 있다.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은 편집자들의 세분화된 업무와 관련 주제를 다루는 것을 넘어 편집자가 알아야 할 내용들을 전체적으로, 체계적으로 담고 있다. 애당초 신입 편집자 교육용이었던 만큼 출판 편집의 실무를 익히고 공부하기에 이만한 책이 없다. 이 책은 2021년에 무려 4,500부가 판매되었고 지금도 초판이 2,000부 이상 판매되고 있다. 출판 편집자만 구매했다고 볼 수 없는 판매량이다. 텍스트힙(Text-Hip)이라는 최근의 트렌드 속에서 열린책들 브랜드의 책을 덕질하기 위한 일반 독자들의 수요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을 읽는다는 것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출판사의 고관여자가 되고 열린책들이라는 브랜드의 팬이 되는 일종의 관문이 되는 셈이다.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 2025』, 『첫선』

최근 출판사 아침달의 편집부가 필자가 되어 펴낸 『첫선』(2025)이라는 책도 무척 흥미롭다. 출간 의도 자체에 ‘프로세스 이코노미’라는 요소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동안 아침달에서 펴낸 시집들의 보도자료를 재구성한 ‘아침달 첫 시집 보도자료 모음집’이다. 등단하지 않은 신인의 원고를 발굴해 첫 시집을 세상에 내놓고 이를 소개하려 만든 보도자료. 거기에는 한 사람의 시인에게 큰 애정을 가지고 그의 작품을 가장 내밀하게 읽어가며 만든 편집자의 진정성이 담길 수밖에 없다. 그것을 고스란히 책으로 구성하겠다는 기획의 발상부터가 무척 흥미롭고 인상적이다.

2018년부터 꾸준하게 펴낸 아침달 시집 시리즈는 7년 만에 50종을 출간했다. 오랜 노력 그 자체를 독자들에게 알리겠다는 기획이기도 하다. 이 책은 보도자료 외에도 일간지 문학 담당 기자와 인터넷서점 MD 등 출판 현장에서 보도자료를 직접 다루고 읽는 사람들의 산문도 함께 수록하고 있다. 작품과 책을 생산한 작가와 출판사만의 일반적인 입장이 아니라, 책이라는 메시지를 먼저 수신해 세상에 널리 전달하고 퍼뜨리는 ‘책 전문 메신저’로서의 중립적인 시점을 전달함으로써 독자들이 책을 다시 보게 만든 것이다.

한편 독자는 출판사와 언론사 간에 어떤 식으로 메시지가 전달되는지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래서 때로는 엄청나게 많은 공을 들여 만든 책들이 메신저들에게 별 반응을 얻지 못한 것이나, 보도를 거절당한 과정까지도 독자는 쉽게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당시 책의 생산자라 할 수 있는 시인과 출판사가 가졌을 아쉬움이나 안타까움 등의 감정이 소비자인 독자에게 전달될 수도 있다. 아쉬움이나 안타까움과 같은 감정은 그저 좋다는 감정보다 훨씬 역동적이다. 독자를 ‘관조자’로만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닌 간접적으로나마 출판 홍보의 과정에 참여시킴으로써 ‘고관여자’로 변신시키는 것이다. 프로세스 이코노미의 좋은 사례가 될만하다.

『첫선』 기획은 TV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과 매우 흡사하다. 2009년 ‘슈퍼스타K’를 시작으로 시즌4(12월 방송 예정)로 이어지고 있는 ‘미스트롯’까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여전히 최고 인기아이템이다. 이 배경에는 시청자들을 감정적으로 자극하는 출연자들의 서사가 있다. 요즘 대부분 오디션 프로그램은 공연 시간보다 출연진의 서사를 만들고 알리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시청자에게 결과보다 과정을 제공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음을 적극 반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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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프로세스 이코노미의 사례 ② 마이크로 인플루언서와 소통

최근 몇 년 사이 출판계가 만든 큰 성과 중 하나는 ‘출판 마이크로 인플루언서(Micro Influencer)’ 생산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유튜브 채널 ‘편집자K’, ‘출판사 박대리’, ‘민음사TV’가 대표적인 사례다. 2019년부터 유튜브 채널 ‘편집자K’를 운영하는 강윤정 편집자는 19년 차 현직 출판 편집인이기도 하다. 그는 2012년부터 문학동네에서 일해왔고 현재 편집팀장을 맡고 있으며, 국내 소설과 산문집, ‘문학동네시인선’을 만들고 있다. 함께 출판계에서 일하는 남편과 함께 6개월간 매일 쓴 독서 일기를 모아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각자의 책을 읽는다』(난다, 2018년)를 펴냈고, 2020년에는 『문학책 만드는 법』(유유)을 세상에 내놓았다.

『문학책 만드는 법』은 현직 출판인인 저자가 시와 소설, 작가의 산문을 어떻게 편집하는지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편집자K’ 역시 원고에서 책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그 과정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전한다. ‘편집자K’는 현재 구독자 6만 5,000명이 넘었고 20만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각자의 책을 읽는다』, 『문학책 만드는 법』

현재 출판사 흐름출판의 마케팅을 담당하며 유튜브 채널 ‘출판사 박대리’를 10년째 운영 중인 박중혁 출판 마케터는 한국 출판산업을 대표하는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라고 할 수 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독자가 읽어야 비로소 책이 완성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소통에 진심을 담으려 노력한다면서 “모든 댓글에 답을 달고, 독자들이 쓴 만큼 혹은 그것보다 더 길게 답을 쓰려고 한다.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다. 6년 전 첫 출판사에서 인연을 맺은 서포터즈들과 지금도 연락하고 개인사를 나누고 있다.”라며 채널의 인기 비결을 전했다. 이 사례는 프로세스 이코노미를 구현하기 위해서 어떤 수준의 이해와 의지를 가지고 출판 기획과 마케팅에 접목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몇몇 사례를 통해 현재 출판산업에서 ‘프로세스 이코노미’가 어떻게 적용되고 어떤 성과들을 만들었는지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출판인을 신뢰할 만한 지식 큐레이터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체적인 흐름을 짐작해보면, 출판인을 대상으로 하는 팬덤은 양적으로 계속 많아질 것이고, 이에 따라 더욱 다양한 콘텐츠 채널과 출판인 캐릭터들, 그리고 새롭고 매력적인 출판 브랜드가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이 단기적인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출판산업의 지속적인 동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출판인들의 새로운 각오와 성찰도 필요할 것이다. “소통에 진심을 담으려 노력했다”는 출판인 박중혁 씨의 말을 자주 곱씹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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