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센닥의 회고전, 문해력 위기에 놓인 아이들, 소량책인쇄, 소량책제작, 소량책출판
12월 미국 출판시장 보고서
코디네이터 | 노국희
괴물들(WILD THINGS), 모리스 센닥의 회고전(THE ART OF MORICE SENDAK)
지난해 BBC 문화부는 전 세계 56개국의 그림책 작가, 삽화가, 기자 및 학계 전문가 177명에게 ‘최고의 그림책’을 묻는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2022년 뉴욕 브루클린 도서관에서는 125년 이래 ‘가장 많이 대출된 책’을 발표했다.
올해로 발간 61년째를 맞는 그림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Where the Wild Things Are)》에 대한 찬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964년 ‘그해 예술적으로 뛰어난 그림책’에 수여하는 권위 있는 칼데콧상을 받은 작품. 작가 모리스 센닥(Maurice Sendak)는 수상 소감에서 자신의 책이 너무 무섭다는 일부 독자의 반응에 대해, “이 책은 모두를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아이들을 위해 쓰인 책이죠”라고 말했다. 사실 당시 센닥의
일부 책들은 책의 내용이 교육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를테면 아이를 꾸짖는 엄마를 잡아먹겠다고 하는 주인공의 모습이나 아이가 옷을 입지 않고 벌거벗은 채로 집안을 돌아다니는 장면을 문제 삼았다. 그 때문에 학교 도서관에서는 한때 이 책들을 금지 도서로 지정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꾸준히 독자들의 서가를 지키는 그림책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장르를 넓혀 어린이 오페라와 장편 영화로도 제작되었
다. 콜로라도주 덴버 미술관(Denver Art Museum)에서 그림책 작가 모리스 센닥의 예술 세계를 들여다보는 회고전이 다음 해 2월 17일까지 열린다.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매진 행렬을 이어갈 정도로 열띤 호응을 얻고 있다.
모리스 센닥 재단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진 이번 전시는 지난 2022년 열린 첫 전시를 질적, 양적으로 확장한 후속 작업으로 기획되었다. 우표 크기의 작은 스케치부터 그림책 원화, 어린이 오페라의 무대 장치에 이르기까지 총 450여 가지의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Where the Wild Things Are)》 삽화의 한 장면
모리스 센닥 회고전 전시장 전경
모리스 센닥의 회고전, 문해력 위기에 놓인 아이들, 소량책인쇄, 소량책제작, 소량책출판
모리스 센닥(1928~2012)은 폴란드에서 미국 브루클린으로 옮겨온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친척들로부터 전해 들었던 이야기가 훗날 자신에게 창작의 원천이 되었다고 회고했다. 이 중에는 홀로코스트에서 희생당한 삶에 관한 일화가 중심에 놓인다. 어려서부터 죽음을 간접 체험하는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다고 작가는 고백하기도 했다. 괴물들의 모습들을 자신에게 장난치는 친척들의 이미지에서 착안하였다며 그의 작품 속 캐릭터들은 그의 분신과도 같다고 말한다.
센닥의 첫 직장은 뉴욕의 장난감 상점이었다. 쇼윈도 디스플레이를 담당한 그의 감각을 어린이책 출판 편집자 어슐러 노드스트롬(Ursula Nordstrom)은 눈여겨보았고 그림책 일러스트를 의뢰했다. 이후 센닥의 전문 편집자로서 그가 그림책 작가로 성장해 가는 여정을 함께 했다. 하나의 스타일에 안주하지 않고 협업하는 글 작가에 따라 매번 새로운 양식의 그림체를 만들어낸 점을 센닥의 장점이라 여겼다. 노드스트롬은 문학 주간지 뉴요커(The New Yorker)와의 인터뷰에서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어린아이를 강렬한 감정을 갖는 존재로 그려낸 미국 최초의 그림책”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어린아이가 세상을 느끼는 방식으로 그림책을 만들려고 했다는 센닥의 작업관과도 일치한다.
