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이모저모, 국내 첫 국제아동도서전 부산에서 열리다, 자서전, 전공서적, 전공책
국내 첫 국제아동도서전, 부산에서 열리다
조성순(아동문학평론가, 아동문학박사)
2025. 01+02.
국내 최초 ‘국제아동도서전’이라는 의미
국내 최초의 국제아동도서전인 제1회 2024 부산국제아동도서전(이하 도서전)이 2024년 11월 28일부터 12월 1일까지 4일간 개최되었다. 이번 도서전의 주제는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의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1726)에서 걸리버가 세 번째로 여행했던 상상의 나라인 ‘라퓨타(Laputa)’였다. 이는 어린이들의 무한한 상상력과 희망으로 그들만의 즐거운 상상의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의미이다.
제1회 2024 부산국제아동도서전 포스터
이번 도서전에는 134개의 국내 아동 출판사 및 단체를 비롯하여 15개국에서 모인 26개의 해외 출판사 및 단체가 참여하였고, 부산현대미술관, 현대어린이책미술관, 부산도서관 등과 함께 책과 관련된 전시, 작가와의 만남, 세미나 등 총 158개의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도서전으로 1954년 전국도서전시회로 출발해 70년 가까이 이어 오고 있는 서울국제도서전이 있지만, 이번 도서전은 국내 최초로 부산에서 개최된 국제아동도서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이번이 첫 개최였던 만큼 아동 출판사 및 관련 단체와 작가들의 많은 관심이 쏟아졌고, 행사 일정에 맞춰 신간을 선보인 출판사도 있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4일간 약 5만 명이 도서전을 방문하여 도서전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드러났다. 우리나라에서 아동도서전에 관한 높은 관심은 매년 3~4월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만 보더라도 실감할 수 있다.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은 1963년부터 매년 전 세계 90여 개국으로부터 1,400여 개 출판사와 5,000여 명의 출판인,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및 교육 관계자가 참가하여 국제 출판의 최신 정보를 나누고, 도서 출판 및 번역 저작권을 거래한다. 2024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예년에 비해 저작권센터를 찾는 발걸음이 줄을 이었고, 해외에서 국내 책과 작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또한, 젊은 2030세대를 중심으로 책과 같은 텍스트를 소비하는 것이 ‘힙’하다는 ‘텍스트힙(Text-Hip)’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만큼책은 또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한국의 아동도서는 K-콘텐츠의 주역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2020년 백희나 작가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Astrid Lindgren Memorial Award)과 2022년 이수지 작가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일러스트레이션 부문(Hans Christian Andersen Award for Illustration) 수상으로 해외의 관심과 수요가 높은 장르 중 하나다. 이렇게 한국의 그림책은 해외에서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고, 다양한 콘텐츠로 재생산되며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국내 출판사와 작가들이 해외 시장에만 기대어 국외로 나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제적인 관심을 국내로 끌어들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 준비가 된 것은 아닐까. 국내 작가와 출판사가 안정적인 환경에서 창작과 출간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이번 도서전을 개최한 것은 시의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세계적인 아동도서전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국내 잔치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이번 도서전 현장의 이모저모를 돌아보고자 한다.
네 개의 섬과 함께하는 부산국제아동도서전
나는 도서전에 관한 어떠한 정보에도 기대지 않고 부산행 KTX에 몸을 실었다. 이는 편협한 시선이나 발걸음에 의지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서전 전시장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라퓨타’의 이미지였다. 천공의 세계로 실어다 줄 것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도서전이 열리고 있는 곳은 현실의 공간이었다. 국내외 160여 개의 출판사가 참여한 공간이라 하기에는 생각보다 넓지 않았다. 각출판사와 단체는 비슷한 규모의 부스 공간을 책과 그에 맞는 이미지 콘텐츠로 장식하고 있었다. 바로 이 점에서 각 출판사와 단체의 차별화 전략과 고유한 정체성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또한 아동도서전이라는 주제에 맞게 어린이만을 위한 콘텐츠가 눈에 들어왔는데, 아이들이 바닥에 앉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특별한 공간과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진 여러 행사가 돋보였다. 무엇보다 아동도서전의 꽃은 어린이의 참여인데, 도서전 곳곳을 자유롭게 누빌 수 있는 분위기는 어린이에게 ‘바로 내가 주인공’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행사장에서는 어린이 관람객에게 기념품으로 가벼운 배낭과 별모양 머리핀을 선물로 제공하였고, 전시장의 모서리 끝에 각각 위치한 별빛섬, 놀이섬, 바다섬, 하늘섬 총 4개의 부스에서는 북토크와 워크숍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다.
