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출판시장 동향: 라띠 꾸말라의 신작과 한류 편승 ‘유사 한국 도서’ 주의보
인도네시아 출판시장은 현재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한 오프라인 독서 열기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현지 작가들의 약진, 그리고 한류 인기에 편승한 유사 도서 문제 등 역동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번 12월 보고서에서는 현지의 생생한 동향을 원문 그대로 상세히 전해드립니다.
12월 인도네시아 출판시장 보고서
코디네이터 | 배동선
출판계 이슈 및 주요 동향
활기찬 자카르타 도서관과 서점, 그리고 낮은 독서율이란 ‘미신’
중부 자카르타 멘뗑 소재 따만 이스마일 마르주키 문화 콤플렉스 내에 위치한 자카르타 도서관(Jakarta Library)은 자카르타 시민들은 물론 외지에서 온 독자들에게도 인기 있는 명소가 되었다.
자카르타 도서관은 쁘라모노 아눙 주지사가 운영 시간을 오후 10시까지 연장한 5월 이후 이용객이 50%나 급증했다. 도서관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11월 24일 기준 약 75만 명의 방문객이 기록되었으며, 그중 약 10%가 수도권 외 지역에서 온 방문객이었다. 다기능 독서 공간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것만으로 대중에게 크게 각광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 현상이다.
틈새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사와 브사르(Sawah Besar)에 있는 뽀스 블록 자카르타(Pos Bloc Jakarta)의 빠짜르 메라(Patjar Merah) 같은 독립 서점을 찾는 경우도 많다.
공공 도서관부터 소규모 서점까지, 인도네시아인들은 좋아하는 책을 찾기 위해 오프라인 공간을 꾸준히 찾고 있는 것을 보면 인도네시아가 독서에 대한 관심이 낮다거나 독서율이 0.1%라는 고정관념에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여러 매체들이 수년 동안 독서에 관심을 가진 인도네시아 국민이 0.1%에 불과하다는 것을 유네스코의 통계라며 인용해 왔지만 실제로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웹사이트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조회해 볼 수 없고 인도네시아의 도서출판 관련 인사들 역시 이 낮은 독서율 주장을 대체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현재는 해체된 국가도서위원회(KBN)의 전 위원장이자 현재 문해력 증진 단체인 투주벨라스리부 풀라우 이마지 재단(Yayasan 17000 Pulau Imaji) 이사장 라우라 방운 쁘린슬루(Laura Bangun Prinsloo)는 인도네시아 독서인구가 전체인구의 0.1%라는 수치를 가장 강력히 반박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유네스코가 애당초 그런 통계를 발표한 적도 없으므로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라우라는 인도네시아인들의 독서 관심이 실제로는 비교적 높은 편이며 특히 오락거리가 제한적인 외딴 지역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하지만 독서 접근성이 여전히 큰 장벽임은 인정했다. 좋은 책이 오지에 도달하는 경우도 드물고, 설령 도달하더라도 운송비 때문에 현지 구매력에 비해 책값이 너무 비싸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런 곳일수록 도서관 설치가 필수적이다.
그녀는 정부가 문해력 향상에 진심이라면 공공 도서관을 설립하고 무료 도서를 배포해야 하며 그렇게 배포되는 도서들이 종교 서적, 학교 교과서에만 국한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과서들은 독서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라띠 꾸말라 작가 신간 <꼴로니(Koloni)> 속 작은 여성혁명
『시가렛걸(Gadis Kretek)』의 라띠 꾸말라 작가는 최근 가장 각광받는 인도네시아의 여성작가다. 최근 『바다이야기(Laut Bercerita)』 100쇄를 찍은 레일라 S. 추도리, 『종이배(Perathu Kertas)』의 디 레스타리, “샤만(Shaman)』의 아유 우타미 등 한국엔 잘 소개되지 않았지만 걸출한 현지 여성 작가들이 즐비한 가운데 라띠 꾸말라 작가가 조명받는 이유는 많은 독자들을 거느리고 있을 뿐 아니라 그녀의 작품 속에 펼쳐지는 페미니즘의 세계가 다른 작가들처럼 처절하거나 비장하지 않고 좀 더 조화롭고 건강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출세작 『시가렛걸』이 2023년 넷플릭스에서 5부작 드라마로 공개되었고 그녀의 남편이자 유명 소설가 에카 꾸르니아완 작가의 작품들이 이미 한국에 번역본이 나온 것에 이어 『시가렛걸』 역시 ‘한세예스24 문화재단’의 동남아문학총서 프로젝트 두 번째 작품들 중 하나로 2026년 한국 출판을 앞두고 있다는 점도 그녀의 최신작에 관심을 갖게 하는 이유다.
