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소설이다] 소설 시장의 위축, 그럼에도 선전한 작가들, 소장본제작, 소장용책, 소장용책만들기

[다시 소설이다] 소설 시장의 위축, 그럼에도 선전한 작가들, 소장본제작, 소장용책, 소장용책만들기

 

[다시 소설이다] 소설 시장의 위축, 그럼에도 선전한 작가들
황지윤(<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2025. 01+02.

 

 

독서율 하락, 위태로운 문학상·문학 잡지

필자는 문화부 담당 기자로 문학 관련 관계자들을 자주 만난다. 그때마다 이야기의 갈래는 다양했으나 빠지지 않는 내용이 있었다. 다들 “문학의 위상이 쪼그라들었다.”거나 “문학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이 말하는 문학의 ‘위상’과 ‘영향력’이 정확히 무엇인지, ‘예전’이 과연 언제를 가리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다만, 소설 단행본을 주로 펴내는 문학 출판사들이 책만큼이나 ‘컬래버 상품’ 등 각종 ‘굿즈’ 판매에 열을 올리는 모습들을 보며 소설만으로는 독자를 사로잡을 수 없다는 것을 짐작할 뿐이었다. 그리고 최근, 짐작을 넘어 현재 한국 소설 시장이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52년 전통의 월간 문예지 <문학사상>이 경영난 때문에 폐간 기로에 섰다가 부영 그룹에 인수되었으나 재창간은 여전히 표류 중이고, 문학사상사가 주관하는 국내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이상문학상이 다산북스에 매각된 것이다.

숫자로 보니 상황은 더욱 명확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24년 4월에 발표한 〈2023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간 종이책·전자책·오디오북 등을 한 권이라도 읽은 종합독서율은 43%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국민 10명 중 6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뜻이다. 독서율은 지난 10년간 내리막길을 걸어왔고 출판사 영업이익도 덩달아 감소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2023년 주요 출판사 71곳의 영업이익은 1136억 원으로 전년 대비 42.4% 감소했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문학 잡지, 신간 도서를 두루 챙겨 읽는 ‘진성 문학 독자’는 1만 명 미만”이라고 냉정하게 진단했다. 한국 소설 단행본 기준, 1만 부만 나가도 썩 나쁘지 않은 성적표라는 뜻이다.

 

 

문학 시장에 ‘어닝 서프라이즈(Earning Surprise)’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의 통계 자료를 보면, 지난 3년간 ‘소설 및 연관 상품’의 월별 판매량은 60만 부안팎에서 움직였다. 2024년에도 예년보다 조금 덜 팔리거나 그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는 듯 보였다.

또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발간하는 <판매데이터 리포트>에 따르면, 2024년 1분기(1~3월) ‘소설 및 연관 상품’의 판매액은 239억 5742만 3,781원으로 직전 분기(2023년 10~12월) 대비 17.11%가 감소했다. 2024년 2분기(4~6월) 판매액은 235억 9395만 5,461원으로 1분기보다 1.52% 감소했다. 큰 차이가 없는 고만고만한 수치였다.

2022~2024년 월별 ‘소설 및 연관 상품’ 판매량 통계
(단위: 권, 만 원)

 

그러나 한국 문학 시장, 그중에서도 소설 분야에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났다. 2024년 10월, 기업의 실적이 시장의 예상치를 크게 웃돌아 주가 상승에 미치는 긍정적 신호를 일컫는 ‘어닝 서프라이즈’가 있었다. 지난 10월 10일 노벨문학상 발표 이후 한강 작가의 작품이 불티나게 팔린 것이다.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문을 열기도 전에 대기하는 사람들이 긴 줄을 늘어서는 ‘오픈 런(Open Run)’ 현상이 빚어졌다. 노벨문학상이 발표된 목요일 저녁부터 금요일 저녁까지 한강 작가의 책이 매대에 놓이는 대로 사라지면서 품귀 현상도 일어났다. 다음 날 토요일 오전에는 전국 서점에서 품절 사태가 벌어져 출판사들은 인쇄소에 ‘긴급 SOS’를 보내 주말 내내 책을 찍어냈다. 이날 필자도 파주 인쇄 공장 2곳(영신사, 천광인쇄소)을 찾아 기사를 작성했다. 주말을 반납한 특근이었지만, 인쇄소 직원들의 표정은 밝았다. “한국인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와 자부심이 넘친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오랜만에 일이 많아서 좋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어쩌면 후자가 전자보다 더 우선이었는지도 모른다.

 

 

한강의 노벨문학상이 출판 시장에 미친 영향

2024년 교보문고의 자료를 보면, 소설의 위상이 그리 높지 않다는 슬픈 결론을 내리게 된다. 한강 작가가 지난 12월 초 스웨덴 한림원의 기자 간담회에서 “문학은 언제나 우리에게 여분의 것이 아니고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지만, 교보문고 월간 종합 베스트셀러 100종 중 소설은 20종 안팎에 불과했다.