1960년대 초반까지 많은 그림책들은 어린이들의 행동과 발달을 돕는 교육적인 도구로서 기능해 왔다. 하루의 일과를 어떻게 보내는 것이 모범적인 아이인지와 같은 행동 지침을 안내하는 도덕적인 훈화를 내포했다. 어린 독자들은 센닥의 책에서 항상 조용하고 어른들의 말에 복종하지 않아도 되는 주인공을 만나게 되었다. 엄마와 감정적인 갈등을 겪은 후 아이는 가상 세계로의 모험을 떠나는데 센닥은 아이의 시점에서 부정적인 감정
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에 관한 판단을 배제했다. 자신만의 상상 속에서 창조해 낸 괴물들을 그려서 작가에게 보내기도 할 정도로 이 책에 아이들은 열광했다. 어느 아동 문학 평론가는 괴물이라는 개념은 타자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아이들이 그를 통해 권력과 억압에 관한 대화를 이끌어내는데 유용한 도구가 된다고 말한다.
국제 아동 도서 협회(International Board on Books for Young People)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매번 새로운 차원을 드러내는 다층적인 이야기 구조를 가진 완벽한 그림책이라고 평한다. 무엇보다도 수 세기에 걸쳐 전 세계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솔직하고장난스러운 주인공의 매력을 우선으로 꼽는다. 한 작가는 어린 시절 이 책을 펼칠 때마다 주인공이 한밤에 떠나는 용기, 엄마와 결연히 멀어지는 모습, 그리고 두려움 없이 괴
물들과 맞서는 능력을 동경했다며 어른이 된 후에도 유년기를 다시 경험하게 하는 마법 통로와도 같은 책으로 기억한다.
모리스 센닥 작가와 어린이 오페라 무대 소품
모리스 센닥의 회고전, 문해력 위기에 놓인 아이들, 소량책인쇄, 소량책제작, 소량책출판
문해력 위기에 놓인 아이들
아동 교육이 점차 어린이를 중심에 두는 양육 방식으로 변화해 가면서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감정적인 측면에서도 보호자의 관용을 요구하고 있다. 언어 발달 과정 중에 있는 연령대의 아이들에게 그림책은 자신의 감정 표현을 돕고 상상력 발달에 도움을 준다.
지난 2022년 이래 아동 도서 분야에서 단위 권수 판매 지수가 지속해서 감소세인 흐름을 출판인들은 우려하고 있다. 지난 11월 15일 자 포브스 기사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취학 연령 아이들이 심각한 문해력 위기를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10세 아동의 3분의 1 정도만이 간단한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보였다고 한다. 미국의 13세 아이들 중거의 매일 책 읽는 시간을 갖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14퍼센트로, 이는 십 년 전과 비교해 볼 때 절반으로 줄어든 수치이다. 팬데믹 동안 원격 수업의 여파로 전반적으로 학생들의 문해력 수준이 떨어졌다. 또한 스크린 미디어의 범람으로 책을 접하는 시간이 급감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이전 세대보다 야외 열린 환경에서 또래 집단과의 놀이 문화도 현저히 줄었다. 한편에서는 이러한 사회 흐름의 변화에 맞추어 독자들의 변화를 이끌어낼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기한다. 일례로 1980년대 텔레비전이 미디어의 중심으로 떠오
르던 시기에 <리딩 레인보우(Reading Rainbow)>라는 독서 교육 프로그램 시리즈가 만들어졌다. 1983년 7월부터 2006년 11월까지 공영방송 PBS 채널에서 인기리에 방영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학교 교실과 지역 도서관 사서들에게도 연계적으로 독서 문화를 만들어가는데 다방면으로 도움을 주고받았다. 종영 이후, 2012년에는 같은 이름의 교육 어플리케이션이 새로운 대안 매체로써 개발되었다.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아이가 스스로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행위는 주체성을 경험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양육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수동적이고 하향식 선택에 길들여지는 것보다 독서의 즐거움을 직접적으로 접할 가능성이 크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체득하는 과정은 자신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는 것과 같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독서 본연의 재미보다도 다른 교과와 다를 바 없는 과제물처럼 여기는 현재의 분위기를 교육자들은 지
적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독서를 통해 자기 성찰의 시간을 만들고 건강한 자아 개념을 확립해 가는 길은 요원해 보인다. 아이들의 관심을 주목할 수 있는 양질의 교육 프로그램을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만들어가는 데 공론이 모인다. 숏폼을 즐기는 이들에게 책을 대척점에 둘 것이 아니라 참신한 방안의 교차점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말한다.