신작 『꼴로니(Koloni)』에서 라띠 작가는 여전히 가부장제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페미니스트적 해답을 찾기 위해 작고 비밀스러운 모계 사회를 들여다 모았다. 바로 개미들의 세계다.
‘펭귄 랜덤 하우스 SEA(Penguin Random House SEA)’에서 영어로 번역해 글로벌 배급을 앞두고 있는 『꼴로니』는 개미 군락이 인간에게 파괴된 후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어린 여왕 개미 다로작(Darojak)의 삶을 따라간다. 꼴로니는 당연히 ‘식민지’란 뜻이다.
라티는 인딴 빠라마디타(Intan Paramadhita), 락스미 빠문작(Laksmi Pamuntjak), 레다 가우디아모(Reda Gaudiamo) 등 해외에서 번역본이 출판된 몇 안 되는 인도네시아 여성 작가 중 한 명이 되었다. 하지만 세계가 주목하는 인도네시아 문학은 여전히 남성 작가들의 세계이고 특히 이미 작고한 문호 쁘라무댜 아난따 뚜르, 그리고 라띠의 남편 에카 꾸르니아완이 그 선두에 서 있다.
지난 10월 30일에서 11월 2일까지 발리에서 열린 우붓 작가-독자 페스티벌(UWRT 2025)에 나온 라티는 인간과 개미와 똑같다고 말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개미들의 세상도 항상 바쁘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곤충 우화의 틀을 쓴 듯한 『꼴로니』는 권력, 가부장제, 그리고 사회가 여성들에게 요구하는 고된 역할에 대한 날카롭고 다층적인 비판을 품고 있다. 유사한 기조의 『시가렛걸』이 대체로 직설적, 노골적이었다면 『꼴로니』는 더욱 섬세하게 전개된다.
그녀가 이 소설 속에서 묘사하는 개미들은 당연히 인간들을 빗댄 것이다. 사람들을 등장인물로 해서 3분의 1쯤 썼던 원래의 스토리를 개미들의 이야기로 다시 써서 완성했다는 라띠 작가는 개미들에 대해 공부하고 관찰하면서 개미들에게 인간 사회를 투영하며 계층과 섹스, 생존 등의 문제를 다루었다.
그녀는 개미가 말이 아니라 페로몬으로 의사소통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책 속에 등장하는 개미들의 대화는 따옴표 없이 이탤릭체로 표현했다. 페로몬의 대화를 따옴표를 동원해 ‘대사’로 묘사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녀는 기존의 과학과 자신만의 상상력을 결합해 독창적인 문학적 곤충 사회를 구축했다. 그 결과, 어느 정도 우화이기도 하고 얼마간의 정치적 은유도 담은 소설이 탄생했다. 이 소설은 일견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이나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The Hen Who Dreamed She Could Fly)』을 떠올리게 한다.
여왕이 짊어진 짐 – 정치, 섹스, 그리고 죽음
개미의 세계 속 위계질서는 단순명료하다. 여왕은 번식하고, 수컷은 교미 후 죽으며, 일개미는 그 외의 다른 모든 일들을 처리한다.
<꼴로니>에서 주인공 ‘다로작’은 이러한 시스템 속에 내던져져 생존과 재탄생의 굴레를 헤쳐나가야 한다. 자신의 군집이 파괴된 후 새로운 군집을 찾아 나선 그가 만난 곳은 수컷 개미만 낳는 여왕 ‘게가나’가 이끄는 군집이었다.
개미의 세계에서 여왕은 의심할 여지없이 가장 강력한 존재다. 여왕은 먹이를 모으는 일개미와 오로지 교미를 위해 존재하는 수컷을 낳는다. 하지만 일개미를 낳지 않고 오로지 수컷만 낳는 여왕개미의 군집은 처음부터 파멸할 운명이 예정된 셈이다. 여왕 하나만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여왕이 죽으면 군집 전체가 붕괴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따라붙는다. 그렇다면 누가 군집을 지배해야 하는가?
곤충의 언어로 포장된 이 작품은 권력과 여성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다. <꼴로니> 속 개미의 세계에서 생존은 여왕에게 달려 있다. 개미 군락의 생존과 멸망은 오롯이 여왕의 번식능력에 달려 있다.
하지만 <꼴로니>는 <시가렛걸>이 그렇듯 우울한 소설이 아니다. 이 책이 보여주는 사랑과 평범한 존재들의 일상적 고뇌에 대한 탐구는 개미들의 이야기인데도 심도 깊은 인간미를 전해준다.
자카르타포스트와 인터뷰하던 그녀는 이 소설을 통해 무슨 일이 있어도 인생은 계속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언제 멈춰야 할지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만두와 꿈(Dumplings and Dreams)』 – 14세 작가가 말하는 페미니즘과 권력의 메커니즘
14세 화교 소녀 힐러리 에이미 스리자야(Hillary Aimee Srijaya)가 쓰고, 번역하고, 그림까지 그린 이중 언어 병기 어린이 동화책 『만두와 꿈(Dumplings and Dreams)』은 나름의 진정성과 무게를 담았다.
