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굿즈 열풍 분석, 2025 서울국제도서전 굿즈 트렌드, Z세대 텍스트힙과 독서 문화, 출판사 굿즈 마케팅 전략, 해외 독서 굿즈·스프레지 사례 비교
출판계 이모저모. ‘독서 굿즈’ 열풍, 책으로 이끄는 다리 될까
‘독서 굿즈’ 열풍, 책으로 이끄는 다리 될까
이호재(<동아일보> 기자)
2025. 11+12.
“요즘 2030세대 여성들은 K-팝 가수를 응원할 때 응원봉을, 놀이공원에 가면 머리띠를 사는 데 익숙 하잖아요. 책을 좋아하는 젊은 독자들이 ‘독서 굿즈’를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주일우 서울국제도서전 대표는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 대표는 지난 6월 열린 2025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굿즈를 구매하기 위해 몰린 관람객들의 행렬을 다른 대중문화 소비 방식과 연결해 바라봤다. 주 대표는 “서울국제도서전을 영화제나 음악 페스티벌처럼 ‘경험 추구’와 ‘적극적 참여’의 관점에서 보면 독서 굿즈 열풍 역시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며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는 세대는 이미 굿즈에 익숙하기 때문에 출판사들도 이 흐름에 자연스럽게 발맞추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국제도서전의 흥행 이끈 ‘독서 굿즈’
이른바 ‘독서 굿즈’의 시대다. 독서 굿즈는 책갈피 같은 독서 용품이나 유명 작가의 문장을 담은 키링등 다양한 기념품을 뜻한다. 과거에는 책을 구매할 때 끼워주는 부가적인 사은품 정도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품귀 현상을 빚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책값의 2~3배에 달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굿즈를 사기 위해 줄을 서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올해 독서 굿즈 열풍이 가장 강하게 드러난 곳은 단연 2025 서울국제도서전(이하 도서전)이다. 올해 도서전은 입장권 15만 장이 사전 판매만으로 매진됐고, 개장 전부터 줄을 서는 ‘오픈런’ 현상이 5일 내내 이어졌다. 그 중심에는 굿즈가 있었다. 각 출판사 부스는 키링, 티셔츠, 북커버, 스티커 등 다양한 굿즈를 구매하려는 인파로 붐볐다. 한 중형 출판사 대표는 “예전에는 책을 고르고 덤으로 굿즈를 챙겼다면 요즘은 굿즈를 먼저 고르고 그와 관련된 책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며 “굿즈가 독서의 ‘입구’가 되어 책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출판사들도 앞다퉈 독창적인 굿즈를 선보이며 독자들을 끌어들였다.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재레드 다이아몬드, 2023)와 『사피엔스(Sapiens)』(유발 하라리, 2015) 같은 두툼한 ‘벽돌책’으로 유명한 출판사 김영사는 이 책들을 본떠 만든 ‘벽돌책 냄비받침’을 제작해 주목받았다. 더불어 출판사의 대표 도서 『먼나라 이웃나라』(이원복, 1981) 시리즈와 『사피엔스』 표지를 응용한 북파우치 등도 선보였다. 지퍼형 케이스로 책을 감싸 보호하고 표지 그래픽을 살려 소지품 파우치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실용성을 높였다.
벽돌책 냄비받침 3종, 북파우치(출처: 김영사 SNS)
출판사 시공사는 책 디자이너들이 사용하는 도구에서 영감을 받은 ‘책등 계산법 키링’과 ‘줄자 키링’을 내놓았다. 책등의 높이를 재며 기록·인증 놀이를 하도록 설계한 이 굿즈는 서가 정리 기능과 함께 취향을 키링으로 전시하는 역할을 하며 재구매가 이어졌다. 창비는 K-팝 응원봉에서 착안해 구(球)형 라이트에 책 아이콘을 넣고 키링을 결합한 ‘책덕봉 키링’을 만들었다. 이는 도서전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것은 물론 인증샷이 확산되며 판매를 견인했다. 키링은 이후 온라인에서도 판매가 이어지고 있다.
책등 계산법 키링과 줄자 키링(출처: 시공사 SNS), 책덕봉 키링과 라벨 키링(출처: 창비 SNS)
또한 “독서 붐은 온다.”, “과시용 독서도 독서다.” 같은 문구가 적힌 굿즈도 인기였다. 각종 이벤트에 참여하면 에코백을 주는 출판사도 적지 않았다. 일부 출판사는 책보다 더 비싼 티셔츠를 1,000장 넘게 판매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한 출판사 마케터는 “티셔츠는 착용 사진이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는 특징이 있다. 출판사나 작가 인지도를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데 매우 효과적인 굿즈”라고 말했다. 다른 대형 출판사 마케터는 “도서전의 인기가 해마다 높아지고 있지만 올해는 굿즈 덕분에 유난히 많은 인파가 몰렸다.”며 “도서전이 끝난 뒤 여러 출판사 관계자가 모여 ‘책보다 굿즈가 더 많이 팔렸다’는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였다.”고 전했다.