팬데믹 동안 도서관이 문을 닫아 종이책 도서 대출이 불가해졌을 때, 뉴욕의 공공도서관 사서는 그림책을 읽어주는 유튜브를 개설하여 좋은 반응을 이끌었다. 다양한 소통의 방식을 활용하여 독자와의 접점을 만들어낸 경우이다. 오디오북 등 여러 매체로 같은 내용의 도서를 접할 수 있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된다. 또한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작가가 학교나 지역 축제에 방문하여 보다 가까이 소통하는 시간은 직접적인 영
향력을 끼치는 계기가 된다. 지역 도서관과 동네 서점에서는 주말 아침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이야기 시간을 마련한다. 부모의 무릎에 앉아 아이들은 잠이 덜 깬 얼굴로 또 다른 꿈을 꾼다. 그림책은 어린 시절 다양성의 가치를 접하는 최초의 세계가 된다. 여러 문화에 대한 열린 관점을 안내한다.
올해 칼데콧 영예상을 수상한《 용을 찾아서(The Truth about Dragons)》는 동양과 서양의 서로 다른 개념을 상상의 동물로 은유하여 그려내었다. 중국계 미국인 글 작가 줄리 렁(Julie Leung)과 한국계 일러스트 작가 차호윤(Hanna Cha)의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아이들에게 친근한 소재인 용을 찾아 떠나는 모험을 통해서 다른 두 문화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개에게 책을 읽어주는 도서관
병원에서 환자들의 정서적 치유를 돕기 위해 고안된 심리 치료견(Therapy Dog)이 학교와 요양원 그리고 이제는 공공도서관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다. 불안 장애나 우울증,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이들이 정상적인 관계 맺음이 어려운 상황에서 심리 치료견들은 이들의 곁을 지킨다. 환자들의 스트레스 지수를 낮추고 정서적인 안정감을 만들어내는 데치료견들의 역할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고도의 훈련을 받은 이들은 심리 치료견을 관리하는 담당자와 동행한다. 공공도서관에서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개에게 책 읽어주기>(Read to a Dog)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독서를 어려워하거나 피하는 아이들을 위해 친근한 모습의 치료견을 열람실에 일정시간 상주시킨다. 지역 도서관 재량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개는 일주일 지정 요일에 한 시간 정도 진행된다. 프로그램 참가를 원하는 희망자를 사전 예약으로 신청받고 있으며 한 사람당 독서 시간은 대략 10분으로 주어진다. 아이들은 아동 열람실에 대기하고 있는 특별 게스트에게 자신이 들려주고 싶은 그림책을 읽어준다. 큰 소리로 책을 낭독하는 경험은 아이의 자신감을 키워준다. 또한 아이들은 집중력을 향상하고 치료견을 쓰다듬으며 친밀감을 얻는 등 정서적인 발달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전한다. 일부 도서관에서 시범적으로 도입되었던 프로그램이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가면서 점차 전국적으로 확대 되어 가는 추세이다. 보니 가머스(Bonnie Garmus)의 베스트셀러 소설《 레슨 인 케미스트리(Lessons in Chemistry)》에서 주인공은 자기 반려견이 단어를 습득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는다. 소설이 전개되는 동안 반려견은 총 942개의 단어를 익히게 된다. 아이들의 음성을 잠자코 경청하는 심리 치료견에게도 치유와 학습이 양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심리 치료견에게 책을 읽어주는 아이들
모리스 센닥의 회고전, 문해력 위기에 놓인 아이들, 소량책인쇄, 소량책제작, 소량책출판
* 이미지 출처
《Maurice Sendak Foundation, Denver Art Museum, Sonoma County Libarry
상상 속을 항해하는 해적선, 826 발렌시아