이 책 속 여주인공은 청나라 귀족 가문의 딸 리웬(Liwen)이다. 전통에 얽매여 있지만, 그녀는 주변 여성들의 격려에 힘입어 만두 만들기기에 대한 열정을 추구한다. 이 이야기는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하지만, 전통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여성들의 목소리가 외면당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도 크게 다를 바 없어 이 책 속 이야기는 전세계 소녀들에게 공감을 얻기 충분하다.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한 그녀의 생생한 스토리텔링과 독자를 사로잡는 일러스트는 14세라는 그녀의 나이가 무색한 성숙함을 보인다.
청나라 시대 중국 생활에 대한 풍부한 묘사는 힐러리가 두 번의 여름 학기 동안 그 시대를 연구하며 리웬의 세계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질감과 의식들을 수집하는 데 시간을 갈아 넣은 결과다. 힐러리는 그들의 옷차림, 난로, 오븐, 당시 구할 수 있었던 향신료들을 조사했고 이를 자신이 정성껏 그린 삽화 속에 포함시켰다.
당시 중국에서는 여성들이 중매를 통해 얼굴도 모르는 배우자와 혼인했고 그 과정에 자기 주장을 전혀 말할 수 없었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당시와는 달리 자신의 어머니와 할머니, 언니 등 주변의 독립적이고 성공한 여성들의 서사와 격려가 힐러리가 쓴 여성 권익에 대한 글의 배경이 되었고 용기를 북돋웠다.
「만두와 꿈」은 단순히 한 소녀가 스스로의 힘으로 나아가는 성장 서사일뿐 아니라 14세의 청소년 작가가 자신의 걸어갈 길을 앞서 닦아준 모든 여성들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
귀족의 딸인 리웬에게 힐러리는 유복한 삶을 살아온 자기 자신을 투영했다. 리웬은 언니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사업을 시작하지만 고아 소녀들에게 기업가의 길을 가르치고, 그들을 고용해 수입과 안정을 제공하며 자신이 받은 것을 사회에 환원한다. 힐러리 역시 사회 정의와 소녀들의 교육을 자신의 소중한 사명으로 여겨 11월 8일 자카르타 25hours 호텔의 더 오드버드(The Oddbird)에서 열린 이 책 출판기념회에서 출판사로부터 받은 선인세를 유니세프에 기부했다. 유니세프엔 소녀들의 교육을 전담하는 부서가 있다.
힐러리는 불과 14세의 나이에 자신의 책을 영어에서 중국어(한자와 한어 병음 포함)로 번역하여 인도네시아 세계기록박물관(MURI)으로부터 ‘최연소 인도네시아어 번역가 겸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신기록 증서를 받았다.
2025년 10월 다시 등장한 이상한 출판사 ‘메드프레스(medpress)’
오프라인 서점을 다니면서 다음과 같은 메드프레스(medpress)가 출판한 한국 도서로 보이는 책들을 발견했다.
메드프레스(medpress)에서 최근 출판한 위의 자기계발서 두 편 『Bintang Yang Jatuh Masih Tetap Bersinar』와 『It’s Okay To Not Be Okay』는 아무래도 이상하다.
원래 『It’s Okay To Not Be Okay』는 한국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영문 제목으로 쓰였고 책 중에서도 같은 제목의 동화책이 이미 존재한다. 하지만 이 책은 자기계발서다. 더욱이 표지에 한국인 이미지들을 잔뜩 넣어 마치 소설이나 연예지처럼 만든 두 책 표에는 한국 책이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듯 불필요해 보이는 한글을 어색하게 욱여넣었다.
작가의 이름도 그렇다. 한대정 또는 한대중 그 어느 쪽도 예스24 작가정보에 등록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해당 도서의 한글 제목도 찾을 수 없었다. 안하니는 예스 24에 조회되지 않을 뿐 아니라 애당초 이름 자체가 사뭇 장난스럽다. 한국 성으로서의 ‘안’은 Ahn이라고 표기하는 게 보통인데 여기서는 앤(Ann)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런 점들이 여기 사용된 이름의 작가들이 실존 인물이 아닐 것이라 추론하게 된다.
원래 메드프레스(medpress)는 족자에 본사를 둔 메디아 프레신도(Media Pressindo) 출판사의 약칭인데 위의 한국 작가(?)들의 책을 낸 동명의 회사와 같은 회사일 것 같지 않다. 메디아 프레신도는 1998년에 설립되어 자기계발, 기업가 비즈니스, 라이프스타일, 픽션, 건축, 건강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을 출판했고 ‘메드프레스 디지털(MedPress Digital)’이라는 이름으로 전자책/디지털 포맷도 이용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위의 이상한 도서를 낸 메드프레스는 일견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 그건 그라메디아에 등재된 메드프레스(medpress)의 출판 도서 목록을 보면 대충 알 수 있다.