텍스트힙(Text-Hip) 이끈 ‘Z세대’가 주역
사실 독서 굿즈는 최근에 갑자기 등장한 개념이 아니다. 오프라인 서점 전성기에도 서점 내부나 인근에서는 다양한 문구류와 굿즈가 함께 판매되곤 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온라인 서점에서 일정 금액이상 책을 구매하면 자체 제작한 사은품을 증정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였다. 디자인이 세련되고 실용성도 있어 일부 독자들은 굿즈가 책 구매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독서 굿즈의 본격적인 성장세는 2014년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두드러졌다. 도서 할인 폭이 15% 이내로 제한되면서 가격 경쟁이 어려워진 출판사와 서점은 굿즈 경쟁에 눈을 돌렸다. 그전에는 오래된 책을 70~80% 할인해 팔 수 있었지만, 제도 시행 후 마케팅 차별화를 위한 수단이 굿즈로 옮겨간 것이다. 도서정가제 이후 온라인 서점 알라딘이 굿즈 마케팅에 적극 나서며 눈에 띄는 성과를 냈다는 평가가 이를 말해준다. 알라딘은 ‘굿즈 총집합’, 교보문고는 ‘바로펀딩’의 라이프, 예스24는 ‘예스펀딩’의 그래잡화점 등 굿즈 전용 카테고리를 만들어 출판사의 굿즈뿐만 아니라 자체 제작 굿즈를 통해 독자들을 유입시키고 있다.
최근 굿즈 열풍은 K-팝, K-영화 등 타 대중문화의 소비 트렌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요즘 소비자들은 ‘좋아함’을 물리적·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싶어 한다. 야구장에서 유니폼이 불티나게 팔리고, 영화관에서 포토 카드가 유행하듯 출판계에서는 굿즈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원래 굿즈는 아이돌 팬덤의 결속력과 소비 파워를 자랑하던 영역이었지만, 이를 출판계가 수용하면서 독자들과의 접점을 넓힌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책은 더 이상 읽기만 하는 대상이 아니라, 입고 들고 찍고 나누는 대상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199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에 태어난 ‘Z세대’가 독서 굿즈 붐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텍스트힙’이라는 표현이 유행할 정도로 젊은 세대는 책과 글자 자체에서 멋을 발견하고 공유한다. 짧은 영상에 익숙한 이들이지만 텍스트를 감각적으로 즐기며 문화로 소비하는 방식에 능숙하다. 한출판사 마케터는 “청년 세대가 인스타그램에 책 사진을 올리고, 출판사 티셔츠를 입거나 가방을 드는장면을 단순히 ‘지적 허영’으로 치부할 일은 아니다.”라며 “굿즈가 없으면 허전하다고 느낄 만큼 이들은 굿즈를 통해 독서에 몰입하고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는다.”고 말했다.
굿즈 생산을 체계화하려는 출판사들의 움직임
출판사들도 이 같은 흐름에 맞춰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특히 소형 출판사들 사이에서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책과 굿즈를 함께 기획·판매하는 방식이 일반화되고 있다. 소형 출판사에서는 1만원짜리 굿즈를 제작하면서도 1만 원 이상 제작 비용이 드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굿즈를 만드는 이유가 있다. 굿즈와 책을 구매하고 만족감을 얻은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이를 홍보함으로써 재구매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때문이다. 굿즈 자체가 마케팅 효과를 불러오는 것이다.
IP(Intellectual Property Rights, 지식재산권)를 보유한 출판사들은 이를 활용해 ‘세계관 굿즈’로 영역을 확장하는 추세다. 『해리 포터(Harry Potter)』(J. K. 롤링, 1999~2017) 시리즈를 출간한 문학수첩은 ‘마법 지팡이 볼펜’ 같은 굿즈로 가족 단위 관람객의 호응을 얻고 있다. 문학동네는 지난해 패션 브랜드와 협업해 조지 오웰(George Orwell)과 레프 톨스토이(Leo Tolstoy)를 록밴드처럼 재해석한티셔츠를 제작해 눈길을 끌었다. 조지 오웰의 초상과 대표작 모티프를 재구성해 ‘입고 다니는 문학사’를 제안했다. 문학 IP와 패션의 접점을 넓힌 사례다. 비슷한 사례로 한겨례출판은 올해 도서전 공식 굿즈로 ‘책벌레 티셔츠’ 3종을 제작했다. ‘책벌레’ 캐릭터와 활자 그래픽을 전면에 배치해 착용 인증을 유도했다.
