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이모저모, 책 꾸미기에 진심인 Z세대 독자들, 1인출판사, ISBN등록, ISBN발급대행

출판계 이모저모, 책 꾸미기에 진심인 Z세대 독자들, 1인출판사, ISBN등록, ISBN발급대행

 

 

책 꾸미기에 진심인 Z세대 독자들
전혼잎(<한국일보> 기자)
2025. 3+4.

 

 

책에 긋는 밑줄, 심지어 찢기도 가능?

가뜩이나 예민하던 고등학교 시절, 나는 친구와 심하게 다툰 적이 있다. 서로 머리채를 잡기 일보 직전까지 갔던 싸움의 발단은 빌려준 책에 친구가 그은 ‘밑줄’ 때문이었다. 돌아온 책에서 눈에 띄는 외상은 밑줄뿐이 아니었다. 책날개를 책갈피처럼 사용한 탓에 표지도 너덜너덜해졌고, 책을 꾹꾹 눌러 가며 읽었는지 접힌 자국도 선명했다. 친구는 자신이 원래 책을 험하게 본다면서 사과했고, 책을 빌려주면서 “깨끗하게 봐 달라.” 등의 당부를 하지 않았던 내 잘못도 있었기에 금세 화해를 하긴 했다. 그러나 그 후로는 누구에게도 책을 빌려주지 않게 됐을 정도로 친구의 행동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폭거였다.

나는 친구와 달리 책을 원형 그대로 깨끗하게 보는 데 목숨을 거는 편이다. 심지어 책에 두른 띠지도 고스란히 보관한다. 지금도 책을 읽다가 메모가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흔적이 남지 않는 포스트잇을 붙이거나,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는다. 책갈피도 책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얇은 것을 사용한다. 오래 보관할 책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언론사 문학 기자로 일하다 보면 하루에만 수십 권의 홍보용 책을 받는데, 기사를 쓰려고 이 책 저 책을 넘겨보면서도 페이지 귀퉁이조차 접은 적이 없다.

사실 책의 내용을 찾으려면 책에 표시하는 방법이 제일 간편하다. 수만 권의 책을 가진 다독가 이동진 영화평론가도 “책을 읽다가 메모를 하거나 필요한 경우에는 페이지를 찢어도 된다.”라고 말할 정도로 독서에 있어 밑줄의 효과를 이야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나는 결국은 내키지 않아서 여전히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있다. 책 보관에 있어서는 이처럼 강경한 원칙을 지키는 꼰대, 즉 ‘책꼰’임을 자부하던 나의 눈에 들어온 ‘책꾸(책 꾸미기)’는 도무지 믿기 어려운 유행이었다.

책 꾸미기에 진심인 Z세대 독자들, 1인출판사, ISBN등록, ISBN발급대행

 

 

출판계에 나타난 책 꾸미기 열풍

책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출판사 열린책들의 “열린책들 한국 문학 소설선”(전 3권)이었다. 열린책들은 지난해 12월 이 시리즈의 두 번째 책 『춘천 사람은 파인애플을 좋아해』(도재경)를 출간하면서 책꾸 스티커를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서 한정판으로 제공했다. 책꾸 스티커는 소설 내용과 관련 있는 파인애플, 우주선 등의 모양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문장을 확인할 수 있는 하이라이팅 인덱스 스티커도 포함됐다. 또 열린책들은 이어서 『설명충 박멸기』(이진하, 2025)를 출간하며 작가가 책에 직접형광펜을 그은 ‘밑줄본’을 제공하는 인스타그램 이벤트도 진행했다. 또한, 지난해 9월 문학동네는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장편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2023)을 모티프로 한 스티커를 포함한 ‘북꾸 에디션’을 내놨다. 스티커로 표지를 장식해 “나만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가져보라.”는 설명도 함께였다.

 

『춘천 사람은 파인애플을 좋아해』의 책꾸 스티커(출처: 열린책들)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를 넣고 ‘책꾸’를 검색하면 관련 게시물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단색 민무늬 표지에 기존 책보다 작고 가벼운 “문학동네 시인선”과 위즈덤하우스 “위픽” 시리즈 표지에 귀여운 스티커를 붙인 책꾸 게시물들이 눈에 띄었다. 작가들도 이런 움직임에 호응하고 있다. 이원석 시인은 “문학동네 시인선”으로 나온 자신의 시집 『엔딩과 랜딩』(2022)의 3쇄 소식을 알리면서 인스타그램에 스티커로 꾸민 표지 사진을 게시했다. 독립서점 이올시다는 은모든 작가의 『꿈과 토템』(민음사, 2024)을 꾸미기 좋은 책이라고 소개하면서 책을 사는 독자에게 스티커를 함께 제공했는데, 이 스티커는 은 모든 작가가 직접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책꾸한 『꿈과 토템』(출처: 이올시다)