자유롭게 앉아 책을 읽고 쉴 수 있는 내부 공간
출판계 이모저모, 국내 첫 국제아동도서전 부산에서 열리다, 자서전, 전공서적, 전공책
별빛섬과 놀이섬 부스에서는 만들기, 그리기와 같은 체험 활동과 북토크 등 오로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내가 방문했던 주말에는 나다울 작가의 그림책 뮤지컬 액티비티 ‘상상 스위치 켜기!’, 한유진 작가의 체험 활동 ‘나만의 크리스마스 가랜드 만들기’, 다비드 칼리(Davide Cali)의 워크숍 ‘Love Myself: 『완두』(진선아이, 2018)’, 이고은 작가의 가족 체험 활동 ‘우리 가족이 만드는 그림자 속 K요괴 대탐험’, 안미란 작가의 ‘『독도 바닷속으로 와 볼래?』(공저, 봄별, 2023) 북토크’ 등이 진행되었다. 체험 부스는 어린이 키 높이에 맞춰 제작되었으며, 아이들이 마음껏 뒹굴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펼쳐진 공간과 그곳을 채운 선별된 도서들은 도서전의 의미를 더했다.
나다울 작가의 그림책 뮤지컬 액티비티 ‘상상 스위치 켜기!’(좌), 다비드 칼리의 워크숍 ‘Love Myself: 『완두』’(우)
특별했던 기획은 서울예술대학교 학생들이 꾸린 작가와의 만남이었는데, 어린이가 비평가로 참여하여 작가와 질의응답을 하는 자리였다. 기꺼이 어린이를 비평가로 호명하고, 그들의 질문을 받고 답하는 모습에서 어린이를 존중하는 태도가 엿보였다. 이들이 진정한 독자임을 굳이 명명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만든 자리는 일상적인 체험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이 자리에 참여한 어린이들은 책을 매개로 아이 같은 어른 ‘어른이’와 동등한 위치에서 목소리를 내고 인정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어린이 독자가 온전히 설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들을 존중하며 작가와 독자로 연결된 실핏줄을 단단히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더없이 고마운 일이었다.
서울예술대학교 부스에서 진행된 작가와의 만남
(왼쪽부터 김지은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위해준 작가, 강인송 작가, 윤슬빛 작가, 조은비 작가)
도서전에서 진행되는 세미나는 단순히 둘러보고 체험하고 즐기는 것을 넘어 작가와 책 그리고 독자를 연결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담론을 전면에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하늘섬과 바다섬 부스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 주로 진행되었는데, 성황을 이룰 만한 강연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고 아동과 청소년 도서에 대한 담론이 이어졌다. 세미나는 사전 참가 신청으로 이루어졌지만, 현장에서도 들을 수 있도록 여유 공간을 확보하고 벽을 낮춤으로써 밖에서도 편안하게 세미나를 들을 수 있었다는 점도 좋았다.
바다섬 부스에서 진행된 세미나 ‘소년과 청년 사이, 그 복잡다단한 통로에서’
(왼쪽부터 이꽃님 작가, 조우리 작가, 황보름 작가, 오세란 청소년문학평론가)
출판계 이모저모, 국내 첫 국제아동도서전 부산에서 열리다, 자서전, 전공서적, 전공책
나는 ‘그림책이 사회를 담아내는 방법’을 주제로 한 권윤덕 작가의 세미나에 참여했는데, “작가가 사회문제를 담아내는 건 아픈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고통, 빈곤과 같은 사회적 문제를 담은 어린이책을 읽고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낯섦을 극복하고 차별과 편견을 교양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의 시작임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 주었다. 그러니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기꺼이 사회적 문제를 담아내는 책과 마주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토대는 도서전이 열리는 전시장뿐 아니라 부산이라는 도시가 가진 도로와 공간, 공간과 공간을 잇는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도서전 전시장과 거리에서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마주함으로써 사회문화적 장벽이 한껏 낮춰진 느낌이 들었다.