 

2024 교보문고 월간 종합 베스트셀러 100종 중 소설 비중

 

2024년 1월과 3월에는 100위 안에 오른 소설이 15종뿐이었다. 10월에는 소설 34종이 100위 순위권에 진입했지만, 1위 『소년이 온다』(창비, 2014), 2위 『채식주의자』(창비, 2007), 3위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2021), 5위 『흰』(난다, 2016), 6위 『희랍어 시간』(문학동네, 2011), 8위 『디 에센셜:한강』(문학동네, 2022) 등 상위권은 모두 한강 작가의 작품이었다. 매년 10월에는 ‘노벨문학상 특수’가 있기 마련이지만, 2024년은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온 만큼 그 열기가 더욱 거셌다.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침체되었던 소설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은 사실이다. 예스24에 따르면, 한강 작가의 대표작인 『소년이 온다』는 지난 12월 셋째 주 베스트셀러 종합 1위를 기록하며 10주 연속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한강 작가의 작품 외 주목할 만한 한국 소설들’ 리스트가 공유되었고 독서 인증 릴레이도 이어졌다.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 창비 등 한강 작가의 작품을 출간한 출판사들에게 ‘노벨문학상 특수’는 단비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노벨문학상 특수의 온기가 한국 소설 전반으로 넓게 퍼지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좀처럼 쉽게 오지 않던 문학에 대한 열기가 ‘반짝 관심’으로 그칠 것을 우려하는 문단·출판 관계자들이 적지 않았다. ‘한강 쏠림 현상’ 때문에 10월 이후에 출간을 주저하는 출판사들도 상당했다. 실제 취재 과정에서 출판 관계자로부터 “내려던 책을 조금 미루려 한다.”거나 “한강 작가의 작품 외의 다른 신간도 눈여겨봐 달라.”는 절절한 요청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선전하는 소설가

현실은 이러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선전한 소설가들을 주목하고자 한다. 지난여름 가문 한국 소설 시장에 단비를 내린 유명 소설가 두 명이 있다. 김애란과 정유정 작가이다. 김애란 작가는 『두근두근 내인생』(창비, 2011) 이후 13년 만에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문학동네, 2024)을 발표했고, 정유정 작가는 『완전한 행복』(은행나무, 2021) 이후 3년 만에 장편소설 『영원한 천국』(은행나무, 2024)을 출간했다. 2024년 8월,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두 소설은 출간하자마자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에서 2위와 1위를 기록했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 『영원한 천국』

[다시 소설이다] 소설 시장의 위축, 그럼에도 선전한 작가들, 소장본제작, 소장용책, 소장용책만들기

 

출간 전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김애란 작가는 “제가 생산성이 비교적 낮은 작가임에도 반겨주시고 기다려주셔서 그저 감사하다.”며 독자들의 사랑에 감사를 표했다. 많은 독자들이 그의 작품을 간절히 기다려온 것이 예약 판매량으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12월에 <조선일보>가 각 서점 MD 13명, 동네책방 운영자 20명 등을 대상으로 진행한 ‘올해의 책&저자’ 설문 결과에서도 김애란 작가를 주목한 이들이 많았다. 시집서점 위트앤시니컬 대표인 유희경 시인은 “명불허전. 네 글자로 요약될 만한, 우리세대의 간판 소설가 김애란의 장편소설”이라며 “서사는 더 견고해졌고 감각적인 문장은 여전하다. 무엇보다 성별, 연령 구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내어줄 수 있는 책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반갑다.”라며 그의 장편소설을 올해의 책으로 꼽았다.

정유정 작가 역시 ‘스타 작가’의 면모를 뽐냈다. 『영원한 천국』은 초판만 7만 5,000부를 찍었다. 인터뷰에서 그는 “닷새간 언론사 13곳과 1:1 릴레이 인터뷰가 잡혔다.”라고 알려줬다. 매일 유산소와 무산소 운동을 각각 한 시간씩 한다는 그는 가뿐히 초판 한정 5,000부에 친필 사인을 했다.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그의 소설은 꽤 두터운 분량(524쪽)임에도 빠르게 읽히는 매력이 있다. 한 독자는 필자에게 “정유정 작가는 실망하기 쉽지 않죠. 일단 재밌잖아요.”라는 말로 그의 소설을 평가했다. 각종 OTT와 쇼츠가 차고 넘치는, ‘도둑맞은 집중력’의 시대에 소설을 읽는 것이 독자에게 엔터테인먼트로 여겨진다는 것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신나는 일이다. 그렇기에 정유정 작가의 흥행을 보는 것은 즐겁다.

최진영 작가도 <조선일보>가 설문한 ‘올해의 책&저자’ 설문에서 자주 거론됐다. 2023년 장편소설 『단한 사람』(한겨레출판사)을 시작으로, 2024년 『오로라』(위즈덤하우스), 『쓰게 될 것』(안온북스), 산문집 『어떤 비밀』(난다)까지 펴내며 등단 20주년을 앞두고 왕성하게 쓰고 있다. 그는 지난 7월에 게재한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지금 제 나이로 직장에 있었다면 차장 정도 되지 않을까. 이때가 제일 일이 많지않은가요?”라고 되물으며 꾸준한 작품 발표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구환회 교보문고 MD는 최진영 작가에 대해 “짧은 소설, 소설집, 복간본, 산문으로 부지런히 독자를 만났다. 역주행 신화를 쓰고 있는 『구의 증명』(은행나무, 2023)도 있다.”며 “한국 소설 애독자에게 가장 친숙한 이름이 된 작가”라고 전했다.