 

자신만의 북커버나 눈에 띄는 책갈피로 책을 장식하는 방식의 책꾸도 있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에 따르면 2024년 북커버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195.1% 늘었다. 일본은 책을 사면 서점 점원이 “커버를 싸드릴까요?”라고 묻고 서점마다 고유한 디자인이 있을 정도로 보편화된 북커버 문화가 있지만, 한국은 최근 몇 년 사이 갈수록 수요가 생기는 모양새다. 북마크와 책갈피 역시 42.8% 판매량이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도 책꾸와 관련된 용품들의 인기는 다양한데, 교보문고의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바로펀딩은 지난해 9월 오직 책을 넣는 용도로 만든 산‘책’가방을 1,000개 한정으로 내놓았다가 사람이 몰려 사이트 접속 오류 현상을 빚었다. 치열한 구매 경쟁에서 탈락하고, 웃돈을 주고서라도 산‘책’ 가방을 사겠다는 이들로 인해 리셀(Resell) 가격이 뛰어오르기도 했다.

 

산‘책’가방(출처: 교보문고 바로펀딩 홈페이지)

책 꾸미기에 진심인 Z세대 독자들, 1인출판사, ISBN등록, ISBN발급대행

 

 

“책꾸하면 기분이 좋거든요.”

왜 하필 책꾸인가. 책꾸는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출생)를 중심으로 퍼진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와 백꾸(가방 꾸미기) 등 ‘꾸미기’ 유행의 연장선에 있다. 피자에 원하는 토핑을 얹듯 기성품에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물건을 얹어 제품을 개인화하는 ‘토핑 경제’는 올해 소비시장 트렌드 중 하나로 꼽힌다. 이런 토핑 경제의 대표적인 사례인 ‘꾸미기’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일종의 놀이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별걸 다 꾸민다는 의미의 ‘별다꾸’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책 꾸미기는 다이어리에 스티커를 붙이고 가방에 인형이나 열쇠고리를 다는 것에 비하면 다소 마이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꾸 열풍에 힘입어 마침내 ‘자기만의 책’을 꾸미는 이들도 등장한 셈이다. 꾸준한 텍스트힙(Text-Hip) 열풍도 한몫했다. 독서를 인증하는 일이 멋지고 ‘힙’다는 텍스트힙 문화로 자리 잡은 만큼, SNS에서 평소 책 리뷰, 필사를 올리는 계정을 중심으로 책꾸를 시도하는 모양새다.

책을 필사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는 20대 사소 씨는 다꾸뿐만 아니라 책꾸도 동시에 하고 있다. 그는 “우선 책을 읽으며 인상적이거나 간직하고 싶은 문장에 인덱스를 붙이고 때때로 밑줄을 긋는다.”라고 말했다. 책을 읽으면서 책과 다이어리, 메모지에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한다는 그는 독서의 질을 높여준 물건으로 북커버를 꼽기도 했다. “독서를 하면서 귀여운 북커버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북커버와 책갈피를 활용한 책꾸

 

인스타그램에서 책을 소개하는 20대 유수정 씨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울리는 문장에는 파란색, 설레는 문장에는 분홍색, 웃기고 재미있는 문장에는 노란색 등 나름의 기준으로 구분해 색색의 인덱스 스티커를 붙인다는 그는 “나중에 다시 책을 펼쳐보면 책 읽을 때의 감정도 생각나고 뿌듯해진다.”라고 전했다. 또 그는 다 읽은 책 첫 장에 앵두 모양의 도장을 찍는데, “한 출판사의 북클럽에 가입하면서 받은 도장”이라면서 “완독한 책에 도장을 찍으면 비로소 내 책이 됐다는 생각이 들어 ‘더 많은 독서를 하겠다’는 욕심이 생긴다.”라고 설명했다. 책꾸를 하면서 독서량이 늘었다는 것이다.

네이버 블로그에 필사와 책꾸 사진을 올리는 30대 김민지 씨 역시 “스티커를 붙여 책을 장식하는 것이 재미있고, 이런 게시글을 보고 사람들이 ‘예쁘다’라고 반응을 보여주면 더 즐겁다.”라고 귀띔했다. 그는 “더 예쁜 사진을 찍으려고 책갈피 역시 책 표지와 어울리는 색상과 디자인으로 구입한다.”면서 “책갈피는 그리 비싸지도 않아서 사는 데 부담이 없다.”라고 덧붙였다. 책갈피뿐만 아니라 온라인 서점에서 판매하는 한정판 문진도 그의 대표적인 책꾸용 소품이다.