위의 그림에서 아래 두 줄은 꽤 중후한 주제의 책들인 데 비해 맨 윗줄의 도서들은 『John Darling』을 제외하고는 전부 이례적으로 가벼운 주제다. 특히 이번에 실물을 확인한 왼쪽 예의 두 편은 한류에 편승해 한국인 작가(로 보이려 한 이)의 유사 한국도서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유사 한국도서를 출판하고 있는 메드프레스가 기존 중후한 테마의 출판작업을 해온 메드프레스는 약칭만 같은 뿐 실제로는 별개의 회사인 것 같다.
이런 의심은 맨 우측의 「Apa Tipe MBTI kamu?」를 보면 더 확실해진다. 닐라 페훼(Nila Phewhe)라는 다소 난해한 이름의 작가 작품으로 되어 있는데 표지에 등장하는 그림들은 MBTI 테스트를 하면 그 결과와 함께 나오는 캐릭터들이다. 해당 캐릭터에 대한 저작권료를 제대로 주고 가져다 쓴 것 같지 않다.
위의 표지들 중 왼쪽은 메드프레스의 도서, 오른쪽은 그라메디아의 GPU출판그룹이 낸 김손아 작가 작품으로 현지 베스트셀러가 되어 있다. 그래서 2025년 8월 뒤늦게 따라 나온 메드프레스의 『Apa Tipe MBTI kamu? (너의 MBTI는?)』는 2022년 8월에 먼저 나온 이 한국 원작도서의 표지를 토대로 대충 비슷하게 구성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메드프레스는 예전 한국 필명을 쓰는 유령작가들을 내세워 한국인이 쓴 것처럼 위장한 책들을 다수 출판한 아낙 헤밧 인도네시아(Anak Hebat Indonesia)를 떠오르게 한다. 아낙 헤밧 인도네시아는 2023년 이후 유령 한국 작가들을 동원한 유사 한국 도서들을 더 이상 출판하고 있지 않고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어색한 한국어 문장을 표지에 넣은 이 출판사의 자기계발서는 아직도 종종 눈에 띈다.
편집자 후기: “오해를 넘어선 독서의 열기, 그리고 텍스트의 정직함에 대하여”
1. ‘독서율 0.1%’라는 수치에 가려진 뜨거운 현장
인도네시아 출판시장의 낮은 독서율이 근거 없는 미신일 수 있다는 대목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밤 10시까지 도서관을 가득 메운 자카르타 시민들의 열기는 시스템과 인프라가 갖춰졌을 때 독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우리 편집자들도 “요즘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통계적 비관론에 빠지기보다, 독자가 머물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텍스트와 공간을 기획하는 데 더 집중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2. 곤충의 언어로 쓴 가장 인간적인 혁명
라띠 꾸말라 작가의 신작 『꼴로니』가 개미의 세계를 빌려 가부장제와 권력을 비판했다는 점은 편집자로서 매우 흥미로운 기획입니다. 특히 ‘페로몬 대화’를 따옴표 없이 이탤릭체로 표현했다는 대목에서 작가의 치밀한 문학적 고집을 느낍니다. 이처럼 독창적인 문학적 장치는 텍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익숙한 주제를 낯설게 보게 만듭니다. 국경을 넘어 우리 독자들에게도 이 섬세한 ‘개미들의 대화’가 전해질 날을 기대해 봅니다.
3. ‘유사 한국 도서’가 던지는 씁쓸한 질문
보고서 말미에 언급된 ‘메드프레스’의 사례는 편집자로서 참으로 씁쓸하면서도 경계해야 할 지점입니다. 한국인인 척 유령 작가를 내세우고 어설픈 한글을 표지에 욱여넣은 도서들이 유통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현지에서 K-콘텐츠의 위상이 얼마나 높은지를 반증합니다. 하지만 이런 ‘무임승차’식 기획은 결국 텍스트의 신뢰를 무너뜨립니다. 편집자란 모름지기 저자의 실체와 텍스트의 정직함을 증명하는 문지기여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가슴에 새깁니다.
글을 마치며 14세 소녀 작가가 선인세를 기부하며 페미니즘을 말하고, 한쪽에서는 한국인을 사칭한 책들이 팔리는 인도네시아 출판시장은 그야말로 ‘혼돈과 성장의 땅’처럼 느껴집니다. 매체와 유통 환경은 저마다 다르지만, 결국 독자에게 가닿는 것은 ‘진심이 담긴 정직한 문장’이어야 한다는 진리를 믿습니다. 오늘도 원고의 한 줄 한 줄을 정성껏 매만집니다.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