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출판시장 분석: 박찬욱의 세계와 K-북 아동문학 ‘깜냥’의 열풍
최근 러시아 출판시장 내에서 한국 콘텐츠의 위상이 영화와 문학의 긴밀한 연동을 통해 한층 강화되고 있습니다. 본 보고서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도서 출간 소식부터 K-아동문학의 약진까지, 12월 러시아 현지의 생생한 동향을 원문 그대로 전해드립니다.
12월 러시아 출판시장 보고서
코디네이터 | 우신혜
러시아에서 열풍 조짐 보이는 박찬욱의 세계: 영화 《어쩔 수가 없다》 개봉 및 박찬욱 《박찬욱의 몽타주》 동시 출간
2025년 12월, 박찬욱 감독의 신작 영화 《어쩔 수가 없다》가 러시아에서 공식 개봉했다. 또한 감독 자신이 집필한 《박찬욱의 몽타주》가 ‘봄보라’ 출판사’ (‘엑스모’ 출판 그룹 소속)에서 출간 되었다.
공식 개봉은 12월 4일,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카잔 등 주요 도시의 상업극장과 아트시어터에서 동시 상영을 시작했다. 개봉 전 모스크바의 대표적 영화관《옥타브리》(Октябрь)에서 스페셜 프리미어가 진행되어 평단·관객의 관심을 환기했다. 타타르스탄 공화국의 수도 카잔 등 지역 체인의 상영 편성도 확인되며, 단일 아트하우스 중심이 아닌 비교적 넓은 유통 범위를 확보한 점이 특징이다. 극장별 편성에 따라 상이하며, 현재 공식 통합 종료일은 공지되지 않은 상태다. 일반적으로 러시아 상영 일정은 초기 흥행과 스크린 가용성에 따라 탄력적으로 변경된다. 작품 자체가 박찬욱 특유의 긴장감과 인간 심리에 대한 밀도 있는 시선으로 구성되어 있어, 기존 팬층뿐 아니라 러시아 스릴러 영화 관객들에게도 어필하는 분위기다.
이와 더불어 출간된 《박찬욱의 몽타주》는 영화 개봉과 맞물려 러시아 출판시장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책은 박찬욱 감독이 직접 집필한 글을 바탕으로 그의 영화적 미학, 창작 방식, 그리고 작품에 스며 있는 사회적 메시지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러시아 출판사 ‘봄보라'(Бомбора)에서 발행한 이 책은 영화 팬들이 스크린 너머의 박찬욱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지적인 통로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2월 2일, 주러시아 한국문화원은 《박찬욱의 몽타주》 출간을 기념하여 북토크와 함께 영화 관련 토크 행사를 개최했다. 행사에는 영화 기자이자 K-movie club 편집장 에카테리나 카라쇼바 (Екатери나 Карасёва), 배급사 ‘볼가’의 세르게이 네크라소프(Cepreй Некрасов), 영화학 연구자 타티아나 보고뜨료바(Tатьяна Богатырёва), 그리고 박찬욱 책 번역가 우신혜가 연사로 참여해 다양한 시각을 공유했다.
연사들은 박찬욱 감독 작품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를 나누었다. 특히 러시아 관객이 그의 영화에서 읽어내는 정서와 미학이 한국 관객과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 또 최근 러시아에서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영향력이 어떻게 확장되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도 이어졌다. 영화학 연구자는 박찬욱의 작품을 관통하는 반복적 이미지 욕망, 죄책감, 폭력, 심리적 균열ㅡ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감수성과 결합될 때 어떤 문화적 흡수력을 가지는지 설명했고, 영화 기자는 이번 영화가 러시아 극장가에서 가지는 예술·장르적 위치에 대해 평가했다.
책 번역을 맡은 번역가 우신혜는 번역 과정에서 감독의 어조와 미학적 언어를 러시아어로 전달하는 과정의 어려움과 보람을 짧게 언급했다. 또한 박찬욱 감독의 작품 속에 숨겨져 있는 ‘맛있는 언어’, 봉준호와 박찬욱의 닮은 점과 차이, 박찬욱 영화의 감상방법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러시아 내 한국 영화와 출판 콘텐츠의 확산 흐름 속에서, 2025년 12월 7일 모스크바의 대표적인 문화공관 트레치야코프크키 미술관 영화상영관에서 《어쩔 수가 없다》 특별 상영회 및 책 《박찬욱의 몽타주》 소개 북토크가 개최 되었다. 연사로는 영화 기자 예카테리나 카라쇼바와 번역가 우신혜가 참가할 예정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행사는 예정된 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영화 상영회 도중, “건물 내 긴급 상황”으로 인해 방문객 및 직원 전원을 즉시 대피시켰으며, 시설 전체가 일시 폐쇄되었다. 갤러리 측은 이후 재개 시점을 알리겠다며, 티켓을 소지한 관람객들에게는 14일 이내에 재방문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공지를 내놓았다.