조지 오웰의 초상을 재구성한 티셔츠 굿즈(출처: 트락타트(Traktat) SNS),
2025 도서전 굿즈 ‘책벌레 티셔츠’ 3종(출처: 한겨레출판 SNS)
독서 굿즈 생산을 체계화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출판사는 온라인 서점의 위시리스트, 사전예약 등 독자 반응을 분석해 첫 생산 물량을 정하고 판매 속도에 따라 추가 제작 여부를 결정한다. 굿즈 안에 책의 첫 문장이나 작가의 메모, 제작 비하인드 내용을 삽입해 독자가 자연스럽게 책장을 열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한 대형서점 MD는 “작가의 친필 문장이나 초판 표지가 담긴 굿즈는 책의 감성과 정체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해 성과가 좋다.”며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스탬프 미션이나 포토부스 같은 참여형 콘텐츠와 연계해 구매 과정 자체를 하나의 경험으로 설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굿즈 전담 조직을 꾸리는 출판사도 생기고 있다. 출판사 다산북스는 최근 채용 공고에서 북디자인 업무 외에도 굿즈 디자인을 주요 업무로 명시했다. 윌북 역시 출간용 굿즈 제작 능력을 채용기준에 포함시켰다. 한 출판사 디자이너는 “굿즈 기획은 별도의 시즌 계획과 예산이 따로 운영될 만큼 중요도가 커졌다.”며 “전담팀을 꾸리거나 외부 브랜드와의 협업을 정례화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독서 굿즈 열풍 분석, 2025 서울국제도서전 굿즈 트렌드, Z세대 텍스트힙과 독서 문화, 출판사 굿즈 마케팅 전략, 해외 독서 굿즈·스프레지 사례 비교
독자와 책 잇는 다리 돼야
물론 독서 굿즈를 둘러싼 비판도 없지 않다. 일각에서는 출판사가 책보다 상품을 판다는 지적, 굿즈 중심 마케팅에 대한 피로감, 환경 오염 우려 등의 문제가 제기된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보다 사은품 선택에 시간이 더 걸리는 경우가 적지 않고 과도한 한정판 전략이 소비자 불만을 키운다는 지적도 있다. 책보다 굿즈가 더 주목받은 도서전을 두고 ‘서울국제굿즈전’이라 비꼬는 말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굿즈가 침체된 출판 시장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무시하기는 어렵다. 독서대·조명 같은 실용형 굿즈는 사용성을 높여 책 판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한 온라인 서점 MD는 “굿즈를 구경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이트 체류 시간이 늘고, 그 시간이 실제 매출로 이어진다.”고 했다. 또 다른 MD는 “인지도가 낮은 출판사나 작가도 독특한 굿즈로 주목받아 책 판매량이 올라간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해외는 어떨까. 영미권은 굿즈를 별도 상품으로 더하기보다 책 자체를 경험하도록 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책의 페이지 단면을 색·패턴·일러스트로 꾸미는 ‘스프레지(Spreaded Edges)’가 로맨스와 판타지를 넘어 스릴러·문학으로 확산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책등을 안쪽으로 꽂아 가장자리 디자인을 드러내 진열하기 때문에 ‘소장형 독서’ 트렌드를 보이며 최근 영미권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표지 바깥, 책의 모서리까지 독서 경험이 확장된 현상”으로 짚었다. 한국이 책 바깥의 상품인 굿즈로 독자를 유인한다면, 영미권은 책 디자인을 고도화해 한 권 자체의 체류 시간을 늘리는 전략인 셈이다.
스프레지 한정판 도서(출처: Harper Voyager)
일본의 움직임도 참고할 만하다. 일본 출판사 타카라지마사(寶島社)는 지난해 도쿄의 대형서점 팝업 등을 통해 기능성 의류 ‘피로 회복 웨어’를 선보였다. 오래 책을 읽을 때 몸의 피로를 줄인다는 콘셉트의 협업 제품으로 서점 팝업과 온라인몰 등에서 호응을 얻었고, 누적 판매는 16만 장 이상으로 알려졌다. 잡지에 부록을 추가해 판매하는 마케팅에 강한 일본답게 텍스트와 라이프스타일을 결합해 ‘책 바깥의 체험’을 수익화했다는 평가다.
‘피로 회복 웨어’ 홍보 이미지(출처: 타카라지마사)
결국 핵심은 굿즈가 책을 대체하지 않고 독자들을 책으로 이끄는 다리가 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 굿즈는 작품·저자 메시지와의 연결성이 분명해야 하고 과도한 한정판 전략은 자제해야 한다. 또한 저작권·상표권·표기 원칙을 엄격히 지키고, 친환경 소재·최소 포장을 기본값으로 삼는 자연 친화적 흐름도 자리 잡을 필요가 있다. 그래야 굿즈에서 출발한 관심이 책이라는 핵심 콘텐츠로 이어지고, ‘텍스트힙’으로 시작한 흐름이 ‘텍스트딥(Text-Deep)’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독서 굿즈 열풍 분석, 2025 서울국제도서전 굿즈 트렌드, Z세대 텍스트힙과 독서 문화, 출판사 굿즈 마케팅 전략, 해외 독서 굿즈·스프레지 사례 비교