어린이들의 문해력을 키우고 글쓰기의 흥미를 북돋기 위한 비영리 문화 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올해 뉴베리상(The Newbery Medal) 수상작《 눈과 보이지 않는(The Eyes and the Impossible)》의 글 작가 데이브 에거스(Dave Eggers)는 2002년 샌프란시스코에 826 발렌시아(826 Valencia)를 교육자 동료와 함께 시작했다. 건물 지번을 비영리 단체의 이름으로 정했는데 샌프란시스코 내에서 경제적으로 낙후된 라틴계 가족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상대적으로 정규 교과 외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기 어려운 아이들에게 방과 후 숙제를 도와주거나 보충 학습을 함께하는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 주말에는 스무 명 남짓의 아이들이 대여섯 명으로 한 팀을 이루어 공동 창작하는 글쓰기 모임도 기획하였다. 지역 초등학교와 연계하는 필드 트립 프로그램도 만들어 운영한다. 한 학급별로 826 발렌시아를 찾아 교외 문학 활동을 함께 하거나 역으로 단체 내 자원봉사자들이 학교를 방문하여 아이들에게 특별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자원봉사자들은 대학생, 지역 작가, 은퇴 교사, 지역 주민, 테크 기업 개발자 등 다양한 직업군과 연령대의 이들로 이루어졌다. 입시 철이 되면 이들은 학생들의 진로 상담을 돕기도 하고 자기소개서와 진학 지원서를 첨삭하는 등 실용적인 글쓰기 교실도 마련한다. 지역 내 문학 축제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어린이 작가들을 위한 연례행사도 마련한다. 아이들은 무대에 올라 자신이 쓴 시와 글을 낭송하고 독자들과 교감한다. 매년 이들의 작품을 문집으로 만들어 판매하며 단체의 기금 마련을 위한 후원을 유도하기도 한다. 정기적으로 자원봉사자들이 화합하는 시간을 마련한다. 더 나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수업 도중 겪었던 어려움들을 함께 해결해 간다. 현재 시카고, 뉴욕 등 미국 내 아홉 개의 지역으로 826 발렌시아가 확장되었다. 저소득층 지역 아동들을 위한 전국적인 규모의 글쓰기 문화 단체로 성장해 가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826 발렌시아 내부는 해적선을 모티브로 한다. 아이들은 이 공간에 머무는 동안 잠시나마 망망대해를 떠도는 애꾸눈 선장이 될 수 있다. 혹은 깊은 바닷속 물고기나 낯선 새가 되어 상상의 세계를 항해한다. 작가 데이브 에거스는 비밀의 공간인 다락에 숨어 목소리만으로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글쓰기에 궁리하던 아이들은 깜짝 놀라며 응답한다. “지금 어디에 계세요? 정말 선장이 맞아요?” 질문을 던지며 키득키득 웃는다. 두 시간 남짓한 글쓰기 시간이 몰입감과 박진감 있게 흘러간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게 하는 마음의 눈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작은 손들이 종이에 써 내려가는 글들을 함께 다듬어간다. 그동안에 일러스트 자원봉사자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맞추어 그림을 즉석에서 그린다. 수정이 완료되면 재빨리 인쇄기가 돌아가고 수업에 참여한 아이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한 권의 더미북으로 완성된 것을 본다. 아이들은 겉표지에 비어 있는 작가명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책가방 속에 그림책과 함께 아직은 정의할 수 없는 무형의 무언가가 담긴다.
* 출처
《Kids Can’t Read Book》 Ryan Craig, Forbes, 2024.11.15
《Wondering Where the Wild Things Are? They’re At the Denver Art Museum》 Chadd Scott, Forbes, 2024.10.18
《How to Make Reading Fun Again》 Joanne O’Sullivan, Publishers Weekly, 2024.9.6
《Where the Wild Things Are: The greatest children’s book ever》 Imogen Carter, BBC Culture Book Club, 2023.5.23
《Among the Wild Things: Maurice Sendak’s fantastic imagination》 Nat Hentoff, The New Yorker, 1966.1.14
《Science of Success: How Barnes & Noble Is Redesigning the Bookstore Chain》 The Wall Street Journal Podcast, 2024.4.26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