 

『단 한 사람』, 『구의 증명』

[다시 소설이다] 소설 시장의 위축, 그럼에도 선전한 작가들, 소장본제작, 소장용책, 소장용책만들기

 

 

빛나는 신예 작가들

유명 소설가들 외에도 빛나는 신예 작가들이 등장하며 위축된 문학 시장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가 김기태는 첫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문학동네, 2024)로 문단의 큰 주목을 받았다. 등단 3년 차에 2024년 신동엽문학상과 동인문학상을 받은 이례적인 케이스다. 특히 동인문학상은 완숙한 중견 작가에게 주어지는 상으로, 신예 작가가 첫 소설집으로 수상한 것은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김기태 작가는 동인문학상 수상 이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세상에 나만의 빵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빵을 직접 구워보자’ 그런 단순한 욕망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면서 “이왕 빵을 구웠으니 다른 사람에게도 좀 먹여보고 싶어서 투고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는데, 취미로 빵을 굽는 것과 빵집을 개업하는 것은 굉장히 다른 문제더라. 요즘은 내가 좋아했던 빵의 맛, 빵 굽기의 즐거움, 그런 본질로 돌아가려고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그도 이 모든 상황이 얼떨떨한 듯했지만, 그만의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문학동네에 따르면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12월 말 기준 진중문고 1만 부를 포함해 총 5만 3,000부를 찍었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사랑과 결함』

 

첫 소설집 『사랑과 결함』(문학동네, 2024)을 펴낸 등단 4년 차 예소연 작가도 역시 주목할 만한 신예다. 『사랑과 결함』은 결함을 가진 사람들이 사랑을 해나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작가의 말에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모난 마음을 주워 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썼듯, 그는 마음 한구석에 꼭꼭 숨겨둔 비틀리고 모난 마음을 제대로 들춰낼 줄 안다. 그의 책은 출간 한 달 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한국 소설 부문 판매량 4위를 기록했다. 당시 판매량 1~3위가 정유정, 김애란, 양귀자 작가였는데, 그 뒤를 데뷔 3년 된 신예 작가가 이은 것이다. 계간지 <문학들> 2024년 봄 호에 발표한 단편소설 「우리 철봉하자」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같은 해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예소연 작가는 단편소설 「그 개와 혁명」(문장웹진 2024
년 1월 호)과 소설집 『사랑과 결함』으로 2024년 이효석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최종심에 올랐다.

 

 

이제 시작된 새로운 한국 문학 소설의 문(門)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은 지난 3월 한국 문화에 대해 “다음에 올 큰 한방은 문학(The next ‘big thing’ will be literature)”이라며 2024년 한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예견한 듯한 기사를 게재 했다. “BTS, 블랙핑크, 오징어게임, 김치 … 세계를 정복한 한국 문화의 비결은 뭘까?(BTS, Blackpink, Squid Game, kimchi … what’s the secret of South Korea’s world-conquering culture?)”라는 제목의 기사에서다. 음악·영화·드라마·음식을 잇는 한류(Korean wave)의 다음 주자는 ‘문학’이라고 콕 집은 것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해외 출판사와 1억 원이 넘는 선인세 계약을 맺는 국내 작가와 작품들이 잇따르고 있다. 강지영 작가의 『심여사는 킬러』(네오픽션, 2010)는 영국 대형출판사 노프 더블데이(Knopf Doubleday)에 약 2억 원 이상의 선인세를 받는 조건으로 계약했고, 송유정 작가의 『기억서점』(놀, 2024)은 영국 하퍼콜린스UK(HarperCollins UK)에 약 1억 원 가까운 선인세를 받고 팔렸다. 이희주 작가의 장편소설 『성소년』(문학동네, 2021)도 최근 영국과 미국 출판사에서 각각 1억 원의 선인세 계약을 맺었다.

 

『심여사는 킬러』, 『기억서점』, 『성소년』

[다시 소설이다] 소설 시장의 위축, 그럼에도 선전한 작가들, 소장본제작, 소장용책, 소장용책만들기

 

출판사 자음과모음의 최찬미 차장은 “‘K-컬처(Culture)’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한국 문학에 거는 기대감이 커진 상황”이라고 평했다. 현재 안팎의 기대감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 출판계가 당면한 과제다. 세계 속 한국 문학의 흐름을 볼 때, 어쩌면 위축된 소설 시장을 타개해 나갈 새로운 차원의 문은 이미 열린 것인지도 모른다. 배우 최우식이 영화 <기생충>에서 말한 “실전은 기세야, 기세.”라는 대사속에는 묘한 의미심장함이 담겨있다. 이 기세를 이어갈 방법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