시사점 및 결론
이번 행사와 영화·출판 동시 전개는 러시아 문화 시장에서 한국 창작자가 갖는 영향력이 단순히 한 순간의 관심이 아니라, 콘텐츠 간의 연동을 통해 보다 구조적인 방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영화와 책이 같은 시기에 소비되면서, 관객이 콘텐츠를 “보고 끝내는” 단계에서 나아가 “읽고 해석하고 토론하는” 단계로 확장되는 흐름은 주목할 만하다.
또한, 주러시아한국문화원과 현지 배급·출판사가 긴밀히 협력하여 한국 콘텐츠를 소개한 사례라는 점에서, 향후 한국 영화·출판 콘텐츠의 해외 확산에 유익한 모델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례는 한국 창작자 중심의 콘텐츠가 비영어권 시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독자적 입지를 다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Non/fiction 국제지적문학 박람회에서 소개 된 한국 도서
2025년 12월 4일부터 7일까지 모스크바 ‘고스찌늬 드보르’ 전시관에서 제27회 Non/Fiction 지적 문학 및 논픽션 도서 박람회가 개최되었다. 이번 행사에서는 한국 출판계의 몇 가지 저작이 소개되었다. 그중 특히 눈에 띄었던 세 권의 한국 관련 도서를 중심으로, 행사 내용과 해당 책들의 주요 특징을 정리한다.
김주혜의 ‘밤새들의 도시’ 북토크
2025년 12월 4일, Non/Fiction 도서 박람회 프로그램 일환으로 김주혜 작가의 《밤새들의 도시》의 러시아어판(출판사 Inspiria) 공개 프레젠테이션 및 북토크 행사가 진행되었다. 작가 김주혜, 번역가 키릴 바띄긴 (Кирилл Батыгин), 편집자 이리나 크릴로바 (Ирина Крылова)가 함께했다. 이번 북토크에서는 작품의 출간 배경, 러시아 발레와 한국 작가의 감성이 만나는 지점, 번역 과정에서의 언어적 도전, 그리고 현대 세계 속에서 예술의 의미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특히 김주혜는 어린 시절부터 러시아 문학과 클래식 음악, 발레를 사랑해 왔으며, 이번 작품은 자신이 겪었던 내면의 예술적 열망과 고통, 그리고 문화 간 경계를 넘는 시도로 탄생했다고 말했다.
김주혜 작가는 러시아 독자들과의 만남에 대해 “러시아는 나에게 언제나 환영받는 공간”이라며, 발레와 음악, 문학을 공유할 수 있는 문화적 공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밤새들의 도시》는 예술가의 삶과 희생, 그리고 그 너머의 재기를 통해, 예술이 가진 치유력과 파괴력, 그리고 삶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김주혜가 발레와 클래식 음악, 러시아 문화에 바친 오랜 애정과 경험은, 이 소설을 단지 하나의 이야기로서가 아니라 문화 간 교류와 정체성, 예술의 본질을 탐구하는 복합적 장으로 만든다. 특히 러시아 독자들과의 북토크,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이 작품이 단순히 ‘한국의 소설’이 아니라 러시아 문화 안에서 공감되고 논의될 수 있는 ‘공동의 문화자산’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은 매우 의미가 크다.
한편, 지난 2024년 10월 작가 김주혜가 받은 ‘야스나야 폴랴나’ 톨스토이 문학상, 그리고 그의 국제적 배경과 활동은, 한국 문학이 비영어권 세계와 보다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한국 어린이 도서, 러시아에서 유행: 홍민정 작가 《고양이 해결사 깜냥》 출판
또한, 한국 아동문학을 대표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인 홍민정 작가의 《고양이 해결사 깜냥》이 러시아 독자들에게 정식으로 소개되었다. 러시아어판 제목 ≪Кот на ватрушке≫ 로 출간된 이 책은, 한국적 정서와 캐릭터를 바탕으로하면서도 러시아 어린이 독자들이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현지화된 타이틀을 사용해 특히 많은 관심을 모았다.
《고양이 해결사 깜냥》은 한국에서 이미 탄탄한 독자층을 확보한 인기 아동문학 시리즈로, 동네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을 재치 있게 해결하는 고양이 “깜냥”의 따뜻한 활약을 그린 작품이다. 친구를 돕고, 갈등을 중재하며, 때로는 어른들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지혜롭게 풀어가는 깜냥의 모습은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높은 공감을 얻고 있다.
이번 박람회에서는 러시아 어린이책 전문가와 출판 관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러시아판 출간 소개 및 어린이 문학 세션에서 이 책이 다뤄졌다. 특히 러시아어 번역가는 깜냥 특유의 대사 톤, 고양이 캐릭터가 가진 귀여움과 유머를 어떻게 러시아 문화에 맞게 옮겼는지 설명하며 번역 과정의 어려움과 즐거움을 공유했다. 러시아 부모들과 어린이 독자들은 친근한 고양이 캐릭터와 따뜻한 이야기 구성에 큰 관심을 보였다. 책에서 중심적으로 다뤄지는 우정, 공동체, 협력의 메시지는 문화권을 초월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가치로 평가되었다.