세계적인 아동도서전이 되기 위해 필요한 노력
어떤 행사든 풍요와 빈곤이 함께 자리할 수밖에 없는데, 이번 도서전에서도 그런 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도서전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이수지 작가는 ‘어린이는 모든 색’, 백희나 작가는 ‘어린이와 판타지’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스위스에서 태어나 이탈리아 등에서 활동하는 그림책 작가 다비드 칼리는 도서전 방문의 목적을 “한국 그림책들을 최대한 유럽으로 공수해 가는 것”이라고 밝혔으며, 한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 구상에 관한 가능성을 비치기도 했다. 또 이탈리아의 줄리아 파스토리노(Giulia Pastorino) 작가와 강혜숙 작가의 유쾌한 대담은 어린이의 위치를 한껏 높여 주었다. 그러나 소외되었던 장르도 있었다. 동시(童詩)나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에 대한 세미나가 더 필요해 보였다. 특히나 번역이 쉽지 않은 장르인 동시는 국제도서전의 가교 역할이 필요한 장르가 아닐까.
이번 도서전이 아동도서 출판의 국제적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부산이라는 지역에서 열린 만큼 지역 작가와의 연계 프로그램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국제적으로 토착어의 보존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토착어로 문학 작품을 쓰는 작가들을 재조명하고 있는 시기에 부산이라는 지역은 하나의 콘텐츠로서 그 의미를 새겨볼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부산을 배경으로 한 아동·청소년 작품과 부산 지역 작가들이 함께하는 프로그램 및 국내외 작가들 간의 연계 프로그램의 확장이 필요해 보인다. 여기에 부산 지역 작가들을 위한 별도의 부스가 마련된다면 지역 간 작가의 연대와 협력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 관람객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그림책 활동가
이번 도서전과 서울국제도서전의 차이는 저작권센터와 해외 참가사의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한다. 국내 첫 번째 국제아동도서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부분일 수도 있지만, 향후 발전을 위해서는 좀더 세심한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도서전은 국내 작가와 출판사가 더욱 안정적인 환경에서 창작과 출간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산업 기반을 튼튼히 하고 ‘아시아의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으로 도약하기 위한 목적이 있지만, 저작권센터와 해외 참가사 부스는 유독 눈에 띄게 한가했다. 해외 참가사의 수가 국내 참가사에 비해 현저히 적었고, 해외 출판 관계자의 방문도 미진했다는 점이 주된 이유일 것이다. 국제적인 홍보와 적극적인 협력이 뒷받침되어야 저작권센터의 활발한 활동을 기대할 수 있다.
한편, ‘오늘의 어린이책 다움북클럽’과 그림책 활동가 등 단체의 참여가 돋보였다. 오늘의 어린이책 부스는 비록 판매율이 높지는 않았지만, 연대의 힘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림책 활동가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도서전에 참여했는데, 단체의 이름으로 부스를 운영하며 어린이 독자의 체험 활동을 진행했고, 그와 연계된 도서 소개는 물론 해당 출판사 부스로 안내하는 역할까지 담당했다. 그림책 활동가들이 1인 출판사의 일손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돌아가며 어린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아름다운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독립출판사는 대부분 1인이라는 점에서 연일 역동적으로 부스를 운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독서활동가의 체계적인 시스템을 활용하거나, 출판물의 수가 많지 않은 독립출판사들이 연대하여 부스를 운영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도서전은 책을 매개로 하기 때문에 수도권 중심으로 편중된 출판 관계사들이 무거운 책을 들고 도서전으로 이동해야 하며,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다시 남은 책을 가지고 흩어져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책이라는 매체를 먼저 살피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출판사의 규모에 따라 책정된 도서전의 부스 설치비와 물류 비용 때문에 준비부터 어려움을 호소하는 출판사들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도서전을 찾은 독자들도 무거운 책을 들고 이동해야 하는 어려움은 마찬가지다. 이를 이유로 좋은 책을 앞에 두고도 집어 드는 걸 포기해야만 했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이것은 비단 도서전이 열리는 지역이 부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독자들이 마음껏 책을 보고 살 수 있도록 도서전 내에서 택배 서비스를 운영하는 것은 어떨까.
이번 도서전에서 눈에 띄게 아름다웠던 모습으로 청소년들의 참여를 빼놓을 수 없다. 아동도서전의 꽃이 어린이라면, 청소년은 이를 아름답게 피워내 자라게 하는 주역이다. 청소년 소설 세미나에 참가한 아이들은 질문하는 데에도 거침이 없었는데, 특히 청소년 소설 작가들의 청소년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이 돋보였다. 자신들과 같은 시기를 지나왔을 작가들에게 묻는 그들의 청소년기, 그 시기를 풍성하게 만들어 준 문학 작품에 대한 기대, 그리고 이를 자신의 세계와 통합하려는 모습은 신선했다. 청소년들의 참여를 이끌 프로그램이 조금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년에는 이런 노력들이 한데 모여 더욱 발전한 부산국제아동도서전을 기대해 본다.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