 

김민지 씨가 스티커로 꾸민 시집들

 

이처럼 이들이 책꾸에 진심인 이유는 사실 하나다. “기분이 좋거든요.” 이 표현은 1994년 어느 방송사의 길거리 인터뷰 중 한 여성의 대답에서 유래한 온라인 밈(Meme)이다. 젊은 X세대의 옷차림 변화에 대해 “남의 시선을 느끼지 않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전혀요.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거든요.”라고 말했다. 30년 전에도, 또 오늘도 늘 자기표현에 충실한 젊은 세대가 자신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해 책을 꾸미고 마음에 드는 북커버를 씌우고 눈에 띄는 책갈피를 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받들어 모시던 책의 신분 변화?

나를 포함해서 주변에는 이런 책꾸 유행과는 반대로 여전히 책을 훼손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들도 적지 않게 존재한다. 책 보관에 목숨을 거는 사람은 단단히 결심하고 책에 밑줄을 그을 때마저 죄책감이든다. 외양을 지키고 싶다는 이 욕망의 근원에는 책을 향한 숭배에 가까운 감정이 있다. 다시 읽을 일이 없을 것이 확실한 책까지도 감히 손대지 못할 만큼 책은 ‘받들어 모실’ 만한 신성한 물건인 것이다. 나로서는 이런 숭배의 대상인 책을 단지 내 기분을 좋게 만들겠다는 이유로 꾸미는 건 상상하지 못할 일이었지만, 텍스트힙 시대의 독자들은 다르다. 이들에게 ‘나’는 책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책이‘나’를 위해 존재한다. 인터넷과 유튜브 등에 밀려 낯선 무언가가 된 책은 신선하고 새로운 ‘힙’의 대상일 뿐, 대하기 어렵고 존엄한 존재는 아닌 셈이다. 한국 사회가 책을 멀리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책을 너무 어렵게 여겨서인 만큼 내키는 대로 책을 다루는 현상은 분명 환영할 만하다.

돌이켜 보니 책꼰인 내게도 드물지만 책꾸의 경험이 있다. 산문집을 주로 쓰던 김신회 작가의 첫 장편소설 『친애하는 나의 술』(여름사람, 2024)의 표지에 붙인 강아지 스티커다. 이 귀엽고 깜찍한 까만 강아지는 김신회 작가의 반려견이다. 지난해 열린 그의 북토크에서 받은 이 스티커를 나는 『친애하는 나의 술』 책 표지에 붙였는데, 평소라면 결코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그러나 북토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책이 이미 내 안에서 특별해진 상황인 데다가 그 자리에는 김선회 작가의 강아지도 함께였다.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충동적으로 책 표지에 붙인 스티커는 책꾸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처럼볼 때마다 나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다소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내가 책에 스티커를 붙여 주었을 때 그저 수많은 이름 없는 사물의 하나였던 책이 비로소 나에게로 온 느낌이었다.

 

강아지 스티커를 붙인 『친애하는 나의 술』 표지

책 꾸미기에 진심인 Z세대 독자들, 1인출판사, ISBN등록, ISBN발급대행

 

이렇게 나 또한 책꾸의 세계에 서서히 발을 들이게 되는 것일까. 책꾸에 관해 취재하면서 책에 밑줄을 긋는 일조차 저어된다는 속내를 털어놓자 한 인터뷰이는 ‘기화펜’을 추천했다. 종이에 쓰고 시간이 지나면 잉크가 날아가는 기화펜으로 책에 밑줄을 긋고 메모를 남기면 글씨가 사라져 부담이 없지 않겠느냐는 이야기였다. 이 말을 듣고 제아무리 잉크가 날아가도 글씨를 쓴 자국은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들었지만,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붙였다 떼도 부착면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리무버블(Removable) 스티커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나는 책꾸와는 그리 가까워질 것 같지 않다.

그렇지만 남녀노소 가방에 키링 하나쯤은 달고 다니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세대를 불문하고 퍼진 백꾸처럼 책꾸도 보편적인 현상이 되길 바란다. 꾸민다고 해서 책이 가진 가치가 떨어지거나 의미가 변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매년 더 깊은 바닥에 닿을 것이란 어두운 전망이 계속되는 출판계는 과시적 독서를 ‘빛과 소금’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이렇게라도 책을 구입하고, 또 시선을 모을 수만 있다면 결과적으로 책에도 좋은 일이 아닐까.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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