한국예술학자 엘레나 호흘로바의 신작 《조선 양반의 사생활》 북토크
엘레나 호흘로바는 러시아의 한국 예술학자로, 한국의 미술사 및 조선 시대 문화사에 깊은 관심을 가진 학자이다. 그녀는 러시아 국립 고등경제대학교 동양학부에서 동아시아 미술사를 가르치며, 수년간 한국 미술과 역사에 관한 자료를 조사해 왔다. 그녀는 한국의 전통 회화, 민화, 궁중 예술, 조선 시대 사대부의 생활 등 다양한 주제를 학술적으로 조명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얻은 지식과 연구 성과를 일반 독자도 접근하기 쉬운 형태로 정리하여 러시아어권에 소개하는 데 힘써왔다. 러시아 내 여러 학술 강연, 방송, 출판 활동을 통해 “한국은 영화나 드라마 뿐 아니라 전통 미술과 역사에서도 풍부한 문화유산을 가진 나라”라는 인식을 퍼뜨리려 노력하고 있다.
지난 12월 6일 Non/Fiction 도서 박람회 프로그램 일환으로 호흘로바 교수의 또 하나의 중요한 신작이 소개 되었다. 바로 러시아 출판사 ‘만, 이바노프, 페르베르’ (Манн, Иванов, Фербер) 에서 2025년에 출간된 《조선 양반의 사생활》(Частная жизнь корейской знати. Запреты, положение женщин, быт и идеалы эпохи Чосон). 이 책은 조선 시대 지배계층의 사생활, 사회 구조, 여성의 지위, 가족과 혼인 제도, 의식주, 관습, 문화적 이상 등 조선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실제 삶을 역사적 그림과 문헌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연구서다. 이 책은 드라마나 소설에서 흔히 소비되는 로맨틱하거나 미화된 ‘조선 이미지’와는 거리를 두고, 실제 당시 사람들의 삶과 사회 구조, 계급과 성별 역할 분담, 가족과 사회 규범을 객관적으로 탐구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책 속에는 조선 양반 가정의 일상, 예절, 의복, 주거 양식, 혼례와 의식, 남녀의 역할, 사회적 책임과 제약, 신분제도와 계급 구조 등 다양한 측면이 학술적 근거를 바탕으로 정리되어 있다. 이로써 조선 시대가 단순히 과거 왕조의 낭만적 배경이 아니라 – 실제 사람들이 살고 호흡했던 사회였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한편, 2025년 11월, 러시아 모스크바의 주러시아 한국문화원에서는 이 책의 출간을 기념한 공개 강연이 열렸다. 저자인 호흘로바 교수는 자료 수집과 집필 과정, 조선 사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가치, 그리고 이 책이 러시아 독자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직접 설명했다. 행사에는 약 100여 명이 참석했다는 보도도 있다. 그 외에 엘레나 호흘로바의 저서로는 《한국 예술사》(Искусство Корpen)와 《한국 미술사 핵심》(Главное в истории искусство Кореи)가 있다.
편집자 후기: “스크린에서 페이지로, 국경을 넘는 텍스트의 확장성”
1. 보고 끝내는 콘텐츠에서 ‘읽고 해석하는’ 콘텐츠로
박찬욱 감독의 신작 영화 개봉과 맞춰 그의 저서 『박찬욱의 몽타주』가 러시아어로 동시 출간되었다는 소식은 편집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영화라는 강렬한 시각적 경험이 책이라는 지적 통로를 만날 때, 관객은 비로소 능동적인 ‘해석자’가 됩니다. 스크린의 여운을 텍스트로 붙잡아두고 싶어 하는 독자들의 욕구는 국경을 막론하고 편집자가 가장 예민하게 포착해야 할 지점임을 다시금 느낍니다.
2. 문화적 공동 자산이 된 한국 소설
톨스토이 문학상을 받은 김주혜 작가의 북토크 소식도 인상적입니다. 러시아 발레와 음악을 사랑하는 한국 작가의 감성이 러시아 독자들에게 ‘공동의 문화 자산’으로 받아들여졌다는 대목에서 편집의 본질을 봅니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서로 다른 문화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보편적인 예술의 치유력을 전달하는 문장을 다듬는 일. 그것이 우리 편집자들이 매일 하는 고민의 종착지임을 깨닫습니다.
3.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아동 문학으로
『고양이 해결사 깜냥』이 러시아어판 『단팥빵 위의 고양이(Кот 나 ватрушке)』로 현지화되어 사랑받는 모습은 반가운 자극이 됩니다. 한국 특유의 다정한 정서와 ‘깜냥’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이 러시아 어린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 것은, 번역과 편집 과정에서 원작의 ‘맛있는 언어’를 살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손길이 닿았을지 짐작하게 합니다.
글을 마치며 머나먼 러시아 출판시장의 서점가에서 우리 작가들의 이름이 불리고, 조선 시대의 사생활을 탐구하는 학술서가 북토크의 주인공이 되는 풍경을 그려봅니다. 유통 환경이 변하고 기술이 발전해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정성껏 매만진 한 권의 책’**이라는 진리를 믿으며, 오늘도 묵묵히 원고의 다음 페이지를 넘깁니다.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